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 중심만으론 못 푸는 수능, 수명 다했다”

2021.12.13 21:05 입력 2021.12.13 22:20 수정

‘수능 종말론’ 꺼내든 성기선 전 교육과정평가원장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 7일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성기선 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지난 7일 경기 부천시 가톨릭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상대평가 ‘1등급 비율’ 결과 맞추려 일부 문항 초고난도 출제
졸업 증빙 ‘자격고사’로 바꾸고 ‘변별력 고사’ 선택 시행 필요
고교학점제, 교육과정 정상화 기폭제…일단 시행 후 보완을

“수능의 수명은 이제 다했죠. 교과 중심으로 풀 수 있는 수능을 넘어섰어요.”

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교직과)는 201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에 취임해 올 2월 물러날 때까지 내리 4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러냈다. 2017년 포항 지진과 지난해 코로나19까지, 두 차례의 수능 연기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무사히 넘긴 그가 왜 지금 수능 시대의 종말이라는 이슈를 꺼내든 걸까. 2022학년도 ‘불수능’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7일 가톨릭대 그의 연구실에서 성 교수를 만났다.

성 교수는 수능의 종말과 관련해 “상대평가의 핵심이라는 게 결국 선발, 배제, 탈락인데 이를 가리는 문제들이 너무 어려워지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교육과정 안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다 보니 다양한 성취기준을 여러 개 복합적으로 연계하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나온다”며 “(원장 재직시절) 초고난도 문제를 좀 덜 내자고 해봐도 도저히 그렇게 해서는 변별력을 확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수학 1등급을 4% 내외로 만들어야 하는데 약간만 쉬워져도 1등급이 10% 가까이 나오고, 만점자가 수두룩한 상황이 나오는데 상위권에서는 치명적”이라면서 “초고난도 문제 내지 말자 해도 그래선 (점수대가) 다 뭉쳐버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일부 문항의 난도가 굉장히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런 문제를 일반 학생이 정규 교과과정만으로 따라가기란 사실상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역량이 학생이나 학교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진 않는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수능 100% 전형’ 등 최근 대선 국면을 맞아 부상한 공정·능력주의 논쟁과 관련해 그는 “수능 자체는 미시적인 시각에서는 매우 공정하다”면서도 “거시적으로 보면 이렇게 불공정한 평가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교육열, 유전인자, 학교에 가기 전까지 보인 초기 사회화 과정 등 학습능력의 대부분은 이미 학령 전에 결정돼 나온다”며 “이 차이는 학교를 다녀도 좁혀지지 않고 쭉 벌어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공부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한번 놓치면 거의 따라갈 수가 없는 지경”이라며 “KTX가 출발하면 택시로 아무리 쫓아가도 못 잡는 것처럼 번쩍번쩍 뜀박질하는 난도와 진도를 절대 따라잡지 못하게 된다. 예전처럼 뒤늦게 깨우친 학생, 늦게 공부를 시작해 성공하는 학생 이런 것들이 불가능한 시험이 됐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지금도 교실 안을 들여다보면 학생 절반은 엎드려 잠을 잔다”면서 “이런 학생들에게 지금의 학교는 실패를, 포기를 경험하게 하는 곳일 뿐이고 나중에 ‘나는 허드렛일이나 해도 되는 사람’처럼 실패를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스스로 갖도로 만든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줄세우기 수능 체제를 어서 빨리 끝내야 한다는 그는 수능을 고등학교 졸업을 증빙하는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상위권 수험생과 학교를 위한 별도의 수능 시험을 도입하는 아이디어를 꺼냈다.

성 교수는 “대학이 미래에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상위권 대학을 가기 위한 경쟁은 여전히 치열할 것”이라면서 “중위권 대학들이 수능 자격고사를 기반으로 몇 가지를 더 조합해 신입생을 뽑을 수 있게 해주고, 상위권 대학에는 상경·사회과학·공학 등 계열별 논·서술형 문제로 변별력을 가리는 추가 시험을 보게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성적순으로 줄세우는 기능만 살아남은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화하는 과정으로, 그는 2025년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가 그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고교학점제라는 게 단순히 교육과정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평가 방식부터 공간, 교사 전문성, 자격 이 모든 것을 바꿔야 가능한 것”이라며 “최종 목표는 학생들이 입시준비가 아니라 자신들의 적성에 따라 진로에 맞게 자기자신을 준비시키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 도입 준비가 미진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와 관련해서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교원들의 권리는 보장해야겠지만 전문인력을 시간강사로 채용해 아이들에게 전문성 있는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학교 밖 진짜 전문가들이 있는데 교사가 재교육을 받고 선택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10년, 20년이 지나고 나서 지금과 같은 학교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며 “50년 가까이 국가가 주관하는 객관식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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