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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이유로 성매매 여성 나체 촬영한 경찰…법원 “증거능력 없다” 첫 판단

2023.09.25 10:28 입력 2023.09.25 11:11 수정

사진을 지워달라는 당사자 요구도 거부

소속 팀 대화방에 “수사정보” 공유까지

법원 “인격권 침해, 증거능력 인정 못해”

경찰의 성매매 단속 시 신체촬영 등 위법수사 피해자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국가배상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경찰의 성매매 단속 시 신체촬영 등 위법수사 피해자들이 30일 서울 서초구 민주화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국가배상소송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기자

경찰이 성매매 알선 행위 등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성매매 여성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것은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경찰의 과도한 행위는 아니’라고 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보다 진일보한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하진우 판사는 성매매처벌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의 사건에서 제출된 증거 일부에 대해 ‘A씨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판단했다.

경찰은 지난해 3월 서울에 있는 한 오피스텔의 성매매 행위 등을 단속하면서 나체로 있던 A씨의 몸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자신의 사진을 지워달라는 A씨의 요구도 거부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단속팀 소속 경찰 15명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수사정보’라며 공유했다. A씨 측은 경찰관들이 단속 현장에서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 조력권을 고지하지 않고 A씨 등에게 진술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에서 A씨 변호인은 당시 단속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위법한 수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원에 경찰이 촬영한 A씨 나체 사진과 진술서를 증거로 제출했는데, 이것들이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의 원칙에 어긋나게 수집되어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문제의 사진에 대해 ‘증거배제’를 결정하고, A씨 판결문에 이 증거가 위법한 이유를 기재했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이 사진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의 동의를 구했거나, 피고인이 이를 승낙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인에 대한 인격권의 침해가 상당한 바, 이 사건 각 사진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상당한 방법에 의해 촬영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진 찍힌 사람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사진 촬영은 ‘강제수사’에 해당하는데 당시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찰관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고 진술서를 작성하게 한 것 역시 법에 어긋나게 수집되었다고 보고 증거에서 배제했다. 다만 재판부는 다른 증거들을 종합해 A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의 성매매처벌법위반 혐의는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 앞서 인권위는 같은 사건에 대해 법원과 다른 판단을 했다. 경찰이 단속할 때 공인된 촬영장비가 아닌 휴대전화로 현장을 촬영하고 이를 단속반 단체대화방 등에 공유한 점은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A씨의 나체를 촬영한 행위 자체를 두고는 “과도한 행위를 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찰이 사후 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적법절차 위반이라고 보기에도 어렵다”고 했다.

A씨 대리인단인 김지혜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이번 판결은 경찰이 현장 단속 과정에서 ‘증거 수집’을 명분으로 피의자들의 인격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남겼다는데 의미가 있다”며 “인권위보다 사법부가 경찰의 피촬영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적극적으로 판단한 부분도 주목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A씨 측은 당시 단속에 나선 경찰관들에 대해 국가배상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김 변호사는 “경찰의 사진이나 영상 촬영은 영장주의만이 아니라 침해의 최소성 원칙을 비롯한 비례원칙을 위반해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국가배상소송을 통해 경찰이 단속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했다는 점을 인정받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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