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보와 털보>, 노홍철의 넷플릭스 타령이 드러내는 글로벌 콘텐츠의 진실

2021.12.17 16:34 입력 2021.12.17 16:37 수정
칼럼니스트 위근우

이쯤되면 ‘넷플릭스님이 보시기에 좋더라’가 방송 목표인 거죠?

‘먹보’ 비(정지훈)와 ‘털보’ 노홍철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식도락을 만끽하는 여행 버라이어티 <먹보와 털보>가 지난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해당 프로그램 예고편 캡처

‘먹보’ 비(정지훈)와 ‘털보’ 노홍철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전국을 유랑하며 식도락을 만끽하는 여행 버라이어티 <먹보와 털보>가 지난 11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넷플릭스 데뷔작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해당 프로그램 예고편 캡처

서른세 번.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 2화 한 에피소드에서만 노홍철의 입에서 “넷플릭스”라는 말이 나온 횟수다(한글 자막 기준, 비 발언은 제외). 가수 비와 함께 제주도 바이크 여행을 온 그는, 지역 유명 스테이크 식당 예약이 마감되었다는 이야기에 전화를 걸어 방송인 노홍철임을 밝히고 넷플릭스 이름까지 덧붙여 예약을 성사시켰다. 연예인 특혜 논란이 벌어졌지만, 해당 장면이 문제가 될 걸 모르고 상황의 앞뒤 맥락을 잘라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만들려 한 제작진의 안일한 실수였다.

해당 장면의 찜찜함은 다른 곳에 있다. 노홍철이 예약을 성사시킨 뒤 예약에 실패했던 비를 놀리자, 비는 “신분만 밝히기로 했는데 형은 지금 넷플릭스 얘기까지 하면서 (그쪽에서) 마음이 흔들렸어”라 항변했다. 맞는 말이다. 단순히 노홍철이 반칙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홍철이 재차 넷플릭스를 언급하려 할 때 비가 재채기를 하자 노홍철은 “넷플릭스 얘기하는데 감히 본능을 참지 못해?”라 말하고, 바로 이어진 인터뷰 영상에서도 그는 “여기가 어딥니까, (바로) 넷플릭스”라 강조한다.

노홍철·비 두 남자가 보여주는
맛·멋·풍경은 그 자체가 아닌
넷플릭스에 바치는 객체로 전락

그의 넷플릭스 타령은 집요하고 정신 사납지만 이것도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건 쉬지 않고 “넷플릭스!”를 외치는 노홍철과 그런 모습을 담아내는 제작진을 통해 <먹보와 털보>에서 보여주는 모든 풍경은 넷플릭스에 바치는 객체화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돌+아이’ 캐릭터 노홍철의 예능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변수가 아닌, <먹보와 털보> 기획과 형식에 이미 내재한 문제가 숨길 수 없이 터져 나온 것에 가깝다.

2화에서의 제주 녹산로 꽃길, 3화에서의 고창 갯벌, 9화에서의 남해 독일마을 등 <먹보와 털보>가 담아내는 지역의 영상미는 상당히 뛰어나다. 지역 노포나 소위 힙한 맛집에서 즐기는 다양한 메뉴의 이미지도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처럼 먹음직스럽게 공들여 찍었다. 무의미한 입수 내기나 이상형 월드컵 같은 대화나 나누는 걸 재밌게 보긴 어렵지만, 바이크를 타고 경치를 만끽하며 질주하는 비와 노홍철에게 이입한다면, 이 시리즈는 그럭저럭 코로나19 시대에 충족하지 못했던 여행과 식도락에 대한 대리만족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이입하기엔, 달리는 바이크로도 뿌리칠 수 없는 위화감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서른세 번.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 2화 한 에피소드에서만 노홍철의 입에서 “넷플릭스”라는 말이 나온 횟수다(한글 자막 기준, 비 발언은 제외). 해당 프로그램 예고편 캡처

서른세 번.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먹보와 털보> 2화 한 에피소드에서만 노홍철의 입에서 “넷플릭스”라는 말이 나온 횟수다(한글 자막 기준, 비 발언은 제외). 해당 프로그램 예고편 캡처

제작진이 바이크를 타는 두 남성을 중심으로 배경의 아름다움을 강조할수록, 그들이 달리는 지역이라는 공간은 로컬리티(locality)로부터 분리된 탈맥락화된 이미지로서만 존재한다. 지역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가 두 사람에게 제공한 대형 BMW 바이크의 반짝반짝한 광택과 제주도 푸른 바다 위에 부서지는 햇살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은 영상 안에서 말 그대로 ‘그림’이 되는 사물일 뿐이다. 두 중년 남자가 ‘죽인다’, ‘미쳤다’ 정도의 어휘만 빈곤하게 반복하며 풍광과 음식 맛에 감탄할 때마다 공간의 맥락 역시 빈곤해진다. 마치 달리는 바이크 곁을 스치며 뒤로 사라지는 풍경처럼 즉물적이고 휘발적인 소비에 대한 감탄사만 남는다.

서울 용산과 서울 강남 번호표를 단 두 대의 대형 바이크가 지역의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마치 일종의 정복처럼도 보인다. 독일마을에 간 노홍철은 옛날 같지 않은 피부 탄력 이야기를 하다 “재밌는 거 너무 많은데, 나 이거 다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라 한탄한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다만 그들이 거쳐온 각 지역을 그저 재미의 대상, 구경의 대상으로 프로그램 스스로 규정해버릴 때 예능의 서사는 공허하고 불편해진다. 방송국 카메라의 시선이란 어느 정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지만, 형식적으로 가장 흡사한 EBS1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에서 요리연구가 신계숙 교수가 지역민들과 음식과 그들의 삶에 대해 소통하던 모습과 비교해보라. 서울 건물주인 두 남자가 오로지 관광객으로서 매 순간을 소비하고 지역은 매 순간 관광지로서 소비될 뿐인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구도 안에서, 서울은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도 중심을 차지하고 지역은 가장 아름답게 그려지는 순간에도 주변부로 밀려난다.

노홍철의 예능 과욕이라기보단
프로그램 기획과 형식에 내재된
‘자본에의 찬양’ 문제가 분출된 것

노홍철의 넷플릭스 타령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정한 의미를 드러낸다. 로컬을 자생적인 문화와 목소리의 주체가 아닌 서울의 주변부로 밑에 두는 권력의 피라미드에서 맨 위를 차지하는 것은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플랫폼이다. 서른세 번이나 넷플릭스를 언급했던 2화에서, 제주도 선녀탕에 입수한 노홍철은 자신과 바다를 담은 하늘 위의 카메라를 바라보며 “본사에서 보고 있다”며 다시 한번 “넷플릭스”를 연호한다. 비와 함께 일몰을 바라보는 중에 슬쩍 뒤돌아 넷플릭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카메라에 강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홍철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역 풍경을 응시하고 소유할 단 하나의 주체로 넷플릭스를 호명한다. 넷플릭스만이 시선의 주인이다. 스테이크 하우스와 선녀탕과 일몰은 대상화되며, 그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예능으로서 별로 인상적이지 않은 <먹보와 털보>가 글로벌 플랫폼 내 로컬 콘텐츠의 딜레마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가 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넷플릭스가 투자한 회당 6억원의 제작비가 있었기에 고속 드론과 러시안 암을 이용해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두 사람과 그들이 지나는 한국 곳곳의 풍경을 마치 할리우드 로드무비처럼 유려하게 담는 게 가능했다. 논란이 됐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처럼 넷플릭스의 이름값이 섭외에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은 글로벌 가입자들이 소비하기 딱 좋을 만큼 구체성을 잃는다.

3화에서 두 사람의 바이크와 말 한 마리가 해 지는 모래사장을 함께 달리는 마법 같은 장면에서 노홍철은 “생큐,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를 외친다. 감사의 대상으로 갯벌과 모래사장을 지켜온 이들이 아닌, 넷플릭스 CEO 이름을 부르는 건 지역과 지역민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는 행동이지만, 또한 이 콘텐츠의 본질을 드러내는 행위기도 하다. 글로벌 자본에 로컬의 고유성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게 아니라, 상품이 될 가능성을 통해서만, 아니 자본의 투입을 통해 예쁘고 무난한 상품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가린 ‘글로컬(Glocal)’ 따위의 신조어가 그러하듯,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거나, K콘텐츠만의 고유성과 깊이가 세계를 휘어잡는다는 식의 언술은 기만이거나 소설이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 <먹보와 털보> 4화 초반부, 헤이스팅스의 경영서 <No Rules Rules>까지 가져와 넷플릭스 타령을 하는 노홍철에게 비는 “형은 사대주의”라고 지적하고, 노홍철은 “코스모폴리탄”으로 불러달라 말한다. 사실 둘 다 맞는 표현이다. ‘코스모폴리탄’을 사해동포의 개념이 아닌,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소비자로 이해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타이틀과 넷플릭스 순위로 자국 콘텐츠의 가치를 매기는 것이 바로 사대주의이자 신자유주의 시대의 세계시민주의다. 이러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각 로컬의 개별성은 <오징어 게임>의 달고나처럼 특이하되 모두가 핥아먹을 수 있는 형태로서만 주목받을 수 있다. 심지어 자국에서조차. 한국 지상파 예능을 대표하던 PD가 독립해 처음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이 이러한 경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 시리즈에 대한 비판적 담론조차 ‘왜 글로벌 OTT 한국 예능은 세계에 통하지 않느냐’로 소급하는 지금 이곳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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