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2019.05.04 06:00 입력 2019.05.08 17:03 수정

‘뚱카롱’의 사회학

[커버스토리]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간이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쪼그려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 메모장을 보며 영어 단어를 외우는 사람, 선 채로 뜨개질하는 사람…. 지난달 18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평범한 주택가 골목. 오전 7시30분에 18명이 줄을 서서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건 유명인의 사인도, 공연 티켓도 아니다. 이곳 디저트 가게의 일명 ‘뚱카롱’(두툼한 마카롱)이다.

맨 첫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이 골목에 도착하는 시간은 주로 오전 6시 안팎. 가게가 문을 여는 시각(오전 9시)까지 3시간은 기다리는 셈이다. 9시쯤 되면 대기자는 대개 30여명으로 불어난다. 이 디저트 가게에서는 영업 개시 전부터 줄 선 사람을 세어보고 ‘지금부터는 방문해도 구입이 어렵다’는 공지문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한다. 목요일인 이날은 9시24분에 공지문이 올라왔다.

“오늘 처음 오셨어요?” 50대 여성이 간이의자를 양보하며 물었다. 경기 광명시에 사는 그는 오전 6시쯤 집을 나섰다고 했다. 직장에 반차까지 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이 가게를 알려줬고, 지금은 뚱카롱이 이 가족의 간식이 됐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하나씩 꺼내 칼로 4등분 한 다음에 한 조각씩 먹으면 맛있어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한 종류당 3개밖에 못 사는 거 아시죠. 저 예전에 8시쯤 왔을 때, 대부분 팔려서 달랑 3개밖에 못 샀어요.”

오전 8시30분에는 또 다른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디저트 가게 옆 카페 사장이 통유리문을 열고 외쳤다. “이제 커피 주문됩니다.” 커피를 한잔 시켜봤다. “주문하신 카페라테 드릴게요.” 카페 사장이 줄을 선 자리까지 커피를 날라다 준다. 원래 11시에 출근하던 그는 옆집 뚱카롱 가게의 대기자들을 겨냥해 지난해부터 이 시간에 카페를 열고 있다.

오전 9시가 되자 드디어 뚱카롱 가게 문이 열렸다. 가게에 들어간 이들은 뚱카롱이 20여개씩 담겨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나왔다. 다른 골목에 ‘대기’ 중이던 승용차가 나타나 구입을 마친 이를 태워가기도 했다.

매장은 좁았다. 쇼케이스엔 ‘투게더바닐라’ ‘캐러멜치즈케이크’ ‘레드벨벳’ ‘뽀또’ ‘얼그레이밀크티’ ‘티라미수’ ‘팀탐초코’ ‘고구마케이크’ ‘초코라즈베리’라는 이름의 뚱카롱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었다. 버터크림의 두께가 3㎝는 돼 보였다.

10시10분. 1000개 남짓한 뚱카롱이 모두 팔렸다. 서너 명은 결국 사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토요일인 같은 달 20일에는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인스타그램에 공지문이 올라왔다. “7시55분 현재 줄이 긴 관계로 이 시간 이후로 방문하는 손님들께서는 구입이 어렵습니다.”

마카롱에는 없는 ‘그 무엇’ 채워주니 히트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토끼네부엌 제공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토끼네부엌 제공

이름난 식당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오랜 기다림을 감수하는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뚱카롱의 경우 ‘○○지역에서 유명하다’ 수준의 입소문만 퍼져도 판매 시작 수 시간 만에 ‘완판’ 행진이 이어진다. 대기표를 나눠주며 1명당 구매 개수 제한을 두는 곳도 있고, 전국구급 인기에 힘입어 택배로 대량 판매를 하는 곳도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도 서비스에 등록된 마카롱 판매 점포는 수도권에만 3100여 곳. 그중 대다수가 두툼한 ‘뚱카롱’을 판매 중이다. 이쯤 되면 뚱카롱 열풍은 ‘사회 현상’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의 고급 디저트 마카롱이 어떻게 한국에서 ‘뚱카롱’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을까.

■ 한국에서 태어난 뚱카롱

[커버스토리]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마카롱을 세계에 퍼뜨린 나라는 프랑스지만 ‘뚱카롱’은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혹시 외국에 이미 뚱카롱과 유사한 마카롱이 있는 건 아닐까. 지난달 30일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의 한국 캠퍼스인 르 꼬르동 블루-숙명아카데미의 30여년 경력 프랑스인 제과장 피에르 르장드르와 파브리스 카르들렉을 만났다. 르장드르는 ‘마카롱’ 하면 떠오르는 ‘마카롱 파리지앵’(머랭 사이에 크림버터나 가나슈 등을 끼워넣은 형태)을 개발한 ‘라 뒤레’에서 오래 일했고 카르들렉은 프랑스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의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프랑스는 물론 미국·일본·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서도 일했던 그들에게 뚱카롱을 보여주고 이런 형태의 마카롱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둘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 “아뇨.”

소확행과 가성비의 묘한 결합
소셜 미디어 통한 인증샷 문화
재미 요소 가미한 마케팅 전략

한국의 간식문화 ‘포만감’ 중요
구매자들, 정통 마카롱과 비교
“압도적 크기·입 안 가득찬 느낌
쫀득한 식감…너무 안 달아 좋다”

색감 구성 등 다양 ‘보는 재미’
햄버거·다코야키·인절미 맛…
기상천외한 ‘퓨전 변종’도 속속

카르들렉 제과장은 필리핀에 있는 라 로즈누아 베이커리에서 대·중·소 크기의 마카롱을 만든 적이 있다고 했다. 대형은 미국에, 중형은 유럽에, 소형은 아시아에 수출했다고 한다.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곳의 대형 마카롱도 크림의 양이 두껍지는 않았죠.” 두 프랑스인 제과사는 뚱카롱에 대해 각각 “레볼루션(혁명)”, “젊고(young) 키치하다”라고 표현했다. 카르들렉은 서구에 비해 ‘소식’하는 아시아인들이 뚱카롱을 좋아하는 게 의외라는 의미로 ‘레볼루션’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했다. 르장드르는 ‘젊고 키치하다’는 표현에 대해 “젊은이들의 옷차림이 기성세대와 다른 것처럼 뚱카롱도 기존의 것과 다르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확실한 것은 뚱카롱은 한국인이 처음 만든 것이며, 뚱카롱 열풍 또한 ‘한국적’이라는 사실이다. 뚱카롱의 조상 격인 마카롱의 인기는 어떠한가. 전 세계적인 마카롱 명가 ‘라 뒤레’는 2016년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매장을 열었다가 이듬해 말 철수했다.

■ 탕진잼과 가성비의 오묘한 조화

[커버스토리]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프랑스의 마카롱이 한국에서 뚱카롱이 되어 인기몰이 중인 이유는 무엇일까. 경향신문은 뚱카롱 가게를 찾은 소비자 105명과 유명 베이커리 베테랑 제과사, 식문화평론가 등에게 물었다. 대답을 종합하면 ‘뚱카롱 현상’엔 포만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사회의 후식·간식 문화, 대조적으로 보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문화와 가성비 요소의 결합,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인증샷 문화, 재미 요소를 가미한 마케팅 전략 등이 얽혀있다.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직장인 김모씨(29)는 뚱카롱을 2016년에 처음 접했다. 시작은 인스타그램이었다. “올라오는 사진을 보고 혹했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마카롱 전문점은 한 달에 두 번만 온라인으로 주문을 받았다. 10만원어치씩 주문해서 택배로 받은 다음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었다. 인스타그램에 뚱카롱 사진을 게시하면 지인들은 “또 사 먹었어?”라고 물었다. 그는 “연애 안 하고 마카롱 사 먹는다, 술값 아껴서 사 먹는 거다, 일해서 돈 버는데 이것도 못 사 먹어?”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는 “달콤함이 입을 통해 몸 안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 때 기분이 풀린다”고 했다. 한때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냉동고에서 하나씩 꺼내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뚱카롱 구매자 105명의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뚱카롱을 먹고 싶다고 느낄 때’를 물으니 ‘스트레스’를 꼽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이들에게 뚱카롱은 “소확행”, “작은 일탈” “내가 부릴 수 있는 작은 사치”다. 하지만 달고 예쁜 디저트는 뚱카롱 말고도 많다. 왜 하필 뚱카롱에 꽂혔을까. 구매자들에게 뚱카롱의 매력을 자유롭게 서술해 달라고 요청했다. “압도적인 크기” “입안 가득 꽉 찬 느낌” “말 그대로 뚱뚱함이 매력이다” “하나만 먹어도 든든하다” 등 양적인 면을 언급한 이들(58명)이 많은 것은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쫀득쫀득한 식감’에 대한 언급도 많았다(61명). ‘덜 달다’는 점을 꼽은 이들(35명)도 상당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뚱카롱 카페를 찾은 60대 여성 역시 뚱카롱의 ‘식감’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남프랑스를 갔다가 프랑스 마카롱을 먹어봤는데 완전히 설탕가루를 씹는 느낌이었다”면서 “한국의 뚱카롱은 쫀득쫀득해서 맛있다”고 했다. 다른 구매자들 중에서도 두께가 얇은 ‘정통 마카롱’에 대해 “설탕과자 같았다” ”푸석푸석했다” “너무 달기만 했다” “잘 바스러진다”와 같은 평가가 나왔다.

■ 푸짐해서, 쫀득해서, 덜 달아서…

SNS상에서 ‘뚱카롱은 한과다’라는 글로 화제를 모았던 ‘디저트 덕후’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덕씨는 “뚱카롱은 약과롱”이라고도 했다. 뚱카롱이 한국의 전통과자 약과처럼 쫀득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인이 쫀득쫀득한 식감을 좋아한다는 것은 한국의 식문화에 후식과 간식이 혼재돼 있다는 점과 연관이 있다. 디저트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유럽에선 정찬을 다 먹은 후에 “점을 찍듯, 단맛으로 마무리하기 위해”(고영 음식문헌연구자) 후식을 즐겼다. 후식은 배가 부를 정도로 먹거나 여러 번 씹어 먹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국인의 밥상에서 후식문화는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대신 식사시간 사이에, 출출할 때 먹는 ‘간식’이 더 발달했다. 즉 외국에서 건너온 후식용 디저트라 할지라도 간식처럼 허기를 어느 정도 채워줄 수 있어야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일반 마카롱은 먹고 나면 허무했는데 뚱카롱은 배가 부르다”라는 답변은 뚱카롱과 마카롱이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뚱카롱이 ‘덜 달아서 좋다’는 평가 역시 이 디저트가 후식보다는 간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 과자인데 덜 달아서 좋다’는 말은 얼핏 앞뒤가 안 맞아 보이지만 한국 간식문화를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씨는 “간식으로 먹는데 너무 달면 많이 먹을 수가 없지 않겠느냐”면서 “우리는 진한 단맛을 짧고 강렬하게 즐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르 꼬르동 블루-숙명아카데미의 카르들렉 제과장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제과) 레시피에서 당도를 15% 깎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같은 값이면 일반 마카롱보다 뚱카롱을 먹겠다”(20대 여성)면서 가성비를 장점으로 꼽은 이들은 뚱카롱에 대해 “넉넉한 인심” “한국인의 정”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뚱카롱 가게에선 특별한 종류를 제외하고는 대개 2000~2500원에 한개를 구입할 수 있다. 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베이커리 등에서는 뚱카롱의 3분의 1만한 크기의 ‘마카롱 파리지앵’을 2200~2300원에 판다. 즉 뚱카롱이 포만감과 가격 측면에서 더 만족스럽다는 얘기다.

1ℓ짜리 이른바 ‘짐승 용량’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등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아이스커피로도 포만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겨냥한 상품이다. 유럽과 일본에서 제과를 배운 한 유명 베이커리의 제과사는 “커피를 오래전부터 즐겼던 유럽에선 아이스커피를 하루 몇 잔씩 마시는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그들은 커피를 느끼기 위해서는 에스프레소와 같이 진한 것을 먹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디저트 문화의 차이가 큰 것은 사실이다”라고 했다.

■ 섞어라, 신기해진다

뚱카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각적인 면이다. 정통 마카롱이 빛나는 광택과 강렬하고 다양한 색감을 자랑한다면, 뚱카롱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두께, 코크와 필링의 다양한 색감, 오밀조밀한 구성이 시각적 자극을 준다. 설문에 응한 뚱카롱 구매자 105명 가운데 ‘시각적인 측면이 뚱카롱 구매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이들은 92명이었다. 그중 70명은 이른바 ‘인증샷’을 찍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엄지와 검지를 힘껏 벌려 뚱카롱 2~3개를 집어 보인 사진이 넘쳐난다. ‘덕후’들은 뚱카롱이 “푸짐한 비주얼”을 지녔으면서도 “예쁘다”고 말한다.

먹음직스럽다기보다는 ‘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도 뚱카롱의 특징이다. 이 ‘재미’는 “이것저것 섞기를 좋아하는 한국 문화”(유명 베이커리의 제과사)와 맞물려 있다. 코크 사이에 미니 팬케이크를 넣고 메이플 시럽 튜브를 꽂은 팬케이크 뚱카롱(이 뚱카롱은 모양도 팬케이크와 유사하다), 햄버거 모양에 햄버거 맛까지 느껴지는 뚱카롱, 곰돌이 등 캐릭터 모양의 코크로 만든 뚱카롱도 있다.

“마카롱에만 있는 ‘그 무엇’ 외면하면 거품”

[커버스토리]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뚱카롱의 종류엔 대중이 흔히 즐겨 먹던 과자를 활용한 것이 꽤 많다. ‘오레오’ ‘페레로로쉐’ ‘킷캣’ ‘팀탐’ ‘로투스’ ‘죠리퐁’ 같은 시판 초콜릿·과자를 그대로 끼워 넣거나 혹은 잘게 부숴 필링으로 활용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치즈 과자 ‘뽀또’ 맛을 낸 뚱카롱도 있고, ‘투게더’ ‘월드콘’ ‘돼지바’ ‘메로나’ 등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아이스크림 제품의 맛을 활용한 뚱카롱도 있다. 한국 고유의 인절미 고물을 활용한 콩고물 뚱카롱도 이 업계에선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딸기와 청포도 같은 과일을 통째로 넣은 마카롱이 있는가 하면 요리재료인 베이컨과 구운 마늘 칩을 갈아 넣어 갈릭베이컨 파스타의 맛을 연상케 하는 뚱카롱도 있다.

뚱카롱에 새로운 음식을 접목하려는 소상공인들의 시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토스트 마카롱, 다코야키 마카롱, 마늘바게트 마카롱…. 며칠 후엔 또 어떤 기상천외한 뚱카롱이 나올지 모른다.

누군가는 팬케이크, 햄버거, 과일을 먹고 싶으면 그냥 그것대로 먹으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러한 ‘퓨전 변종’은 ‘내가 ~한 것을 먹었다’는 얘깃거리의 소재가 될 뿐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흥미를 끌기 때문에 ‘인증샷’을 남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일종의 ‘놀이’다. 한 응답자는 솔직하게 이렇게 설명했다. “인스타그램에 염장 샷을 올리면 기분이 좋다.” 신기하고 재밌고 예쁜 것을 먹었다고 소소하게 자랑하기 좋다는 얘기다.

본래 마카롱 만든 이유는
아몬드 맛있게 먹으려고…
필링 없이 코크 맞붙이기도

‘저렴하지만 크고 예쁘다’
필링 변주로 탄생한 뚱카롱
독보적인 특성 찾기 어려워
가격도 점점 오르는 추세

버블티·벌집아이스크림…
거품처럼 사라진 이름들
뚱카롱, 앞으로가 궁금해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들 덕분에 한국에선 특정 디저트의 인기가 뜨거워졌다가 금세 식곤 했다. 버블티, 벌집아이스크림, 슈니발렌(망치로 부숴 먹는 독일 과자)이 대표적이다. 한때 슈니발렌 전용 ‘귀여운’ 망치를 온라인에서 따로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도 있었다. 일부 백화점에서 슈니발렌 매장을 처음 문 열 때만 해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렸다.

‘달달한 감자칩’을 표방한 허니버터칩 역시 마찬가지다. ‘맛’ 그 자체가 인기요인이었다면 해태제과가 2016년 제2공장을 설립해 원래의 월 생산량(1만5000박스)을 두 배로 늘렸을 때, 매출실적이 올라야 했겠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지금은 어느 대형마트를 가도 매대에 쌓여 있는 허니버터칩을 쉽게 볼 수 있다. 2016년 뉴욕의 쉑쉑(쉐이크쉑)버거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줄을 서서 이곳의 음식을 맛보고 SNS에 후기를 공유했지만 2년여가 흐른 지금은 인기가 한풀 꺾였다.

■ “아몬드 과자는 어디로…”

“맛이 있네요. 맛이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있다’(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지구의 60억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취향이 존재한다고 믿는 유명 베이커리의 제과사는 “맛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한 다음 뚱카롱을 먹었다. 그는 “시도 자체는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면서도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마카롱은 아몬드를 맛있게 먹기 위해 만들어진 과자인데….”

마카롱의 코크는 아몬드가루와 설탕, 계란 흰자로 만든다. 아몬드는 기름지면서 고소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동양인에게 친숙한 곡물의 고소함과는 또 다르다. 마카롱이 탄생한 유럽엔 다양한 종류의 마카롱이 있는데 코크 사이에 잼 바르듯 필링을 넣은 것도 있지만 아예 필링 없이 열기를 이용해 코크만 맞붙인 것도 있다. 한국에서 다양하게 변주 중인 필링은 애초 마카롱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이런 비유를 했다. “천자문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는데 자꾸 논어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음식문헌연구자인 고영 칼럼니스트 역시 “뚱카롱은 마카롱의 본질에 파고든 과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디저트용) 과자는 입안의 보석 같은 존재”다. 원재료의 풍미를 극대화하면서도 한입에 들어갈 작은 크기에 세공하듯 아름다움을 불어넣은 과자는 과거 귀족이 누렸을 사치를 대중에게 선사한다. 그는 “뚱카롱을 두고 ‘입안의 보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제일 싸게 제일 크게’라는 관성 외에 다른 어떤 상상력이나 감각의 혁신이 없다”고 말했다. 근대화를 거치면서 일본은 서구의 제과기술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했고 고유의 재료인 ‘단팥’을 넣어 단팥빵을 만들었다. 고영씨는 “한국의 제과 역사 속에서 한국인의 손으로 진화시킨 기술이나 재료에 관한 고민이 없는 뚱카롱을 바로 한과라고 부르는 것도 마땅치 않다”면서 “우발적인 괴식이 우발적으로 상품성을 획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 붐일까 아닐까

[커버스토리]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이쯤 되면 뚱카롱의 ‘원조집’이 궁금해진다. 뚱카롱이 대중에게 인지되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2~3년 전쯤으로 보인다.

경기 용인에서 뚱카롱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우리가 2016년 말~2017년 초에 최초로 ‘뚱카롱’이라는 단어를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고, 손짓샷(엄지와 검지로 뚱카롱 2~3개를 집어 두께를 강조한 사진)도 우리 가게가 원조”라고 말했다. 다만 이 시점에 두께로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 강동구에서 영업 중인 정모씨는 “2014년부터 플리마켓에서 간간이 마카롱을 팔았는데 필링을 조금 두껍게 했더니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고 2016년 12월에 두꺼운 마카롱을 파는 가게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뚱카롱 열풍은 지나가는 ‘붐’일까, 아니면 한국 디저트의 한 갈래로 뿌리내릴까. 사실 뚱카롱 가게 사장들도, 음식 칼럼니스트들도, 유명 베이커리의 제과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2017년부터 서울 송파구에서 뚱카롱 가게를 운영 중인 이모씨는 “사실 저조차 막차를 탔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2016년 말 개업한 박모씨 역시 “언제 관심이 사라질지 몰라 불안하다. 주변에서 ‘마카롱 가게 하겠다’고 하면 말린다”고 했다.

뚱카롱은 크기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자극, 마카롱과 유사한 가격에 느낄 수 있는 포만감, 다양한 퓨전으로 ‘흥’했지만 그러나 반대로 바로 그 점 때문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 다른 디저트류로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뚱카롱 매장은 지하철 역사 안에 들어설 정도로 눈에 띄게 늘고 있고, 3000~4000원대 제품이 등장하면서 ‘가성비’ 장점도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맛 디저트는 다 그렇게 사라졌다.” 뚱카롱을 사러 온 한 30대 직장인 여성이 한 말이다.

디저트를 먹을 때 비평가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제과사들은 맛의 ‘경험치’도 쌓이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뚱카롱’이든 다른 디저트든 ‘고수’(소비자)가 ‘고수’(공급자)를 알아보는 수준으로 즐기고 싶다면 한 쇼콜라티에의 말을 새겨볼 필요는 있다.

“시판 과자를 넣어 만든 뚱카롱을 보면서, ‘나라면 그런 과자들도 재료를 일일이 골라 직접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나 이 가게 다녀왔어’ ‘사진도 찍었어’ 이런 식으로 즐기기보다는 맛에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재료에서 나온 맛인지, 향은 조화로운지, 이 디저트의 유래는 뭔지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발을 담가보는 거죠. 우리는 디저트를 접할 때도 너무 바쁜 것 같아요.”

마카롱·뚱카롱 비교


코크(프랑스어·coque) : 껍질이란 뜻으로 위·아래의 감싸고 있는 머랭 과자. 아몬드가루, 설탕, 계란 흰자로 만든다.

필링(영어·filling) : 머랭 과자 사이의 속재료를 뜻한다. 보통 버터크림으로 만든다. 프랑스 등에서는 갸르니튀(프랑스어·garniture)라고 한다.


■마카롱

기원 : 16세기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 전해진 것이라는 설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음. 학자에 따라서는 827년 아랍인들이 시칠리아를 점령하면서 퍼뜨린 아몬드 과자로부터 기원을 찾기도 한다. 마카롱 하면 떠오르는 형태, 즉 코크와 코크 사이에 얇은 필링을 넣은 모양의 마카롱은 프랑스의 페이스트리 숍 ‘라 뒤레’에서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마카롱을 보통 ‘마카롱 파리지앵’이라고 한다.


크기 : 코크의 지름은 다양하나 보통 4㎝ 수준이다. 높이는 코크를 포함해 1.5㎝쯤 된다. ‘마카롱 파리지앵’의 필링 두께는 잼을 조금 두껍게 바른 수준이다.


■뚱카롱

기원 : 2016년 하반기에 문을 연 경기 용인시의 한 마카롱 가게에서는 자신들이 ‘뚱카롱’이라는 단어와 압도적인 두께를 자랑하는 ‘인증샷’(엄지와 검지를 벌려 2~3개를 집어 보인 사진)을 처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6년 말~2017년 초 창업한 여러 마카롱 가게들이 “필링을 차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뚱뚱한 모양의 마카롱은 당시 여러 소상공인들의 아이디어가 겹쳐져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크기 : 코크의 지름은 마카롱과 비슷하나 조금 더 큰 편. 보통 5~6㎝. 두꺼운 필링이 특징이기 때문에 코크를 포함한 높이가 대개 4~6㎝. 두꺼운 버터크림 필링의 느끼함을 완화하기 위해서 코크 역시 두껍게 만드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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