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도사리는 낡은 산업단지

교체주기 무시, 헐값에 ‘땜질’…방치된 균열·부식이 사고로

2022.09.13 21:28 입력 2022.09.14 13:38 수정

(상) 쉼 없이 돌아가는 녹슨 설비들

충남 서산에 있는 대산산업단지의 모습. ‘대산산단’은 1980년대 말 조성을 시작해 199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30년이 넘어가면서 설비 노후화에 따른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충남 서산에 있는 대산산업단지의 모습. ‘대산산단’은 1980년대 말 조성을 시작해 199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30년이 넘어가면서 설비 노후화에 따른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30년 넘은 서산 대산산단 등 3대 산단
수십년 된 위험물 제조소 절반이 ‘문제’
입건·과태료 처분은 적발에 비해 미미

지난달 충남 서산시 대산읍 대산산업단지를 찾았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멈추고 주변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듯한 날이었다. 바다 내음이 나는 삼길포항을 지나 자동차로 6분 정도 이동하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나왔다. 대산산단에 입주한 석유화학공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쉼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공장 시설이 가동되고 있었다. 플라스틱 원료를 나르는 화물차량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내달렸다.

국가산단인 울산산업단지, 여수산업단지와 달리 대산은 일반산단으로 조성됐다. 대산항에 인접한 대죽리 일대가 ‘공식 산단’이고 인근에 있는 독곶리, 화곡리에는 한화토탈에너지스, 현대오일뱅크, 롯데케미칼, LG화학, KCC 등이 공장을 운영 중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 구역을 통틀어 ‘대산산단’이라고 부른다. 대산산단은 1980년대 말 조성을 시작해 1990년 초부터 본격 가동했다.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산단 가동 29년째가 되는 2019년부터 대형 화학사고가 잇달아 터졌다.

산단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관련 업체 직원의 도움을 받아 대산산단 사업장 일대를 둘러봤다. 내부까지 들어가진 못했지만 외관을 통해서나마 노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b>녹슨 벽</b>

녹슨 벽

도색 벗겨져 녹슨 배관…곳곳 화재 위험

플라스틱 기초원료인 ‘나프타’를 분해하는 공장 외관은 곳곳에 도색이 벗겨져 녹슨 흔적이 그대로 보였다. 주기적으로 페인트칠을 한다고 하는데 미처 손이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녹이 슬어 배관이 부식되면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폭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평소와 같은 압력에도 폭발사고가 일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유를 각 기업 정유공장으로 수송하는 파이프(배관)에서도 빨간 녹이 눈에 띄었다.

나프타 분해 공정의 핵심은 850도 정도 높은 온도로 가열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끓는점에 따라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원료로 분리된다. 수증기가 쉼 없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데, 그 입구(스택)가 되는 시설물은 원래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뻘겋게 녹슬어 있었다. 고온 증기를 원래 온도보다 냉각해 배출하도록 하는 열교환기 입구도 녹슬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동행한 직원은 “석유화학공장은 연속공정으로, 한번 멈추면 경제적 손실이 커 세우지 않고 터질 때까지 돌린다”며 “그러나 기계라는 게 한계가 있지 않나. 특히 석유화학공장은 각종 특수 화학물질들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계 수명보다 더 빨리 부식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불이 잘 붙는 물질이다. 그 때문인지 사업장 곳곳에는 ‘화기엄금’이라는 주의 문구가 붙어 있었다. 불꽃이라도 튄다면 대형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기에 사업장 안에는 자체 소방대가 있었다. 개별 기업마다 보통 소방차량이 4대씩 배치돼 있다고 한다.

사고, 노동자뿐 아니라 주민에게도 ‘트라우마’

한 시간 정도 둘러보고 바깥으로 빠져나오자 음식점 상가들이 눈에 띄었다.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건물도 역시나 가까워 보였다.

2020년 3월 발생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폭발사고는 이곳 주민과 노동자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음식점과 숙소를 함께 운영했다는 주민 A씨(53)는 “제가 사는 곳은 상가로부터 1㎞ 정도 떨어진 곳인데도 폭발사고 당시 ‘꽝’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폭탄을 맞은 듯한 정도의 느낌이었고 전쟁이 났느냐고 묻는 분들도 있었다”며 “바로 상가로 달려갔는데 창문이 다 깨져 있었고, 숙소에 머물던 노동자들이 깨진 창문에 다치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이어 “당시 폭발소리에 놀란 탓인지 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밤에 대형 화물차량이 다니면 노면 요철에 부딪치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 한동안 잠을 못 잤다”며 “주변에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분들도 있었다”고 했다.

롯데케미칼 대산공장에서 반경 500m 안에 사는 주민만 3000여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A씨는 대산산단 주변에 주민들이 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했다. 그는 “안전 문제도 있는데 화학물질이 유출될 경우 지역민들한테 치명적”이라고 했다. 2019년 5월에는 한화토탈 대산공장 유증기 유출 사고로 노동자와 인근 주민 260여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김종학 대산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정부에서 국가산단으로 지정해 관리해야 하고, 산단 주변 주민들에 대한 이주방안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며 “산단이 조성되고 30년이 되면서 큰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 걱정이 크다. 노후설비는 결국 비용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기업에서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b>녹슨 철골</b>

녹슨 철골

산단 관리실태 살펴보니…

낡은 설비는 대형 폭발이나 화재, 그리고 중대재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관리가 중요하다. 경향신문은 산단 관리 실태를 살펴보기 위해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소방청이 최근 3년간 진행한 대량위험물 제조소 전수조사 자료를 받았다. 소방청은 불법은 아니지만, 지정수량보다 위험물을 3000배 이상 많이 저장·취급해 위험도가 높은 사업장 455개, 제조소·저장소 및 취급소(이하 제조소) 등 7923개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해당 전수조사는 2018년 10월 경기 고양시에서 일어난 ‘고양 저유소 화재사고’ 이후 3년에 걸쳐 진행됐다. 조사 결과 사업장 349개, 제조소 4024개에서 정기점검 기록 허위 작성, 위험물 운반에 관한 세부기준 위반 등이 적발됐다. 연도별 적발률은 2019년 69.6%(2307개), 2020년 43.8%(796개), 2021년 32.9%(921개) 등으로 낮아졌다. 입건과 과태료, 행정명령 등 조치건수는 5324건이었다.

경향신문은 이 자료 중 3대 석유화학단지(울산·여수·대산) 관련 내용만 별도로 떼어내 다시 분석했다. 울산은 울주군 온산읍(온산단지), 동구와 남구 일대(울산·미포단지)로 봤다. 여수는 여수산단로를 기준으로 낙포단지길 일대 조성된 일부 공장도 포함했으며, 대산은 서산시에 조성된 사업장을 추렸다.

분석 결과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대량위험물 제조소 적발개소 중 3대 산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2951개)로 나타났다. 연도별 적발 건수 비중은 2019년 68%(1568개), 2020년 81.9%(652개), 2021년 79.4%(731개)였다. 개별 산단으로 보면, 울산산단이 전체 적발개소 중 60~80%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대산은 2019년 11.7%에서 2020년 28.1%로 비중이 늘었다가 2021년 7.9%로 떨어졌다. 여수는 2019년 2.4%, 2020년 10.1%, 2021년 15.5%로 지속해서 증가했다.

소방청은 제조소의 최초허가연월을 구분해 기록했다. 이를 통해 노후가 진행될수록 적발률이 높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3대 산단에서도 연식이 20~30년 된 제조소는 10곳 중 5곳(53.6%)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조소를 증설하고 용량을 키운 까닭에 2000년 이후 세워진 제조소의 적발률도 35.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녹슨 굴뚝</b>

녹슨 굴뚝

방유제 배수 밸브가 열린 채로 있는 경우도

적발 내용은 균열과 부식이 대다수였다. 방유제 균열, 빗물침투 방지판 균열, 소화배관 부식, 옥외탱크저장소 탱크하부 부식, 탱크 접지선 접속불량, 펌프설비 방유턱 법적기준 미달 등이었다.

방유제 배수 밸브가 개방된 상태로 있는 사례, 저장·취급 세부기준 위반, 정기점검 결과 미보존 등은 과태료 처분으로 이어졌다. 방유제는 옥외탱크의 균열과 부식, 전도 등으로 위험물이 탱크 밖으로 누설돼도 외부로 흐르지 않도록 일종의 둑 역할을 한다. 밸브를 열어두면 위험물은 그대로 외부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3대 산단이 받은 과태료 처분은 2019년 12건, 2020년 11건, 2021년 39건으로 나타났다.

입건은 2019년과 2021년 각 1건씩 있었다. 2019년 KCC울산공장은 위험물 저장소 기준 위반으로, 2021년 충남 코오롱인더스트리(합성수지 생산기업)는 위험물 안전관리자 대리자를 지정하지 않은 혐의로 모두 공장 대표가 입건됐다.

울산 에쓰오일, 울산 SK종합화학, 울산 정일스톤트헤븐사 등 3곳은 3년 연속으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울산 SK에너지는 2019년 한 해 동안에만 156건, 3년간은 총 244건의 행정명령을 받았다.

이른바 ‘대산 4사’로 꼽히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현대오일뱅크, 한화토탈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안전·환경 분야에 807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이번 소방청 전수조사에서 부식과 균열 등이 적발돼 행정명령, 현지시정 조치를 받았다. LG화학은 옥외탱크저장소 배수밸브 개방 문제 등으로 지난해 과태료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난 2월 중대재해가 발생한 여천NCC 3공장은 지난해 8개 제조소에서 행정명령 16건을 받았다. 펌프설비 방유턱 균열과 펌프설비 외부 밸브가 없다는 점 등이 지적됐다. 소방청은 “각종 설비의 최초 시공 이후 운영에 있어 건전성 부문에서 미흡한 사항이 적발돼 해당 시설에 대한 수리·개조 및 이전 행정명령을 했다. 관계인의 안전의식에 대한 홍보와 정기적인 행정감독이 필요하다”며 “특히 대규모 위험물 산업단지의 경우 기공시기가 오래된 점을 고려해 시설의 노후화에 대한 특별한 관리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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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산단 관리법 제정 등 특별관리 시급
“결국 비용 문제…기업, 과감히 투자해야”

안전한 공장은 없다

전문가들은 노후 산단에 대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점검과 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데, 이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다 보니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노후 산단 관리를 위한 법 개정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순 일과건강·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사무국장은 “오래된 산업단지여도 점검과 교체만 제대로 이뤄지면 사고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교체주기가 지켜지지 않고 지키더라도 싼값으로 하려다보니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며 “사고가 대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노후화한 산단을 ‘특별하게’ 별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산업현장이라는 게 예외 없이 위험한 곳이고, 안전한 공장이 없다. 어디든 위험한데 어떻게 안전을 확보하고 오염을 방지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가 “기업과 민관 협동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이 교수는 “기업이 시설 개·보수 등 근본적인 수술을 위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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