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띄운 ‘최저임금 차등적용’ 내년엔 안 하지만 “연구하자”는 공익위원들

2022.06.17 16:32 입력 2022.06.17 16:34 수정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임위 4차 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회의실에서 열린 최임위 4차 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을 심의·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가 내년도 최저임금에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일단 이번에는 최임위에서 수용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공익위원들이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자고 주장해 노동계에선 ‘정권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최임위는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4차 전원회의를 열고 내년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됐다. 최임위 위원 27명 전원이 참여해 표결한 결과 반대가 16명, 찬성이 11명이었다. 이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은 기존 방식대로 모든 업종에 동일한 금액이 적용된다.

최임위는 노동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씩으로 구성된다. 노·사는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공익위원들이 반대 쪽에 표를 많이 던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표결 이후 공익위원들은 업종별 차등 적용 여부와 방법, 생계비 적용 방법에 관한 통계·조사 등 연구를 고용노동부에 의뢰하는 방안을 안건으로 상정하자고 제안했다. 노동부가 이 연구를 내년 3월31일까지 완료해 제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3월31일은 노동부 장관이 최임위에 다음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는 시한이다. 업종별 차등 적용 연구자료를 2024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인 것이다.

노동자위원들은 공익위원들이 합의 없이 새로운 안건을 낼 수는 없다며 상정을 반대했다.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공방을 벌였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최임위는 다음 전원회의에서 이를 논의키로 했다. 최임위는 독립기구이지만 그동안 공익위원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노동계는 공익위원들의 연구용역 제안이 윤 대통령 주장을 의식해 업종별 차등 적용의 시행 물꼬를 터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노동자위원 일동은 17일 공동성명을 내고 “(공익위원들 제안은) 업종별 차등 적용 등 개악을 강행하겠다는 정부에게 최임위 명의로 길을 열어주겠다는 의도”라며 “공익위원 다수가 업종별 차등 적용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부당한 간섭에 굴복해 최임위의 독립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공익위원들 의견은 최저임금제도 개악, 무력화라는 윤석열 정부의 큰 그림 아래 정부와 사용자 손을 들어주는 데 활용될 것”이라며 “최저임금제를 무력화하는 업종별 차등 적용을 절대 수용할 수 없으며, 공익위원들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경영계에서는 공익위원들 제안대로 연구용역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익위원들 제안은 추후라도 업종별 차등 적용을 시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평가한다”며 “정부가 이러한 취지를 수용해 차등 적용을 위한 세부 시행방안을 시급하게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가운데 국회 앞 도로에서 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조합원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반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지난달 10일 국회에서 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가운데 국회 앞 도로에서 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조합원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반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업종별 차등 적용이 시행된 것은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1988년 한번밖에 없다. 업종별 차등 적용이 임금의 최저 수준을 정해 노동자 생계를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논란 때문이다.

최임위는 2017년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검토한 결과 업종별 차등 적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바 있다. 당시 TF는 다수의견으로 “최저임금 취지상 업종별 차등 적용의 타당성을 찾기 어렵다”며 “차등 적용되는 업종은 저임금 업종의 낙인효과가 발생하고, 업종별 차등을 위한 합리적 기준이나 통계 인프라도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업종별 차등 적용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21일 열리는 다음 전원회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심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수준 심의는 노사 양측이 각각 제출한 최초 요구안을 놓고 그 격차를 좁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노동계에서는 5%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인해 시민들 삶이 힘들어지고 불평등 양극화가 커지고 있다며 그에 맞게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많이 인상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도보다 5.1% 오른 시급 9160원(월급 191만444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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