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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빅데이터 기술에 해킹엔진도 개발 추진

2016.09.05 10:40 입력 2016.09.05 10:53 수정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김신애 통신원

KTL ‘댓글부대’ 의심 용역업체 사장 “해킹기능되는 검색엔진 개발”

‘댓글부대’ 의심을 받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글로벌 기술정보 용역팀이 지난해 1월 제출한 최종 용역보고의 한 페이지. 일종의 상황실인 K룸의 운영위원이 원격위성으로 정보 이용자들의 핸드폰 이용내역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해킹툴을 연상시킨다.

‘댓글부대’ 의심을 받은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글로벌 기술정보 용역팀이 지난해 1월 제출한 최종 용역보고의 한 페이지. 일종의 상황실인 K룸의 운영위원이 원격위성으로 정보 이용자들의 핸드폰 이용내역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해킹툴을 연상시킨다.

<경향신문>이 2014년 말 처음으로 공공기관 예산으로 운영되는 ‘댓글부대’ 의혹을 고발한 후 근 2년이 흘렀지만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글로벌 기술정보 용역팀을 둘러싼 궁금증은 풀리지 않고 있다. 해당 사업은 전 세계 267개국의 수출정보를 국내 1만2000개 기업에 실시간으로 제공해 연간 1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창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공만 하면 그야말로 제대로 대박을 칠 수 있는 획기적인 용역사업이었다.

문제는 이 사업이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무명의 신생 매체에 의해 추진됐다는 데 있다. 더구나 해당 용역은 예산 배정 과정, 용역팀 구성, 최종 용역보고서 내용까지 국정원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글로벌 정보 제공이라는 취지로 추진된 이 사업이 댓글부대로 의심을 받기 시작한 이유다.

2014년 2월 조달청 입찰도 거치기 전 서울 구로동 KTL 별관에 자리 잡고 비밀리에 이 용역을 수행한 업체는 <그린미디어>라고 불리는 온라인 신문사였다. 이 신문사 사장은 <파이낸셜뉴스>와 <아주경제> 편집국장을 거친 박형준씨였다.

기자가 박씨와 처음 만난 것은 1단계 용역사업이 마무리돼 가던 2014년 12월이었다. 당시 2단계 용역에 대한 예산도 확정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는 100%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는 기자에게 “<경향신문>에서 고생하지 말고 나랑 같이 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방화벽 뚫을 수 있는 검색엔진
과연 그는 뭘 믿고 사업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을까. 기자가 보기에 이 사업은 대단히 위험해 보였다. 우선 당시 박씨가 운영하는 <그린미디어>는 2012년 4월 대한항공 퇴직임원의 부인이 부업으로 운영하던 법인을 5000만원에 인수해 설립한 업체로, 글로벌 기술정보 제공과 관련한 유사용역 실적이 전무했다. 둘째로 이 업체에서 발행하는 <글로벌이코노믹> 소속 기자 수는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박 사장의 까칠한 성격 때문에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하기 일쑤였다. 업체의 규모나 기자 수로 볼 때 전 세계 1500여명의 통신원을 두고 267개 국가의 수출정보를 1만2000개 기업에 실시간으로 제공한다는 계획은 ‘사기’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그와의 두 차례에 걸친 인터뷰 녹음파일은 재생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 녹음을 다시 찬찬히 들으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박 사장이 KTL 별관에서 있던 용역팀과 별개로 해킹툴을 장착한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있다고 털어놓은 것이었다. 당시 용역팀은 짐스(GIMS)로 불리는 정보운영시스템 개발을 하고 있었고, 그는 이 짐스를 검색엔진이 들어가기 위한 ‘집’에 비유했다.

“엔진을 붙이려면 그냥 엔진만 갖고 됩니까. 포털도 내부에 (검색)엔진이 붙어 있잖아요. 쉽게 얘기하자면 엔진이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있어야 될 거 아니에요. (지금 KTL 용역팀에서) 그거 개발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자신은 해킹을 포함해 자동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검색엔진을 개발하고 있고, KTL 용역팀에서 개발 중인 짐스는 수집된 데이터를 분류하고 가공해 정보를 배포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물론 중간 중간 ‘내가 이거 개발하느라 10억원을 썼다’ ‘10대 재벌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등 허풍 섞인 말을 자주 늘어놓는 바람에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검색엔진 개발 자체를 지어내서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번 입 밖으로 말을 꺼내놓기 시작하자 그는 거침이 없었다.

“검색엔진은 키워드를 치면 정보를 다 캐가지고 와. 거기에 알고리즘, 쉽게 얘기해서 인공지능이 붙어 있기 때문에 막아놓은 것까지 계속 두드려 가지고 와 버려. (검색엔진에)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박 사장이 얼떨결에 검색엔진이 해킹 기능까지 갖고 있다고 자랑한 것이다.

KTL 용역팀이 그동안 ‘댓글부대’로 의심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사용한 짐스 시스템 설계도에 개인 스마트폰이나 PC에 돌아다니는 정보까지 긁어모을 수 있는 ‘크롤링’ 기능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여기에 해킹엔진까지 장착을 시도했던 것이다. 물론 박 사장은 해킹엔진은 유료로 운영되는 외국 사이트들에서 국내 중소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악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빅데이터 전문가인 한 사립대 교수는 “해킹이란 기본적으로 원격으로 스마트폰이나 PC 사용자들을 감시한다는 의미인데, 댓글부대 같은 조직이 해킹 능력까지 갖춘다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KTL 용역팀이 개발한 앱에 ‘위치정보’나 ‘상대방 데이터 송신’ 기능이 깔린 스파이웨어 등을 심어놓을 경우 실시간으로 이용자의 스마트폰이나 PC 사용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댓글부대가 해킹 기능을 갖추면 특정한 콘텐츠를 다량으로 무차별 유포시키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가 상대방 후보 전략이나 동선을 미리 탐지하고 타깃 대상별로 선제적 선거 여론조작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보 수집 넘어 상대방 전략 탐지 가능
실제로 KTL 용역팀이 지난해 1월 제출한 최종 용역보고 짐스 운영구조를 보면 K룸이라는 100평 규모의 상황실에서 20여명의 운영인력이 상주하며 원격으로 정보이용자들을 감시하는 그림이 붙어 있다. 또 짐스 운영을 위한 6개월짜리 교육훈련 과정에도 ‘디지털 감시’ ‘전자감시’라는 항목이 등장한다. 해외에 파견나간 통신원들이 전 세계 수출정보를 수집해 중소기업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다는 당초의 용역 목적과는 많이 벗어난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 사장은 어떻게 해서 해킹툴을 장착한 검색엔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박 사장이 2012년 4년 <그린미디어>를 처음 설립할 당시부터 1년간 함께 일했던 김모씨는 해킹이나 검색엔진 얘기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박 사장은 요리, 춤, 역사 콘텐츠 등 신문을 특화시키고 이를 통해 광고를 늘리는 통상적인 영업전략을 갖고 고민했지 검색엔진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박 사장을 잘 아는 주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가 ‘댓글부대’로 의심되는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은 2013년 5월 무렵이었다. 박 사장이 국정원에 발이 넓은 민진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소장과 함께 KTL을 방문해 글로벌 정보용역을 제안한 것도 그 시점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박 사장은 ‘댓글부대’ 용역 논란의 핵심 인물인 국정원 출신의 김흥기씨와도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박 사장 주변의 한 인사는 “박 사장이 자신의 어머니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과 가까운 친척이고 (국정원 내) 자신과 잘 어울려 다니는 마피아들이 있다고 자랑을 많이 했다”고 귀띔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서 활동하다 미래부 창조경제 관련 사업으로 활동무대를 옮긴 김흥기씨와 박씨가 연결된 것도 국정원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KTL 내부에서 박씨의 제안을 받아 용역사업을 추진한 정완수 본부장도 마찬가지다. KTL의 한 직원은 “KTL 정보통신기술 인증업무는 국정원과의 업무협조가 필수적인데, 정 본부장이 2000년대 초·중반 정보통신 인증업무를 하면서 국정원 내에 아는 사람이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KTL ‘댓글부대’ 논란의 핵심 4인방이 모두 국정원과 이런저런 인맥으로 얽혀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2013년 8월 김흥기씨가 중국과학원 빅데이터센터와 계약을 체결한 것과 박 사장의 해킹 검색엔진 개발도 하나의 흐름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6월 김씨가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보수단체 모임에서 새로운 형태의 애국 청원사이트 운영을 제안한 것도 마찬가지다. ‘댓글부대’가 빅데이터 기술에 해킹 기능까지 접목시키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징표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진보진영 언론들의 인식은 여전히 2012년 대선 당시 재래식 댓글부대에만 머물러 있다. 이래저래 내년 대선이 또다시 공작정치로 얼룩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경고벨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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