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경찰서가 지난해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을 몰래 그려 넣었다며 엉뚱한 사람에게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한 이들에 대한 고소 사건을 불송치(각하)한 데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6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경찰의 ‘넥슨 집게손가락 사이버불링’ 수사 결과에 항의하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경찰의 성차별적이고 편파적인 인식이 드러났으며, 이 때문에 가해자 편을 드는 수사 결과가 나왔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경찰 불송치 결정서에 담긴 문제점을 짚어봤다.
‘한강에 빠져죽으라’가 다소 무례한 표현이라는 경찰
넥슨 하청업체 ‘스튜디오 뿌리’가 제작한 영상에 남성혐오 표현이 들어있다는 주장이 나온 건 지난해 11월이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일러스트레이터인 A씨를 해당 장면을 그린 당사자로 지목하고 그의 이름과 사진, SNS와 카카오톡 계정 등 신상 정보를 유포했다. 이어 ‘한강에 들어가서 죽으라’라거나 부모님을 모욕·혐오하는 내용의 메시지가 A씨에게 쏟아졌다.
A씨를 만나겠다며 업체 사무실까지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정작 그들이 문제 삼은 장면을 그린 사람은 따로 있었다. A씨는 사건 8개월이 지나도록 일상에 제대로 복귀하지 못했다. 한국게임소비자협회는 “악질적이고 지속적인 사이버불링으로 인해 피해자는 지금도 심신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이들의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서초서는 지난달 24일 A씨에게 보낸 불송치 통지서에서 “피의자들의 글은 고소인 등 특정 인물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단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는 욕먹어도 된다는 경찰
경찰은 A씨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밝혔기 때문에 비판과 공격을 받아도 된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경찰은 “A씨는 관련 그림 담당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나 소속 회사가 집게손가락 관련 사과문을 게시한 바 있고, A씨도 이전에 페미니스트를 동조하는 듯한 내용의 트위터 글을 게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이어 “피의자들이 A씨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 인정된다”고 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이같은 경찰의 인식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윤김 교수는 “경찰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공표한 사람이 온라인상에서 공격을 받는 것은 자초한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라며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마치 개인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문제인 것 마냥 사안을 개인화하고 있다”고 했다. 윤김 교수는 경찰이 A씨에게 가해진 행위를 ‘비판’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서도 “페미니즘이 불순한 사상이라는 전제하에 ‘불순한 생각을 하는 이들에겐 이 정도 강도의 글을 적더라도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라는 일종의 편견이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X에선 모욕해도 된다는 경찰
경찰은 X를 통해 A씨에게 전달된 메시지에 대해 “통신매체이용음란 혐의가 상당하다”면서도 X가 외국기업이라 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며 피의자 신원 확인을 위한 협조요청조차 하지 않았다. 사건을 담당한 서초서는 X 측에 자료제공을 요청하려 했지만 수사매뉴얼상 X는 협조요청이 어렵다고 돼있기 때문에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사이버불링을 조장한 것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X 등 해외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을 통해 발생하는 사이버불링을 국내 수사기관이 제지할 방법이 없다. 범죄 혐의가 엄연한데도 경찰이 뒷짐만 지고 있는 동안 온라인 사상검증과 사이버불링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 심화될 수 밖에 없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피해자들은 심각한 고통을 겪은 뒤 피해 구제 및 대책 마련을 기대하며 경찰을 찾은 것인데 그런 피해자들에게 ‘사실상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한 꼴”이라며 “크게 공론화됐던 사례인데 경찰이 X에선 모욕해도 된다는 선례를 남긴 꼴”이라고 말했다.
A씨 측은 경찰의 수사 결과에 대해 이의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서초서 관계자는 “이의신청이 접수되고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한다면 절차에 따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