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지난 9일 전차선 보수 작업을 하던 30대 노동자 2명이 사망한 사건을 두고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접 차선에서 작업 중인 차량이 있는데도 다른 작업 차량을 출발시켰고, 작업자들은 이 사실을 전달받지 못해 최소한의 대비조차 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충돌 사고 위험성이 충분히 예견되는데도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매뉴얼이나 시스템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이 11일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구로역 사고 당시 현장 소통 상황을 기록한 녹취록과 작업계획서를 본 전문가들은 “여태껏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 9일 오전 2시 구로역에서 선로 위 고압선로를 보수 작업 중이던 모터카(보수 작업이나 재료 운반 등에 쓰이는 궤도차)의 작업대와 옆 선로에서 오던 선로점검열차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작업대에 있던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숨졌다.
예견된 위험, 부재한 소통과 대비
사고 당시 녹취록을 보면 사고는 선로점검열차가 금천구청역을 출발한 지 6분여 만에 발생했다. 선로점검열차가 오전 2시9분 금천구청역에 “구로(방면) 발차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금천구청역은 “네 발차 가능합니다”라고 답했다. 선로점검열차는 1분 뒤인 2시10분 “네 바로 발차하겠습니다”라고 답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오전 2시16분 모터카에서 “철도 구로 전철모터카 이상” “저희들 사상사고 났습니다. 구급차 좀 불러주세요”라고 사고 발생을 알리는 통신이 구로역에 들어왔다. 구로역 하행선 위에서 작업 중인 모터카가 있었는데도 선로점검열차가 구로역 상행선으로 운행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한 모터카는 2년 전 도입된 신형 모델이다. 작업대가 좌우 4m까지 이동할 정도로 넓기 때문에 옆 선로를 침범할 수 있다. 철도노조는 이 같은 신형 모터카의 특성을 파악해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작업대가 양옆으로 늘어나며 인접선을 침범할 수 있는데도 사실상 충돌 가능성 문제에 대해 방안이 없는 것”이라면서 “작업 중에는 인접선에서 열차가 운행하지 않도록 아예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취록에서는 작업 현장이 겹치는 모터카와 선로점검열차가 사전에 소통한 기록이 나타나지 않았다. 작업을 위해 교행해야 하는 차량끼리 사전에 소통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모터카와 선로점검열차가 이런 충돌 사고 위험에 대해 미리 소통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사고 당시 소통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소통을 위한 절차가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고 당시 소통을 어떻게 했는지는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는 작업계획서, 이번 사고는 처음부터 없었다
전문가들은 작업계획서를 허술하게 작성하는 관행 탓에 작업자들이 현장의 위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문제점도 지적했다. 사고를 당한 모터카를 운행한 전철팀의 1장짜리 작업계획서에 인접 차선과의 충돌 가능성이 기재되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위험요인에 대한 안전조치방법’ 항목의 위험 요인에 ‘추락, 시설물 접촉’이 명시됐지만 인접선로를 운행하는 열차와의 충돌 가능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계획서로는 인접선로에서 다른 열차가 운행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없는 뜻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작업계획서에 모터카 작업대의 이동 반경이나 인접선로의 열차 운행 여부 등 작업 현장의 특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현실성이 떨어진 작업계획서”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작업계획서에 현장 상황도 등 그림까지 포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안전을 위해서 작업계획서를 더 꼼꼼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