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엔 ‘업무상 주의의무’ 있지만, 용산구청엔 의무 없어 책임도 없다

2024.10.01 21:34 입력 2024.10.01 21:39 수정

‘이태원 참사’ 경찰서장 유죄·구청장 무죄 판결문 보니

법률 유무·역할 차이가
유무죄 핵심 요인으로 봐

대통령실 용산 이전 영향
재판부 ‘경찰에 부담’ 인정

검찰 공소사실 입증도 미흡

‘이태원 참사’ 관련 책임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지난달 30일 엇갈린 1심 재판 결과를 받아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7년이 구형됐는데 이 전 서장은 금고 3년, 박 구청장은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1일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법이 명시한 경찰과 구청의 의무와 역할이 이런 차이를 낳은 핵심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가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 경찰의 이태원 참사 대응에 부담을 줬다고 인정한 점도 주목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재판장 배성중)가 이 전 서장과 박 구청장의 ‘업무상 과실’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잣대로 삼은 것은 참사 발생 및 대처 과정에서 경찰·구청의 ‘업무상 주의의무’가 법률에 어떻게 명시돼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거론하며 “경찰은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법이 정한 책무에 따라 경찰은 인파 집중을 예측하는 언론 보도, 경찰 정보보고, 과거 치안 대책, 전날 상황 등 위험 요소를 종합해 군중 밀집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서장을 비롯한 용산서 관계자들에게 관련 안전 대책을 적절히 수립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용산구청에 대해선 ‘재난안전법’에 안전 대책을 세우고 인파를 관리할 구체적인 주의의무가 담겨 있지 않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중 운집으로 인한 압사 사고가 (재난안전법에) 재난의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은 점,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해서도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마련하고 있지 않은 점 등 법령에 해당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고 임박 단계에서도 용산구청이 별도의 연락망을 구축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볼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했다. 업무상 주의의무가 법률 등에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으니 용산구청의 ‘업무상 과실’도 없었다는 얘기다. 박 구청장 등 용산구청의 조치가 미흡했을지언정 이태원 참사라는 사고 관련 주의의무가 없으니 책임도 없다는 논리이다.

검찰이 공소사실을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것도 박 구청장 등의 무죄 선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지난 3월 공판에서 “검찰이 공소장에 열거한 (용산구청의) 과실이 사건 발생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과실인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돼 있지 않은 것 같다”며 “피고인의 ‘주의의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추상적”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이런 지적에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법원은 이 전 서장 등의 양형 사유를 설명하면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이라는 ‘외부 환경’을 언급했다. 재판부는 “외부 환경으로 인해 용산경찰서의 경력이 다소 부족하였던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사고 당일 관할 내 대규모 집회·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경력을 실효적으로 운용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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