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과 충남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이후 국회에서 ‘학생인권법’을 제정해 학생 인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의 성향에 따라 폐지되는 ‘조례’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김영호·박주민·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본관 앞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인권법’ 제정을 결의했다. 이들은 “(학생인권법은) 학생들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학교 내에서의 차별과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기반”이라며 “학생들의 안전과 권리를 명확하게 지키기 위한 통일된 법률적 규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2대 총선 공약으로 ‘학생인권법을 제정’을 내놓았다. 학생기본권과 보호 방안을 명시하고, 교육활동 방해 금지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학생인권법은 지자체 단위의 조례보다 적용 범위가 더 넓고 권한도 크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 폐지 효력을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교육감의 성향이나 지방의회 구성 등에 따라 학생인권조례가 제정과 폐지 기로에 놓이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학생인권이 더 이상 편향된 지방자치단체의 정쟁 이념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는 헌법 정신에 기초한 학생인권법을 조속히 제정해달라”고 했다.
22대 국회에서 추진될 학생인권법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는 아직 더 논의가 필요하다. 박주민 의원은 “새로 만들 학생인권법에서는 교사들의 우려를 담아 정당한 생활지도와 일상적 교육활동에 대한 면책 조항을 잘 담아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민정 의원도 “당장 아이들의 인권이 감히 폐지될 수 없도록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강민정 의원은 “학생 인권과 교원의 교육활동 권리가 상호 충돌되지 않음에도 이를 곡해거나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내용을 왜곡해 조례를 무력화하거나 폐지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며 ‘학생 인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에는 교육부 장관이 3년마다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도 교육청마다 교육감 직속 학생인권센터를 둬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여당은 학생 인권이 교권과 상충하고, 교권 하락을 유발했다며 폐지를 강행했다. 지난 26일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 의원만으로 구성된 인권·권익향상특별위원회를 거쳐 폐지안을 본회의에 회부하고, 당일 본회의를 열어 재적 60명 중 60명 찬성으로 폐지안을 처리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표결에 반대해 전원 불참했다. 서울은 지난 24일 폐지된 충남도에 이어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 두 번째 사례가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다음 달 17일 이전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해 재의를 요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시의원이 전체 111석 중 76석(68%)을 차지하고 있어 교육감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다시 통과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재의결될 경우 대법원에 조례 무효확인 소를 제기할 계획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성별과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학생들을 차별할 수 없도록 규정한 조례다. 학생인권조례는 평등한 학교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이 2019년 실시한 ‘제2차 학생인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학생들은 학생인권조례로 인해 두발 자유, 체벌 감소 등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있는 지역에서 학교폭력 심의 건수가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편 조 교육감은 조례 폐지가 결정된 지난 26일 오후부터 이날까지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조 교육감은 이날 오후 5시30분 시민 약 100명과 함께 해단식을 진행한 후 천막농성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