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성폭력 피해 신고자 대다수
6년 전 서 검사 미투에 용기 얻어
이해하기에 부둥켜안고 눈물바다
“함께 모이니 헤쳐갈 용기 얻어”
열매, 10월 국회서 증언대회 준비
국가 폭력 고발과 배상 위해 나서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이후 그해 5월 김선옥씨(66)는 ‘38년 만의 미투’를 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연행된 후 수사관에게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밝힌 것이다. “검사도 미투를 하는데 나도 역사의 현장에 대해 말해도 될 것 같다. 이제 내 나이도 60이다.”
김씨의 미투 후 정부 조사단이 꾸려졌고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이하 조사위)가 구성됐고 지난해 말 조사위는 5·18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중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과거사 조사에서 성폭력 피해를 조사 대상으로 명시하고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규명한 건 처음이다. 서지현의 작은 날갯짓이 40여년간 자신의 피해를 말하지 못한 사람들을 깨운 셈이다.
지난달 29일 광주 화정동 국가폭력트라우마치유센터에서 서지현과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조모임 ‘열매’가 만났다. 미투 이후 6년 만이다. 진상규명 결정을 받은 16명 중 12명이 서지현의 미투에 영향을 받았다고 진술했고 그를 만나고 싶다는 요청에 자리가 마련됐다.
김씨에겐 미투 이후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은 마음을 울렸다. 살아있으니 진상규명 결정을 받았고 오늘 피해자들이 모인 장면도 본다는 생각을 했다. 김씨는 이날 아침 설렜다.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는 서지현을 이날 처음 만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검사님은 혼자 싸운 게 대단해요. 오늘 내 멘토가 오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서지현은 답했다. “선생님이 제 멘토시죠. 선생님들이 제게는 위로입니다.”
서지현을 만난 열매 모임 피해자들은 그와 부둥켜안고 마음껏 울었다. 정부 공동조사단에 가장 먼저 조사를 신청한 최경숙씨는 “검사님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유미씨(가명)는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이 싫어서 개명을 해 평생 촌스러운 이름을 썼다며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지현은 그를 안아줬고 둘은 함께 흐느꼈다.
이날 피해자들은 15명이 모였다. 지난 4월 5·18 성폭력 피해자들이 처음 만났을 때는 10명이었는데 인원이 늘었다. 자조모임인 열매를 함께하기로 하니 힘이 커진 것이다. 김씨는 “모이기 전에는 다들 나 혼자 당한 일로 생각했다. 이렇게 여럿이 모인 걸 보니 앞으로 하나씩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서지현이 ‘열매’에 전하는 메시지
“살아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여러분은 저의 영웅, 가장 용감한 여성들”
5·18 당시 총상 등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후 민주화의 영웅처럼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는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다. 김씨는 어느 날 딸에게 처음 5·18 당시 성폭력 피해를 털어놓았다. 역사학을 전공한 딸이 엄마가 불의를 보면 참지 않았던 사람이고 민주화를 위해 기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미투 이후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많은 기자의 연락을 받았고 전화 공포증까지 생겼다. 피해를 의심하는 댓글에는 가족들까지 상처를 받았다. 성폭력의 ‘성’만 들어도 힘든 상태가 됐다. 병을 얻었다. 난소암이었다. 2001년에도 유방암 투병을 했는데 두 번째 암이었다. 6번의 항암 치료를 했고 2년간은 어떤 일이 있어도 조심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쏘아올린 공의 결과는 보겠다고 생각했다.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난 서지현도 5·18에 대한 기억은 또렷하다. 집 창문이 담요로 가려지고 아버지 친구들이 피난을 왔다. 교사였던 아버지는 학생들이 사라졌다는 부모들의 전화를 받고 찾으러 가기도 했다. 내향형인 자신이 TV 생방송에 나가서 ‘미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광주에서의 경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정의를 위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는 것을, 정의는 혼자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광주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서지현은 이날 피해자들에게 “살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4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슴속에 그 모든 것을 억누르고 사신 선생님들께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어요. 오늘 여러분을 뵈니까 단 한마디만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열매 모임 구성원들에게 “여러분은 저의 영웅이고 가장 용감한 여성들”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 또한 열매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44년간 당신을 괴롭혔던 그 일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이고 국가의 잘못입니다.” 그는 “과거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지금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여러분은 이미 승리자입니다. 44년간 끔찍한 고통과 두려움·분노·좌절과 싸워서 이겨낸 것입니다. 이 시간이 또 다른 미래를, 우리가 원하는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광주시 보상절차 남았지만
‘신체적 장해 정도’로 보상 한계
열매 모임, 10월 국회에서 증언대회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도 시작
국가기관이 처음으로 과거사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를 인정했다면 책임 있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현재 광주시가 보상 절차를 밟고 있지만 ‘신체 장해 정도’로 보상 판정을 하는 데다 ‘정신적 피해’에 관한 기준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정작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피해자가 적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상규명 결정 이후에도 피해자들의 회복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진순씨(가명)는 2주 전 자살 시도를 했다. 윤경회 전 조사위 조사4과 팀장은 “응급 개입이 지금 바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사위가 몰랐던 2022년 자살 시도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이씨는 대인기피증으로 집 밖에 나오지 못하기에 방문 상담이 필요하다.
한편 후세대로 5·18 성폭력 피해의 트라우마가 이어지고 있다. 5·18 당시 학교에서 돌아오다 군인 트럭에 납치돼 강간당한 피해자는 1988년 불교에 귀의해 비구니가 됐다. 피해자의 오빠는 1989년 당시 청문회에서 동생의 사연을 공개해 한을 풀어달라고 했지만 증언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진상규명 결정 이후 이 피해자의 자녀들이 엄마의 피해를 알게 됐다. 그는 환속해 딸 둘을 뒀다.
이날 둘째 딸이 간담회에 참석해 언니가 엄마와 열매 모임 피해자들에게 쓴 편지를 전했다. “올해 저도 아이를 임신하고 32년 만에 엄마의 5·18 성폭행 피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희망과 미래가 없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는 엄마의 증언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자식들에게 5·18 피해 사실을 못 알리신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힘들고 어두운 긴 터널을 견뎌주셔서 감사합니다.” 열매 모임 피해자들은 “여기 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전했다.
열매 모임은 10월1일 국회에서 당사자가 직접 발언하는 증언대회를 개최하기로 해 준비 중이다. 이들은 함께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도 시작한다. 하주희 변호사는 “과거사 사건은 잘못에 대한 배상으로 가해자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확인하라는 게 우리 법이고 피해자 권리”라고 말했다. 정현순씨는 “국가폭력이 인간을 망가뜨리고 오랜 세월 일어서지 못하게 한 것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배상해야 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인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