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이틀 만에 사망한 20대 노동자
노동단체·유가족,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
출근 이틀 만에 열사병으로 숨진 20대 노동자가 쓰러진 이후 1시간여 동안이나 방치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형적인 온열질환 증세였지만 회사는 보호자에게 연락해 “집으로 데려가라”고 요구했다. 유가족과 노동단체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광주·전남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유가족은 19일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폭염에 쓰러진 노동자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업주를 처벌하고 진상을 규명하라”고 밝혔다.
A씨(27)는 지난 13일 전남 장성군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에어컨 설지 작업을 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열사병으로 숨졌다. 광주의 한 업체에 취업해 출근한지 이틀째 였다.
장성교육지원청은 이 학교를 포함해 학교 2곳의 에어컨 교체공사를 지난 5월 한 가전회사와 체결했다. 노동단체는 “A씨가 취업한 업체가 해당 가전회사의 하청을 받아 공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A씨의 죽음이 ‘회사 측의 방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가족은 학교 폐쇄회로(CC)TV를 통해 A씨가 사망 당일 오후 4시40분쯤 에어컨을 설치하던 학교 급식실을 뛰쳐나와 구토하는 장면을 확인했다. 이후 급식실로 돌아간 A씨는 곧바로 다시 나와 비틀비틀 걷다가 화단에서 쓰러졌다.
구토와 어지럼증, 의식 이상 등은 전형적인 온열질환 증상이다. 당시 장성지역 낮 최고기온은 34.1도, 습도는 70%가 넘었다. 첫 출근 날에도 A씨는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가 젖었을 정도로 땀을 흠뻑 흘린 채 퇴근했다고 한다.
유가족 측은 A씨가 쓰러진 이후 회사 대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회사 측은 오후 5시10분 화단에 쓰러진 A씨 사진을 찍어 어머니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전화를 걸어온 회사 관계자는 “A씨가 평소 지병을 앓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어 회사는 오후 5시20분 A씨가 쓰러진 학교 이름과 사진을 어머니에게 다시 문자메시지로 보낸 뒤 “데리고 가라”고 했다. 오후 5시27분에서야 회사는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 119에 신고해도 되느냐”고 물었고,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119에 신고했다.
119에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후 5시28분이었다. 구급대는 A씨가 화단에 쓰러진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5시41분쯤 현장에 도착했다. A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당시 체온은 ‘측정 불가’ 였으며 의식도 없었다.
A씨는 오후 6시3분쯤 광주의 한 종합병원에 도착했지만 호흡이 없어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응급처치 후 대학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오후 7시14분 결국 사망했다. A씨는 119와 처음 이송된 병원에서 2차례나 고온으로 인해 체온을 측정할 수 없었다. 숨진 이후 측정한 체온도 39도나 됐다.
노동단체와 유가족들은 “A씨가 전형적인 온열진환 증세를 보였지만 사측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회사를 경찰과 노동청에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박영민 노무사는 “A씨는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장비 등도 지급되지 않았는데 원청인 가전회사와 하청업체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전형적인 온열질환 증상을 보인 A씨를 방치한 것은 노동현장의 안전 교육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A씨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억울한 죽음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대해 A씨가 일했던 회사 측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회사는 현재 진행 중인 당국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필요한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