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씨 부검영장 대치 안팎
시민단체 등 300명 ‘인간 스크럼’ 짜고 경찰 진입 차단
경찰, 유족과 면담 무산…반발 거세지자 “다시 검토”
경찰이 일요일인 23일 고 백남기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압수수색 검증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족 측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면서 경찰은 영장 집행을 일시 보류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30분쯤 백남기투쟁본부에 영장을 집행하겠다고 통보했다. 홍완선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오전 10시쯤 경찰관 80여명과 함께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영장 집행을 시도했다. 경찰은 장례식장 인근에 병력 800여명을 배치했다.
영장 집행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시민들이 서울대병원으로 모여들었다. 투쟁본부 관계자와 자발적 참가자들로 구성된 ‘시민지킴이단’, 수녀 등 300여명은 ‘인간 스크럼’을 짜고 장례식장 입구에서 경찰 진입을 막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정재호 의원 등 야당 정치인도 함께했다. 시민들은 “우리가 백남기다. 반드시 지켜내자” “부검 말고 특검하라” “부검 결사 반대” 등의 구호를 외쳤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된 지하 1층 영안실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 통로와 지상 계단을 각각 통하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시민들은 지하 통로 입구를 승합차 2대로 막았다. 지상 계단 통로에는 각종 가구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또 영안실 바로 앞에선 대학생들이 쇠사슬로 서로 몸을 묶는 ‘인간 쇠사슬’을 만들어 경찰 진입을 대비했다.
반발이 거세자 경찰은 진입을 중단하고 유족과 면담을 시도했다. 현장에 있던 야당 의원들이 중재를 섰다. 홍 서장은 유족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유족이 직접 만나 부검 반대 의사를 밝히면 오늘은 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유족에게 전했다. 그러나 유족은 경찰과의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전달했다. 경찰은 유족의 뜻을 존중해 영장 집행을 중단했다.
홍 서장은 낮 12시쯤 철수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유족과 충분히 협의하고자 했다”며 “유족과 만나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언론을 통해 (유족으로부터) ‘오늘은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홍 서장은 다시 영장 집행을 시도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영장 집행 시한이) 이틀 남았는데 다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홍 서장의 입장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홍 서장 뒤편에서 ‘부검 반대’라는 손팻말을 들고 영장 집행에 항의했다.
경찰이 떠난 후 유족과 투쟁본부는 오후 1시쯤 기자회견을 열고 부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백씨 장녀인 도라지씨는 기자회견에서 “자꾸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하고 장례를 못 치르게 하는 경찰을 만나고 싶겠느냐”며 “부검영장을 강제집행하려는 꼼수에 절대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라지씨는 또 “우리가 선임한 법률대리인을 만나는 것이나 우리 가족을 만나는 것이나 똑같다”며 “더는 가족을 괴롭히지 말라”고 호소했다.
투쟁본부 역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부검영장 집행을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투쟁본부 관계자와 시민들은 이날 장례식장 1층 입구에서 밤을 새우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부검영장에 적힌 유효기간은 25일 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