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기계의 정확도 높이는 ‘인간부품’ 육성공장 아닐까

2020.01.01 06:00 입력 2020.02.05 15:33 수정

①일자리보다 일거리

ㆍAI 학습데이터 가공 기업 ‘크라우드웍스’ 교육장 참관

이승태 크라우드웍스 매니저가 도로 사진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화면으로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와 머신러닝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AI가 CCTV 화면을 분석할 수 있게 하려면 ‘자동차’, ‘사람’ 등 개체마다 영역을 설정하고(① 바운딩) 이름을 입력해(② 라벨링)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줘야 한다. 이러한 학습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AI는 CCTV를 보고 무엇이 자동차이고 사람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이미지 크게 보기

이승태 크라우드웍스 매니저가 도로 사진을 촬영한 폐쇄회로(CC)TV 화면으로 인공지능(AI) 학습데이터와 머신러닝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AI가 CCTV 화면을 분석할 수 있게 하려면 ‘자동차’, ‘사람’ 등 개체마다 영역을 설정하고(① 바운딩) 이름을 입력해(② 라벨링) AI가 학습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줘야 한다. 이러한 학습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AI는 CCTV를 보고 무엇이 자동차이고 사람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소화전이 있는 비상구 사진, 다들 보이시죠? 이 사진에 있는 글자를 한 자도 빠짐없이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띄어쓰기 단위로 ‘바운딩’(영역 설정)을 하고 글자를 입력해주세요. 여기 ‘소화전’이라는 단어는 글자 사이 간격이 넓으니 ‘소 화 전’이라고 써야겠네요.”

마우스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혹 놓친 부분이 있을까, 모니터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대기도 했다. 이따금 질문하는 것 빼고는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작업은 단순했다. 컴퓨터가 사진 속 글자를 읽을 수 있도록, 단어마다 영역을 설정한 뒤 어떤 글자인지 적어주면 됐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한 자 한 자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내는 법을 알려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는 인공지능(AI)을 학습시키는 데 쓰인다. 식품포장 뒷면에 적힌 성분표, 세계사 강의노트 필기, 직장동료와의 카카오톡 대화…. 다양한 환경에서 수집·가공된 데이터가 쌓일수록, 컴퓨터는 처음 보는 사진 속 글자도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다. 휴대폰 카메라로 해외여행지 메뉴판을 비추면 자동으로 한글로 번역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이 데이터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기자는 지난 12월10일 서울 강남에서 진행된 ‘크라우드웍스’ 신규 작업자 교육장을 찾았다. 2017년 4월 설립된 크라우드웍스는 AI 학습데이터를 가공해주는 플랫폼 기업이다. 모든 AI 기업의 난제인 학습데이터 수집 작업을 미세한 일감 단위로 쪼갠 뒤 대중에게 맡기는 ‘크라우드소싱’ 방식으로 해결했다. 아마존의 크라우드소싱 플랫폼 미캐니컬터크를 AI 학습데이터 수집 분야에 국한해, 한국에 옮겨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크라우드웍스 박민우 대표는 인터뷰에서 “우리 업무의 70%는 단위 업무로 쪼깰 수 있다. 그것은 사실상 자택에서 플랫폼을 이용해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시대는 저물고 “노동인구의 50% 이상이 프리랜서, 계약직, 아르바이트가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것이 노동의 미래일까.

■ 21세기 ‘디지털 막노동’

사물명·식품 성분표 등 입력해
AI가 글자 읽도록 데이터 작업
사진 한 장에 1000~5000원 받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형 눈 붙이기.’ 크라우드웍스에 붙은 별명이다. 한국어 입력 단순노동으로 작업자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글자당 20원이다. 사진 하나를 전부 입력하면 1000~5000원 정도 받는다. 손톱 모양 추출하기, 손의 관절 위치 정확히 찍어내기, 신문 기사 읽고 육하원칙에 따라 Q&A 만들기…. 교육에서 실습한 작업 모두 건당 수수료는 몇십원에서 몇백원에 불과하다. 교육을 맡은 매니저 이승태씨는 “많은 분들이 이렇게 단순한 작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지 궁금해한다. 지난 11월25일 기준 크라우드웍스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우수작업자들 누적소득을 보면 월 3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린 분도 있다”고 했다. ‘글자당 20원을 받아 언제 300만원을 벌지?’ 이런 의심이 익숙하다는 듯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월 300만원 이상 소득 올리려면
하루 10시간 넘게 일해야 가능”
경력단절여성·대학원생·청년 등
정규직 벗어난 이들 ‘대안’ 삼아

“고소득 작업자는 1주일에 6일,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는 분들이에요. 이달 이만큼 벌었다고 다음달도 똑같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번다고 나도 이만큼 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오래, 꾸준히, 잘하시면 최저임금 이상 소득을 충분히 올릴 수 있습니다. 여러 번 하시다보면 돈 냄새가 맡아질 거예요.” 참석자 상당수는 “크라우드웍스로 하루 8만원을 벌었다”는 한 유튜버 동영상을 보고 왔다고 했다.

이 매니저는 “크라우드웍스를 전업으로 하는 것은 아직 추천드리지 않는다”고 했다. 전체 노동시장에서 일감 단위 노동은 여전히 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동이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사는 설립 2년 만에 네이버, 카카오, 삼성전자, 현대카드, 한국노동연구원 등 대기업과 공공기관·IT 기업 80여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고, 정규직 관리자를 매주 한 명꼴로 채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이터 바우처 지원 사업’의 공급기업으로 선정돼 정부 돈도 받고 있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에도 사람 손길은 여전히 필요했다. 글자 크기가 다른 경우는 한 단어로 입력할지, 글자 위에 다른 글자가 겹쳐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지 헷갈렸다. 크라우드웍스 게시판에는 작업 규칙과 반려 기준을 묻는 질문이 연일 올라온다. AI가 고도화되면 이런 단순작업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지 않을까. 실제 명함관리 앱 ‘리멤버’의 경우 2014년 도입 때까지만 해도 사람이 수기로 명함 정보를 입력했지만 지금은 그 인원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AI의 지능은 평균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해요. 여러분이 보고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모든 내용은 아직 컴퓨터가 배워야 할 수준이라는 뜻이죠.” 그가 말한 ‘아직’은 언제까지일까. 그때는 인간의 ‘보고 듣고 말하고 쓰는’ 능력은 쓸모없어지는 때일까. 이곳이 실은 기계의 정확도를 높이는 ‘인간 부품’ 육성공장이 아닐까. 섬뜩한 느낌이 스쳐갔다.

지난 12월10일 서울 강남구 양재R&D혁신허브에서 인공지능(AI)용 학습데이터를 만드는 플랫폼 기업 크라우드웍스의 신규 작업자 교육이 열리고 있다.  최유진 인턴PD

지난 12월10일 서울 강남구 양재R&D혁신허브에서 인공지능(AI)용 학습데이터를 만드는 플랫폼 기업 크라우드웍스의 신규 작업자 교육이 열리고 있다. 최유진 인턴PD

■ 임금노동의 종말

교육장에는 20~50대 다양한 연령대 남녀 작업자 10여명이 앉아 있었다. 공통점이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직장에서 상사와 부대끼는 생활에 지쳤거나,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하거나, 이런 삶의 방식에서 탈락한 이들이었다.

6세 아들을 둔 경력단절여성 30대 박윤지씨(가명)의 주업은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다. 재능공유 플랫폼 ‘크몽’에서 일감을 얻지만, 웹디자인을 전업으로 하는 전문가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긴 어렵다. 그가 택한 대안은 일감 단위 노동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앱 제작 및 판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환율투자까지. “지금 하는 일들을 모두 직업으로 친다면 10개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가 3개월쯤 됐을 때부터는 다시 취업을 하고 싶어 한 국비지원 교육기관에서 1년간 코딩을 배웠죠. 거짓말 안 보태고 2년간 100군데 넘게 이력서를 넣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은 10%도 안됐어요. 그마저도 ‘아이가 있으면 야근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떨어졌죠.”

울산에서 온 강민정씨(50·가명)에게 크라우드웍스는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할 수 있는 ‘소일거리’다. 그는 울산의 해양플랜트 업체와 외국 고객들을 중개해주는 일을 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고, 회복 후 5년 만에 일을 다시 하려 했지만 해양플랜트 산업은 쇠락하고 난 뒤였다.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다보니, 옛날 하던 방식으로 돈을 벌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졸업 후 용돈벌이로 할 만한 재택 아르바이트를 찾는 유학생, 스타트업에서 일하지만 벌이가 일정치 않아 부업을 시작하려는 직장인 등 20대 청년들도 눈에 띄었다. 모두 정규직 일자리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대안을 모색하던 중 이곳을 알게 됐다.

이들에게 ‘이제는 시급이 아니라 일감 단위의 보수 지급이 가장 효율적인 노동형태가 될 것’이라는 박민우 대표의 설파는 울림마저 줬다. “노동강도는 세지겠지만 그 역시 개인의 선택이다. 근무시간에 더 집중해 많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남은 시간은 여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변화”라는 박 대표 얘기를 누군들 쉽게 반박할 수 있을까. 그것이 노동자가 선택해 만들어지는 변화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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