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수사하듯, 수사는 정치하듯…“검찰 고삐가 풀렸다”

2023.05.11 06:00 입력 2023.05.11 16:02 수정

‘개혁 대상’이 ‘정권 호위무사’로…검찰풍에 쓸려간 1년

정치는 수사하듯, 수사는 정치하듯…“검찰 고삐가 풀렸다”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의 열쇳말은 단연 ‘검찰’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 아래서 검사 집단은 명실상부한 최고의 파워엘리트로 자리 잡았다. ‘소통령’ ‘왕장관’으로 불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완규 법제처장도,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국가보훈부 장관 내정자)도 검사 출신이다. 권력 핵심부인 대통령실 주요 보직, 국가정보원의 핵심 보직, 국무총리실 일부 보직도 검찰 출신이 줄줄이 꿰찼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검사 출신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지금 검찰의 위세는 군사정권 때 군부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때 개혁의 대상이었던 검찰의 힘은 다시 막강해졌다. ‘검찰 수사권 축소법’을 무력화한 시행령 개정으로 검찰의 수사권은 원상복구됐다. 법무부의 주요 보직도 검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법무부의 탈검찰화’는 휴지 조각이 됐다.

검사 출신의 국정 전면 배치, 검찰의 힘과 위상 강화는 단순한 연고주의의 차원을 넘어선다. 윤 대통령이 검찰에 힘을 실어주고, 검찰은 정권의 해결사, 호위무사 역할을 한다. 검사 출신의 국정 전면 배치는 검찰풍 국정운영으로 이어진다. 매사를 ‘합법이냐, 불법이냐’로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 법의 제약을 법기술로 우회하는 ‘시행령 통치’가 단적인 예다. 여기에 정치가 숨 쉴 공간은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가리켜 ‘검찰통치’라고 부른다.

‘정권 호위무사’ 1년

대통령실·법무부·국정원 등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 136명
한동훈 통해 직할 체제 구축
수사 공정성 놓고 ‘의문부호’

■ 시행령 개정으로 막강해진 검찰

윤석열 정부는 ‘시행령’을 이용해 여소야대 국회를 우회했다. 대표적인 예가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 정보가 대통령실에 집중되는 게 부적절하다’며 고위공직 후보자의 1차 검증을 법무부에 맡겼다. 법무부는 수사·기소권을 갖고 있는 검찰을 지휘·감독한다. 여기에 더해 고위공직 후보자의 인사 정보·검증까지 틀어쥔 것이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검증의 투명성’을 내세웠지만, 정순신 변호사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 낙마 사태에서 보듯 정보 공개도 제대로 하지 않고, 별다른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시행령은 시민이 선출한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를 어겨서는 안 되지만 법무부는 국회가 축소한 검찰 수사권을 원상회복했다. 국회가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를 기존 6개에서 2개(부패·경제범죄 등)로 줄이자 법무부는 범죄를 재분류·재정의하는 방식으로 검찰의 수사범위를 다시 늘렸다. 한 장관은 시행령이 개정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서도 개정법이 지나치게 검찰 수사권을 축소해 위헌이라는 모순된 주장을 하며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가 각하·기각 결정했지만 한 장관은 ‘동의 못한다’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법무부 탈검찰화’는 윤석열 정부에서 백지화됐다. 비검사 출신이었던 자리(법무실장·인권국 등)에 다시 검사가 임명됐다. 검사들은 법무부뿐 아니라 정부 요직을 장악했다. 지난 3월 참여연대 집계에 따르면 대통령실·국정원·금감원 등 윤석열 정부 주요 보직에 있는 검찰 출신은 136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이렇게 강력한 정치적 주체로 등장해 국정운영을 주도하는 모습은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 야당 수사 집중, 여당엔 약한 모습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 정기인사 때 ‘윤석열 사단’이 요직을 싹쓸이했다. 2019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한 장관이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지휘할 때 손발을 맞춘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서울중앙지검장, 고형곤 특수2부장이 서울중앙지검 4차장에 발탁됐다. 국정농단·적폐청산·사법농단 사건 등에서 윤 대통령·한 장관과 함께 수사했던 부부장, 평검사들까지 줄줄이 서울중앙지검에 배치됐다.

이런 인사를 주도한 사람은 한 장관이다. ‘윤 대통령-한 장관-윤석열 사단 검사’로 이어지는 직할 체제가 마련된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0일 “검찰권력이 정치권력에 예속돼 있는 정도가 상당히 크다”며 “윤석열 사단에 들어가지 않는 검사들은 상당히 무력감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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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직후인 지난해 7월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야권,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됐다. 수사라인도 ‘윤석열 사단’ 검사들로 채워졌다. 서울중앙지검의 반부패수사 1·2·3부는 모두 야권·전 정권 수사에 동원됐고 수원지검 등도 여기에 가세했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만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사업 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등 여러 건이다.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사건으로는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알선수재 사건에서 비롯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수사 중이다. 대표적인 것만 열거한 것이 이 정도다. 서울북부지검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수사, 서울동부지검의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등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검찰청이 야권 수사에 총동원됐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b>한상혁 향한 또 한번의 ‘표적 압수수색’</b>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1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차에 오르고 있다(왼쪽 사진). 검찰이 경기방송 재허가 관련 방통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이날 오후 방통위 건물 앞으로 직원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혁 향한 또 한번의 ‘표적 압수수색’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10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차에 오르고 있다(왼쪽 사진). 검찰이 경기방송 재허가 관련 방통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이날 오후 방통위 건물 앞으로 직원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야권에 관한 전방위 고강도 수사는 여권 인사에 대한 무른 수사와 대비된다.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주범인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기소된 지 1년6개월이 지났지만 김 여사 처분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지난 2월 1심 법원이 권 회장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김 여사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됐다고 판단한 뒤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어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가 기업들로부터 전시회 협찬(후원)을 받은 것과 관련한 윤 대통령, 김 여사의 뇌물수수·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지난 3월 불기소 처분했다. 김 여사를 불러 조사하지도 않은 채 협찬이 뇌물이나 부정한 금품수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 개발비리 혐의를 “지역토착 비리로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 여사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지휘권이 배제된 상태라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다.

검찰은 ‘범죄혐의가 있으면 증거와 법리에 따라 수사한다’고 말한다. 일체 정치적 고려 없이 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승익 한동대 법학부 연구교수는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등 대부분의 요직에 특수부 출신의 대통령 라인 검사들이 가 있는 상황을 보면, 아무리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를 한다고 한들 그 외관이 공정해 보이겠느냐”며 “법무부도 대통령 사단으로 구성돼 검찰을 누가 통제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검찰이 고삐가 풀려있는 상태”라고 했다.

‘범죄 척결’ 논리가 국정 덮어
대화·토론·타협의 공간 위축
검 출신 대거 나올 내년 총선
‘검찰통치 지속’ 판가름 전망

■ ‘검찰통치’는 지속 가능한가

검찰의 득세는 검찰의 ‘밥그릇 키우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 법무부는 파업 등 노동 사안, 전세사기 등 부동산 사안, 이민청 설치 등 인구정책에도 관여하며 영역을 국정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범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만을 따지는 검사의 시각이 시민들의 다양한 대화와 토론을 봉쇄하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정치는 수사가 아니다. 정치는 갈등이 있을 때 법적으로 가지 않고 타협이나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나 정치적 합의에는 회색지대가 굉장히 많아서 그 회색지대를 어떻게 관리하고 조정하느냐가 중요한데 검사들은 그런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복지 등 분야에서 조만간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칼로 무 자르듯이 하는 정책은 형사처벌을 남용하고 정작 행정이 필요한 부분을 사각지대로 남긴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와 지방정부, 주민자치조직과 대화의 여지도 사라진다.

이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법치를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법치가 아니라 검사들의 통치가 법치가 됐다”면서 “결국 복지와 같이 적극행정이 필요한 부분에서 정책의 후퇴가 나타날 것이고, 안전이나 미래 어젠다 준비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유승익 교수는 “경제·노동·인구정책 등은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정치적인 문제인데, 전문성도 없고 범죄를 주관하는 법무부가 관할화하는 것은 국가가 위험해지는 지름길”이라며 “정책에는 여러 회색지대가 있는데 검찰은 ‘범죄를 척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선점하면서 시민들의 논의를 봉쇄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검사 출신들의 대거 등판이 예상되는 내년 4월 총선이 ‘검찰통치 가속화냐, 검찰통치 제동이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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