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낡은 노동법에 난 구멍 메워가는데…여전히 ‘뻥’ 뚫린 한국

2024.05.13 14:02 입력 2024.05.13 18:18 수정

EU, 플랫폼 종사자를 ‘노동자’로 추정

호주, 화물차 안전운임제 부활 법안 통과

“좁디좁은 노동자 개념 확장해야”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이 지난 8일 최저임금 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 중 노동자 요구를 담은 박스를 배달통에 넣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회견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정효진 기자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조직국장이 지난 8일 최저임금 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 중 노동자 요구를 담은 박스를 배달통에 넣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 회견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정효진 기자

“최저임금제도는 차등이 아니라 확대적용을 논의해야 한다.”

배달라이더 출신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최저임금 투쟁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동시장 양극화를 강화하는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대신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특수고용직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뜻의 발언이다.

한국사회에서 플랫폼·특수고용직 노동자, 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낡은 노동법 구멍을 막는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국제사회는 노동법 밖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유럽은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자라는 판결이 잇달아 나온 데 이어 EU 의회는 지난달 24일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을 가결했다. EU 회원국은 2년 이내 지침 내용을 국내 법·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이 지침은 플랫폼 종사자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돼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업무수행에 대한 통제·지시를 보여주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고용관계가 있다고 본다. 고용관계가 추정될 경우 플랫폼 종사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점을 플랫폼 기업이 입증해야 한다. 스페인의 경우 2021년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플랫폼 종사자에게 노동자 지위를 부여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유럽운수노련이 ‘플랫폼 노동 지침’ 가결을 환영하며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이미지.

유럽운수노련이 ‘플랫폼 노동 지침’ 가결을 환영하며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이미지.

한국에선 지난해 말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12월21일 ‘타다’ 운영사 VCNC의 모회사였던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전직 타다 운전기사 A씨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고, A씨 사용자는 쏘카라는 것이다. 다만 유럽과 달리 국내에선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추정하는 방식의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비임금노동자를 임금노동자로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가진 못해도 최저보수 보장 등의 방식으로 노동법 구멍을 막으려는 시도도 국제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시애틀 두 도시는 플랫폼 종사자인 배달라이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있다.

호주 의회에서는 지난 2월 화물노동자 최저임금제 격인 안전운임제가 부활하는 ‘구멍 막기 법안’이 통과됐다. 법안엔 화물노동자뿐 아니라 배달라이더 등 플랫폼 종사자가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도 담겼다. 스티븐 코튼 국제운수노련 사무총장은 “노동자인지, 개인사업자인지, 기그(gig·임시직) 경제에서 일하는지와 관계없이 호주의 도로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안전하고 공정한 운임, 노동시간, 노조할 권리 등에 대한 기준이 설정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화물차 안전운임제는 3년 시한으로 도입됐다가 2022년 12월31일 폐지됐다.

오민규 플랫폼노동희망찾기 집행책임자는 “최저임금 보장 등 일부 권리가 보장된다 해도 결국 모든 논의는 노동자성 인정 여부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며 “좁디좁은 노동자 개념을 뜯어고치는 논의를 더는 미뤄둘 수 없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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