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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고용평등법 ‘버전 2.0’ 필요…성평등 임금 공시제부터 시행하자

2021.08.13 06:00
특별취재팀 송현숙 논설위원·오경민 사회부 기자

일터의 성차별, 구조적으로 해결하라

2019년 6월17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선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9년 6월17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선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완전한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7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모집·채용, 교육·배치, 승진, 정년·퇴직 및 해고 등 고용의 과정과 임금과 임금 외 금품, 복리후생에서 남녀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100호와 111호 비준을 통해 국제적으로 임금 차별과 고용상 차별금지를 천명하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 한국의 일터에선 채용부터 해고, 극심한 임금격차까지 성별 차별이 공기처럼 익숙하다. 임원 100명 중 95명이 남성이고, 여성 노동자는 일생 동안 남성보다 30% 적은 임금을 받으며, 여성 3명 중 1명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이유로 일터를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차이인데, 우리 사회는 문제의식마저 느끼지 못한다. 선진국들은 이 같은 차이를 ‘성차별’이라 한다. 없애야 할 부끄러운 격차로 보고,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사회 구성원 절반의 가능성을 사장시키는 것은 사회 통합과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규율뿐인 박제된 법조항을 실제 생활에서 작동하는 ‘남녀고용평등법 버전 2.0’으로 새로 써야 한다. 그래야 남녀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 수 있다.

■성평등 임금 공시, 19대 대선 후보 4명이 공약

투명한 임금 공개, 성별 격차 개선의 첫발
어려운 기업들엔 정부가 업무 대행할 수도

임금은 노동자의 다양한 상황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악의 성별 임금격차를 개선하려면, 공신력 있는 투명한 임금 공개가 첫발이다. 성평등 임금 공시제는 성별 임금격차 완화를 위해 사업자가 성별·고용형태별 임금과, 임금과 관련된 각종 정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주요 후보 5명 중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4명 모두가 공약했던 사안이다.

현재 국내에서 제한적이나마 성별 임금이 공시되는 곳은 상장기업들과 공공기관, 지방공사·공단 등이다. 그러나 남녀 노동자의 평균임금과 근속연수 정도만 공개하는 정도여서 성평등 경영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공개되는 정보에 성별, 고용형태별, 직종별, 직무·직급별, 근속연수별 정보 등 최소 5가지 항목은 담겨야 유의미한 차별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보다 성별 임금격차가 작은 선진국 중 많은 곳에서 이미 다양한 형태로 성평등 임금 공시제를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서울시가 지난 2019년 말 산하 투자·출연기관의 성별 임금을 공시한 이후 다른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 성평등 임금공시제 임금정보 분석에 참여한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요한 것은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만든다는 목표라고 했다. 공개 당위성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정보 공개의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대상 기관과 기업들이 실무적으로 난색을 표한다면 유럽연합(EU)의 예에서 보듯 정부가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 해당 업무를 대행하는 방법도 있다. 공시 제도와 절차, 틀을 잘 마련하고 적절한 페널티와 인센티브만 갖춰도 보고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며 사업주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남녀 모두 돌봄에 참여하도록 유인, 강제해야

남녀 불문 일·가정 양립 가능한 문화 위해
남성에게도 육아휴직 의무화 방안 필요

여성 노동 전문가들은 여성을 1차적 돌봄 전담자로 보는 시선이 채용에서부터 배치, 승진, 해고까지 단계별로 일터 성차별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노동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면접장에선 여성 응시자에게 소위 ‘결·남·출’(결혼, 남자친구, 출산 계획)을 묻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질문은 여성은 직장에 소홀히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채용에서부터 여성의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이다. 출산과 육아기엔 여성의 고용률이 뚝 떨어지는 M자형 곡선울 만난다. 고용단절(경력단절) 여성의 수는 2011년 이후 매년 190만~200만명 규모로 전체 기혼 여성의 20% 수준이 꾸준하게 이어진다. ‘한국 여성의 생애- 갈등적 성별화와 계층화’ 논문을 보면, 한국의 기혼 여성 생애유형 중 경력단절 유형(M자형)이 4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성이 생애에서 일을 중심으로 일·가정 양립을 이루고 있는 경우는 8.7%뿐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20대 청년 대상 조사에서 꼭 결혼하겠다는 응답을 한 여성은 11%였다. 점점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직업이 중요해지고 있다. 전업주부인 부인의 지원을 받는 남성 노동자를 표준으로 생각하는 일터, 부인의 몫까지 2명의 일을 해야 하는 장시간 노동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남녀 불문 젊은 세대가 바라는 것도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성평등 직장문화다. 이를 위해 여성과 남성 모두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데에 무리가 없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육아휴직, 가족 돌봄이 여성에게만 낙인이 되지 않도록 남성에게도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시와 각종 평가에 반영하는 등 효과적인 강제 이행 방안을 찾아야 한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 일자리 찾아주기 등의 대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M자형 곡선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책 목표를 전환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 아닌, 모두를 위한 정책 필요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남녀고용평등법 ‘버전 2.0’ 필요…성평등 임금 공시제부터 시행하자

대기업·공무원 여성노동자뿐만 아니라
영세 사업장·비정규직도 혜택 누려야

여성 일자리와 일터 성평등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들은 대개 사정이 좋은 대기업과 공기업, 공무원 대상이다. 대표적인 고용개선 정책은 고용노동부의 적극적고용개선조치다. 전체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여성 노동자와 관리자의 비율을 일정 부분 충족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 중 300명 이상 사업체에서 일하는 비율은 9.6%에 불과하다.

자녀를 둔 남녀 노동자에게 절실한 육아휴직 제도도 사각지대가 넓다. 지난해 만 8세 이하 자녀를 양육하는 상용직 부모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이들은 8.4%뿐이다. 그중에서도 대기업 부모는 24.1%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각각 12.4%, 6.2%로 차이가 컸다. 불안정 노동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다.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742만6000명 중 여성이 55.1%(409만1000명)다. 여성노동자 5명 중 1명 이상(22%)은 고용보험 가입률이 극히 낮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각종 법 규정에서 빠져 있는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건이 열악할 가능성이 높은데, 규모가 큰 사업장이라면 사업주가 져야 할 의무까지 노동자 개개인이 부담하는 것이다.

적어도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사회가 개입해 필요한 이들 모두가 혜택을 누려야 한다. 의지만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가 회사에 직접 출산·육아휴직을 신청하지 않고 병원 기록만으로 해당 노동자의 임신이 사업주에 통보되며 자동적으로 휴직 신청이 이뤄지는 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노동자 성별에 따른 육아휴직·출산휴가 사용률과 복귀율을 임금 공시항목이나 여성가족부의 가족친화기업 인증 등 정부 평가 사업에 포함해 강제하는 방안도 검토하기 바란다. 정책 수혜자가 늘어나는 만큼, 필요한 예산은 국고에서 지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직접적인 성차별 개선책, 저출생 대책에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적극적 개선조치’가 필요하다.

■고용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해야

고용차별 언제든 상담하고 시정하도록
별도의 시스템 구축하고 적극 지원해야

현재 채용 성차별을 포함한 고용의 전 단계에서의 성차별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고평법’)로 금지돼 있고, 위반에 대해선 처벌이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는 선언적 조항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현실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고용차별에 대해 호소할 곳이 없다. 고평법은 형사처벌만 규정할 뿐, 더욱 중요한 구제와 예방 방안이 담겨 있지 않다. 1988년 고평법 시행 후 30년이 넘도록 고용상 성차별 소송은 30건 미만인 것으로 파악된다.

201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금융권과 공기업의 채용 성차별도 그때뿐이었다. 필기와 면접에서 남성 지원자는 점수를 상향하고, 여성 지원자는 하향해 채용 결과를 조작한 심각한 사안이었지만, 자료를 폐기한 관련 업체들은 자료제출의무 위반으로 과태료 500만원을 물었을 뿐이다. 고용상 성차별 업무는 다른 노동 사안들처럼 신고가 들어오면 지방관서의 근로감독관들이 조사해 처리한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각 104건, 77건, 60건이 접수됐지만, 위반 있음으로 결정돼 시정완료와 기소 조치가 취해진 것은 47건뿐이다.

정부도 고용 성차별의 구제절차가 미흡하다는 요구를 받아들여 지난 5월 고평법을 개정, 성희롱과 성차별 사안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구제절차를 신설했다. 법은 내년 5월 시행된다. 여성계에선 긍정적인 변화로 보고 있지만, 얼마나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나 스웨덴의 옴부즈맨처럼 차별 시정은 물론, 정책 연구 등을 통해 피해구제와 고용현실 개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심각한 성차별의 꼬리가 밟혔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채용 현장과 관련, 여성계는 정부가 채용 단계별 성비를 공개하도록 해 성차별 시정의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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