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급할 때 선택지 없어···카드대출에 불법금융 ‘늪’으로

2021.07.20 06:00 입력 2021.07.20 08:28 수정

현금 급할 때 선택지 없어···카드대출에 불법금융 ‘늪’으로[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이미지 크게 보기

소득 없는 청년에 은행 문턱 높아
이자 비싸도 카드대출 쓸 수밖에

소방공무원을 준비 중인 정홍진씨(26·이하 가명)는 어느 날 카드사에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무직대출’, 즉 직업이 없어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아는 회사라 안심하고 돈을 빌렸다. “항공정비 관련 학과를 나왔지만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진로를 바꿨는데, 돈이 많이 들어 고심하던 차였거든요. 학원비에 체력시험까지 준비하다보니 1년에 1000만원은 넘게 들었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간단한 인증 절차만 거치면 300만원 빌리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갚기가 쉽지 않았다. 빚이 연체되자 신용등급은 8등급으로 떨어졌다. 생활비와 학원비로 쓴 빚을 갚기 위해 그는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매달 이자 5만원을 포함해 28만원씩 빚을 갚고 있다. “카드대출을 받은 게 후회되지만, 은행에서 대출받으려 해도 3개월 이상 일을 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에겐 선택지가 마땅히 없었어요.”

코로나19 충격이 닥치면서 경계청년들의 부채도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이들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등록금, 주거, 생활비, 병원비 등 때문에 진 빚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

■ 무직자에게 5분 만에 300만원 대출

카드론 잔액, 1년 새 21.4% 늘고
채무조정 신청도 14.2%나 증가

송지영씨(27)는 올해 3월부터 신용카드가 연체됐다. 그는 다니던 대학을 2년 만에 그만두고 국비지원으로 전산회계를 배웠다. 그러나 취업은 여의치 않았다. 카드빚은 늘어만 갔다. “일자리 구하는 것도 어렵고 수입이 없다보니 올해 초부터 빚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은행에서 우연히 만든 신용카드로 생활비랑 학원비 등에 주로 쓴 거 같아요. 나중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번 돈보다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지니 초조했어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곳에서 빌리다보니 1000만원 가까이 빚이 생겼어요. 요즘에는 신용을 점수로 보던데 거의 바닥이 된 것 같아요.”

그는 집에서 30분 이상 거리인 편의점에서 간신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일하고 있다. 올해 최저시급은 8720원이지만 7000원을 받는다. “편의점 사장이 원래 그 정도 받는다고 했어요. 최저시급보다 적지만 마땅한 일자리도 없으니 따질 형편이 아녜요.”

청년층의 늘어나는 빚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우리·하나·롯데·비씨)의 ‘연령별 현금서비스 잔액 현황’을 보면 올해 3월 기준, 만 29세 이하는 261억원으로 1년 전(242억원)에 비해 7.9% 증가했다. 모든 연령대에서 감소할 때 20대만 유일하게 늘어났다. 카드론 잔액도 3월 말 기준, 1184억원으로 1년 전(975억원)에 비해 21.4% 늘었다. 규모는 작지만 30대(2.3%), 40대(6.8%), 50대(12.2%), 60세 이상(15.4%)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다가 상환 능력이 떨어져 채무조정을 신청한 20대도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하반기(6487명)에 비해 2020년 하반기(7406명)에 14.2%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 연령대 채무조정 평균 증가율(5.9%)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 경계청년 노리는 ‘불법금융’

‘내구제 대출’ ‘작업 대출’ 등
청년 노린 불법금융 피해 속출

불법금융 피해를 입은 이들도 있다. ‘내구제 대출’이 대표적이다. 나를 구하는 대출의 줄임말로 주로 휴대폰을 개통해 업자에게 넘기면 현금 40만원가량을 받는다. 100만원이 넘는 휴대폰을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는 것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청년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주시윤 광주청년드림은행장은 “지난해 300명 정도 상담을 했는데 그중 10%가량이 불법금융 피해자였고, 내구제 대출이 대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주 은행장은 “업자에게 넘긴 휴대폰이 대포폰으로 사용되면서 보이스피싱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다. 명의도용으로 벌금형을 받게 되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생이거나 직장이 없는 금융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신용등급, 소득 등을 조작해 대출을 받게 하는 ‘작업대출’도 대표적인 불법금융 사례 중 하나다. 브로커는 이 과정에서 거액의 대출수수료를 챙긴다. 20대 초반인 주현서씨도 작업대출의 피해자였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그만둔 상태였다.

“생활비가 부족해 300만원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때 친구 페이스북을 보게 됐어요. 대출해준다고 써 있어서 연락했죠. 대부업체 3곳이랑 저축은행 1곳에서 총 800만원을 받았어요. 그중 500만원을 은행에서 인출해 현금으로 가져갔어요. 300만원도 30만원을 빼고 줘서 다시 달라고 했는데 안 줄 거 같아요.”

주 은행장은 “피해자 대부분은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본인 책임도 있다는 말에 취소하고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은 자산을 보유한 만큼 부실대출이 될 가능성이 적지만 청년층은 오로지 임금소득으로만 갚아야 하기 때문에 불안정하다”며 “취약계층에 한해 정책금융 문턱을 낮추거나 이전소득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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