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들 “산재승인” 신청하며 진상조사 요구
병원 진단서 “기저질환 없고 열사병이 원인”
“쓰러진뒤 1시간 방치, 원청·하청 사과 없어”
출근 이틀 만에 열사병으로 쓰러져 숨진 20대 노동자가 사망 열흘이 됐지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 책임을 회피하며 사과조차 없다”며 당국의 신속한 조치와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유가족은 22일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에 고 양준혁씨(27)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산업재해를 신청한다고 밝혔다. 양씨는 전남 장성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던 도중 열사병 증상으로 쓰러져 숨졌다.
시민사회단체와 유가족들은 “근로복지공단과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은 사고 현장을 제대로 조사하고 고인의 열사병 산재를 즉시 인정해야 한다”면서 “관련자들을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따라 엄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양씨는 지난 12일부터 국내 한 대기업의 에어컨을 설치하는 하청업체에 출근해 일을 시작했지만 이틀 만에 열사병으로 숨졌다. 급식실 시스템 에어컨 설치 공사에 투입된 양씨는 지난 13일 오후 4시40분쯤 구토를 하며 급식실을 나오는 장면이 학교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급식실로 다시 들어갔다 곧바로 나와 구토를 한 뒤 비틀비틀 걷다가 화단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동료들은 곧바로 119에 신고하지 않고 회사를 통해 쓰러진 양씨의 사진과 작업하던 학교 이름을 어머니 휴대전화로 보내며 “데려가라”고 했다.
회사는 양씨가 상태가 심각해진 이후에도 어머니에게 전화해 “119에 신고해도 되느냐”며 동의를 구하고서야 신고했다. 신고가 늦어지면서 119구급대는 양씨가 처음 열사병 증상을 보인지 1시간여가 지난 오후 5시41분에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양씨는 체온이 너무 높아 ‘측정 불가’가 나왔고 의식도 없었다.
오후 6시3분쯤 광주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심정지로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응급처치후 대학병원으로 후송되는 과정에서 또다시 심정지가 왔고 오후 7시14분 결국 사망했다.
대학병원 진단서를 보면 양씨는 기저질환도 없고 복용하는 약물도 없이 건강했다. 병원은 사망원인을 ‘열사병’으로 진단했다.
양씨가 보인 구토와 어지럼증, 의식 이상 등은 전형적인 온열질환 증상이다. 당시 장성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34.1도, 습도는 70%가 넘었다. 첫 출근날에도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담배가 젖었을 정도로 땀을 흠뻑 흘린 채 퇴근했다고 한다.
유가족은 양씨의 시신을 광주 서구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 안치하고 장례를 미룬 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원청과 하청업체는 현재까지도 유가족에게 별다른 사과 등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박영민 노무사는 “해당 하청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 사업장으로 파악됐으며 원청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억울한 청년 노동자 사망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원청업체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청업체 대표는 “현장에서 최대한 응급조치를 한다고 했지만 불행한 일이 생긴데 대해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산재신청 등 유가족에게 필요한 조치에 대해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