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프로 <미운 우리 새끼>에 나오는 가수 김건모는 술로 온갖 ‘장난’을 친다. 냉온수기에 꼽는 대형 생수통을 소주로 채우기도 하고, 소주를 얼려 빙수를 만들기도 한다. 집안에서 포장마차 분위기로 술을 먹을 수 있도록 파라솔과 간이테이블을 갖추고, 지인들을 불러 파티도 연다. 이런 장면을 보는 김건모의 어머니 이선희씨는 눈살을 찌푸리지만 패널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술은 김건모가 <미운 우리 새끼>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아주 유용한 도구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는 아예 진행자와 게스트가 함께 술을 마시는 토크쇼가 방송 중이다. 지난해 12월 시작한 <인생술집>에서 출연자들은 회차마다 맥주, 소주, 와인, 막걸리 등 다양한 주종을 소개했다. 지난 6월8일 방송분부터 ‘최대 5잔’이란 규칙이 새로 생기긴 했지만, ‘술을 마시며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는 프로그램의 주제에는 변함이 없다. tvN 인터넷 홈페이지는 “술 한잔 하는데 이유가 있냐”며 “집에서 혼술하며 보시면 왠지 이들(출연자)과 함께 마시고 있는 착각이 든다”고 <인생술집>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6월17일 방송된 MBC 주말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에서 검사인 남자주인공은 경찰인 여자주인공을 테스트하기 위해 폭탄주 회식을 한다. 여자주인공은 만취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며 남자주인공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한다. 이 드라마에서 술은 등장인물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보건복지부가 ‘절주 문화 확산을 위한 전문가 협의체’를 운영한다. 방송작가와 제작자협회, 시민단체, 언론계, 학계, 방송심의 기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협의체는 다음 달 1일 첫 회의를 열고, 대중매체 속 음주 장면에 따른 사회적 이슈를 공유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중매체 권고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흡연’은 공중파 방송에서 찾기 어려운 장면이 됐다. 예능은 물론 드라마에서도 배우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를 가지고 옥상으로 올라가더라도 불을 붙이지 않고 꺾어버리기 일쑤다. 이미 흡연하는 모습이 들어가 있는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할 때는 해당장면을 모자이크로 가린다. 반면 음주는 제한이 없다. 술집에서, 편의점에서, 자취방에서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신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규정은 ‘방송은 음주, 흡연, 사행행위, 사치 및 낭비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규정상 음주와 흡연은 똑같이 규제 대상이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명백히 ‘차별’을 받고 있다.

이같은 차별은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흡연은 ‘나쁜 것’이란 공감대가 사회 전체에 형성되어 있는 반면 음주에는 아직 관대한 시선이 남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장 나만 해도 음주없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한국사회에서 담배와 술을 보는 잣대가 명백하게 다르다”고 말했다. 이를 고려해 복지부도 당장 방송에서 음주 장면을 규제하기보다는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복지부가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자살보도’다. 이전에는 자살사건이 일어날 경우 언론매체가 자살도구, 방법 등까지 상세하게 전해 더 큰 불행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자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도 신중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2013년 ‘자살보도 권고기준 제정’에 이어 이번 협의체에도 참여한 김영욱 카이스트 교수는 “미디어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은 당장은 아니라도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난다”며 “잘못된 음주 묘사의 폐해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설득해 나가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개선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