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활동지원 등급 재산정 앞두고 우려…“당사자 욕구 반영토록 제도 정비해야”

2022.04.20 17:10 입력 2022.04.20 17:32 수정

지적장애·뇌병변 중복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현수씨가 받은 사회보장급여 통지서. 활동지원등급이 기존 1등급에서 9구간으로 변경되면서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이 391시간에서 240시간으로 줄었다. 3년간의 유예를 둔 산정특례 기간은 오는 2024년 10월 종료된다. 김씨 측 제공

지적장애·뇌병변 중복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현수씨가 받은 사회보장급여 통지서. 활동지원등급이 기존 1등급에서 9구간으로 변경되면서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이 391시간에서 240시간으로 줄었다. 3년간의 유예를 둔 산정특례 기간은 오는 2024년 10월 종료된다. 김씨 측 제공

서울 도봉구에 사는 뇌병변장애인 서기현씨(46)는 기존에 활동지원급여 2구간 판정을 받아 한 달에 440시간(국비 기준)의 활동지원을 받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신체적·정신적 장애 등의 사유로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보조, 방문목욕, 방문간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서씨의 집을 방문해 하루 14시간 이상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나 서씨는 2019년 10월 등급 갱신 종합조사에서 4구간이나 하향된 6구간 판정을 받았고 활동지원 시간이 하루 11시간가량으로 줄었다.

서씨는 국민연금공단과 도봉구청에 종합조사표 항목별 점수를 알려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과 구청은 “항의가 많아져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 악용 우려가 있다”며 자료 제공을 거부했다. 그러자 서씨는 행정 소송을 냈고 1심 재판부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주영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운영의 투명성 확보와 국민 알권리 보장 측면에서 정보를 공개할 필요가 충분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공단과 구청이 항소해 서씨는 기약 없는 법정 다툼을 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도래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시간 재산정을 앞두고 일선에서 혼란이 일고 있다. 활동지원 서비스는 2019년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모든 등록장애인이 신청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로 인해 도리어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줄어든 장애인이 상당수다. 기존의 활동지원 시간을 보장받는 3년의 산정특례 기간이 7월부터 순차적으로 종료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지원 시간이 깎인 장애인들은 그 사유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적장애·뇌병변 중복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김현수씨(40)는 2018년 8월 시설에서 나온 후 장애 2등급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 주어진 활동지원 시간은 한 달 94시간에 불과했다. 이 기간 김씨는 활동지원사가 없는 시간에 뇌전증으로 쓰러졌다가 뒤늦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김씨는 2019년 국민연금공단에 등급을 재산정해달라며 이의 신청을 냈고, 1등급으로 판정이 바뀌어 활동지원 시간이 한 달 391시간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등급 갱신 종합조사에서 다시 9구간으로 판정돼 활동지원 시간이 240시간으로 감소했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1박2일 전국 집중 결의대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500여명이 삭발식을 마치고 구호를 외차고 있다. 성동훈 기자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 촉구 1박2일 전국 집중 결의대회’에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500여명이 삭발식을 마치고 구호를 외차고 있다. 성동훈 기자

현재 종합조사표는 신체적 기능 제한을 측정하는 X1, 직장·학교 등 사회활동을 측정하는 X2, 가구 환경을 반영하는 X3 등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세 가지 영역에서 도출된 총점에 따라 종합조사표 15개 구간 중 하나에 해당하는 활동지원 시간을 받는 방식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최중증장애로 분류되는 1~6구간은 전체의 1.67%(1460명)에 불과했다. 1구간(하루 16시간 지원)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전국에 5명뿐이다. 12~15구간(하루 5시간~2시간)에 수급자의 85%(7만4409명)가 몰려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 유형과 정도뿐 아니라 당사자의 욕구와 특성을 반영할 수 있게 조사 항목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양숙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지원사업팀장은 20일 “20~30분 만에 끝나는 방문 조사가 과연 정확할지 의문”이라며 “장애유형별로 맞춤형 조사가 있어야 하고 항목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의학적 기준으로만 점수를 매기면 당사자의 욕구와는 동떨어진 삶이 될 수밖에 없고 장애유형별로 유불리가 크게 나타난다”며 “지금은 당사자가 자기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참여 구조가 전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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