대법원, 현대차가 하청노동자에 낸 손배 소송 전원합의체 회부···‘손배폭탄’ 제동거나

2022.11.23 10:33 입력 2022.11.23 10:55 수정

지난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유 부지회장은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는데 대우조선해양은 교섭을 거부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준헌 기자

지난 7월19일 오후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도크 바닥에 스스로 용접한 가로, 세로, 높이 각 1m 철 구조물 안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유 부지회장은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을 했는데 대우조선해양은 교섭을 거부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준헌 기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공장 점거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현대자동차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소송이 제기된 지 10년 만이다. 기업이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배폭탄’으로 대응하는 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대법원이 기업들 행태에 제동을 거는 법리를 세울지 주목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현대차가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인 노동자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최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은 국민적 관심도가 높거나 사회의 근본적 가치에 관한 결단을 제시할 만한 사건, 역사적으로 사법적 평가가 필요한 쟁점을 다루는 사건 등을 대법관 전원이 함께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 대법원은 24일 기일을 열어 이 사건을 심리한다.

현대차 하청업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013년 7월12일 현대차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울산3공장 일부 라인을 점거하고 63분간 가동을 정지하는 파업을 벌였다. 대법원이 2010년 현대차 하청노동자 최병승씨에 대해 불법 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으므로 최씨와 같은 처지의 다른 하청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노조 요구였다. 파견법은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해 2년 넘게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 원청이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규정한다.

현대차 사측은 하청노동자들과 직접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다면서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사측은 노조가 파업을 하자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며 라인 가동 정지에 따른 고정비 손해 4500만원을 물어내라고 소송을 냈다. 소송 피고들은 노조 간부가 아니라 일반 조합원들이었다.

1심에선 현대차가 패소했다. 그러나 2심인 울산지법 민사3부(재판장 정효채)는 현대차 주장을 받아들여 노동자들이 현대차에 2300만원을 물어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법원이 불법 파견을 인정했으니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차와 교섭할 수 있다면서도 쟁의행위는 정당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공장 점거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반사회적 행위”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대기업인 현대차가 경제적으로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배 소송을 낸 것은 노조 활동을 통제하고 회사의 위법행위를 은폐하려는 목적이라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조업 중단에 따른 고정비 손해를 누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지, 일반 조합원의 경우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배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지, 쟁의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배 소송이 권리 남용에 해당하는지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위법한 쟁의행위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해선 기업이 손배 소송을 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 법원이 근로계약 관계를 중심으로 정당한 쟁의행위인지 여부를 따져 하청노동자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터다.

노동계는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파업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배 책임을 지우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손배 소송은 노조 탈퇴 및 노조의 협상력 약화로 귀결되는데, 이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33조1항에 저촉된다는 것이다.

20년 전부터 제기된 손배 문제는 지난 6월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배 안에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고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고발한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의 농성 이후 대우조선해양이 470억원의 손배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최근 국회에서 기업의 손배 소송을 규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진전은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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