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돌봄공백…취약계층 아동 3% “하루 한 끼 이상 거른다”

2020.11.03 20:47 입력 2020.11.03 21:00 수정

아동·청소년 988명 실태

편의점 식사로 영양 불균형

‘어른 없이 평일에 혼자’ 35%

부모 잔소리·신체 위협 커져

강원도에 사는 이모씨(44)는 아들 김모군(10)과 단둘이 생활한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씨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들자 다니던 식당에서 “그만두라”는 얘기를 들었다. 가지고 있던 요양보호사 자격증으로 생계를 이어가려 하지만 최근에는 방문 요양을 꺼리는 노인들이 많아 일거리가 없다. 식당에 다닐 때 벌던 150만원의 월수입은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점심, 복지센터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코로나19가 ‘심각’ 수준으로 전환돼 센터가 문을 닫게 되면 아들에게 끼니를 챙겨주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2월 센터에서 제공받은 한 끼분 도시락을 다음날 점심까지 아들에게 나눠 먹인 적이 있다. 빈집에 들어오길 꺼리는 한부모 가정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놀이터를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김군도 비슷하다. 이씨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제시키는 일이 힘들다”고 말했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외부연구원과 비정부기구(NGO)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이 지난 8월10~24일 전국 아동·청소년 988명을 대상으로 공동 진행한 ‘코로나19, 취약가정 아동·청소년의 생활실태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3일 공개됐다. 설문에 응한 988명은 기아대책기구 결연, 저소득 가정 및 맞벌이 가정의 돌봄 취약아동이다.

설문에서는 김군처럼 코로나19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동·청소년을 조사했다. 하루 중 식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하거나 1회에 그친다고 한 아동·청소년은 3.54%(35명)였다. 조사에 참여한 신영미 기아대책 외부연구원은 “응답자들 대부분 지원을 받고 있지만, 돌봄 공백이 늘어나면서 식사를 못 챙기는 아동·청소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영양 섭취도 불규칙했다. 응답자의 61.5%는 저체중(36%)이거나 과체중·비만(25%)으로 정상 체중 범위에 포함되지 못했다. 일주일간 과일을 한 번도 못 먹거나(15.2%) 한 번 먹는 아동·청소년(16.1%)은 31.3%에 달한다. 급식지원카드를 받는 아동·청소년 중 22.9%는 주 3~6회 편의점 도시락이나 삼각김밥 등으로 식사했다. 신 연구원은 “편의점 음식을 자주 먹는 아이들은 영양학적 식사를 하지 못하면서 과체중·비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아동·청소년의 일상생활도 변했다. ‘평일에 성인 없이 집에 혼자 있다’는 응답은 35.5%였는데, 이 중 41.6%가 주중 5일 내내 부모나 어른 없이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늘면서 아동·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이용 시간도 증가했다. 아동·청소년 40% 이상이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코로나19 전과 비교해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모자 가족과 맞벌이 가족에서 아동·청소년을 방치할 가능성이 더 높게 나타났다”며 “돌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족 내 스트레스도 커진 것으로 확인됐다. 부모의 잔소리가 증가했다는 응답과 부모의 신체적 위협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각각 44.3%, 24.9%였다. 아동·청소년의 정서 상태 변화도 확인됐다. 코로나19로 가정 경제가 나빠질까봐 걱정이 늘었다고 답한 아동·청소년이 18.02%였다. 보고서는 “모자 가족 및 조손 가족의 아동·청소년은 집에 먹을거리나 생활용품이 부족할까봐 더 걱정하는 경향을 보였다”며 “아동·청소년의 20% 이상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더욱 느끼면서 실제로 집안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 9월 인천의 초등학생 형제가 보호자 없이 집에서 조리를 하다 화상을 입어 형제 중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정부는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돌봄서비스 이용을 거부하는 보호자에게 과태료를 물리고 아동학대 신고를 활성화하는 방안 등을 도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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