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집 안에 틀어박혀 좋아하는 것만 들여다보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지금은 어떤 분야에 몰두해 열정을 보이는 사람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덕후’의 상징, 아이돌 덕질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먼저 덕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용어를 이해해야 한다. 덕질 용어, 비공식 굿즈, 아이돌 생일파티 준비법을 통해 덕후들의 세계를 소개한다.
연습문제 - 용어편
입덕 : 덕후에 입문했다는 뜻으로 새로운 분야의 덕후가 됐다는 뜻이다.
탈덕 : 덕질을 그만둔다는 뜻. 입덕의 반대말.
성덕 : 성공한 덕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될 때나 덕질하는 대상을 만나거나 할 때 쓰는 말.
휴덕기 : 덕질을 쉰다는 뜻.
부정기 : 덕후가 되려는 조짐을 부정한다는 뜻.
덕통사고 : 교통사고가 나듯 갑자기 덕질에 빠지게 된 것을 뜻한다.
굿즈 : 상품.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아이돌 덕질의 세계에서는 아이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을 뜻한다.
공식 굿즈 : 소속사에서 만들어내는 굿즈.
비공식 굿즈(비공굿) : 팬들이 직접 만드는 굿즈.
홈마 : ‘홈마스터’의 줄임말. 연예인의 고퀄리티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
도아너 : 굿즈를 제작하는 필요한 도안 디자인을 제공하는 사람.
총대 : ‘총대를 멘다’를 연상하면 쉽다. 굿즈 제작을 추진하는 사람. 예를 들어 ‘워너원 인형이 나왔으면 좋겠어’라는 의견이 모이면 도안을 그릴 수 있는 도아너를 찾고 도안이 만들어지면 공장에 제작을 맡겨 인형 제작의 모든 절차를 조율하고 추진하는 사람.
덕메 : 덕질 메이트. 덕후 메이트. 덕질하는 친구. 일상 이야기보다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솔플 : 솔로플레이. 덕메가 없이 혼자 덕질하는 사람.
실친 : 실제 친구. 트위터 등 SNS에서 만나서 덕메가 된 경우와 구분해서 쓴다.
덕밍아웃하다/당하다 : 커밍아웃에 ‘덕’을 붙인 것으로 ‘내가 덕후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덕밍아웃을 당하는 것은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알려지게 됐다는 뜻.
일코 : 일반인 코스프레. 덕후인 것을 티내지 않기 위해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것. 예를 들어 카톡 프로필에 좋아하는 아이돌 하반신 사진만 올려놓는 등 덕질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덕후’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는 것.
덕업일치 : 덕질이 직업이 된 경우를 뜻한다.
올콘 : 올콘서트. 콘서트가 2박3일간 3회 열리면 그 모든 콘서트를 다 간다는 뜻.
스밍 : 스트리밍. 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법.
음원 총공팀 : 팬클럽 내에서 스트리밍 목록을 짜주는 팀. 연속으로 들어도 음원 사이트에서 1시간에 1번만 해당 곡을 들었다고 집계하기 때문에 시간대별로 주요 음원 사이트들의 순위를 올려주고 위험하면 ‘지금은 다운로드를 해야 한다’ 등 신호를 주는 팀. 총공팀에 들어가려면 ‘스밍 2만번’ 등의 조건이 있다.
댓관 : 댓글관리. 연예인 주요 기사가 뜨면 그 링크로 가서 댓글을 다는 행위. 포털사이트 네이버 ‘댓글 많은 뉴스’ 순위를 점유하기 위해 ‘훈훈해요’, ‘좋아요’ 등 눌러서 상위권에 보이도록 하고 댓글을 쓴다.
노동 : 스밍, 댓관, 투표 등 우리 아이돌 잘 되게 하는 모든 행위.
어덕행덕 : ‘어차피 하는 덕질 행복하게 덕질하자’라는 뜻.
심화문제 - 굿즈 생태계
1. 굿즈란?
요즘 아이돌 덕질을 이해하려면 ‘굿즈’를 이해해야 한다. ‘굿즈(goods)’는 팬덤계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아이돌 덕질의 세계에서는 아이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주제로 제작된 상품을 뜻한다. ‘굿즈’는 덕질을 표현할 수 있는 대표적 도구다. 경향신문의 ‘덕질 1인자’인 네오 기자(가명)에게 굿즈에 대해 물었다. 네오 기자는 뉴이스트 동호(백호) 팬이다. 동호가 ‘프로듀스101’에 출연했을 때 빠졌다.
네오 기자는 처음 굿즈를 샀던 이유를 “팬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소속사에 보여주고픈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동호는 프로듀스101 시절 소속사의 활동이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아티스트를 좋아해도 그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어요. 그 사람의 일러스트, 사진 등 그 사람의 흔적이 있는 물건을 갖고 싶었는데 소속사에서 나오던 때가 아니어서 팬들이 굿즈를 만들었죠. 그렇게 애정을 표현하고 싶었고 또 이렇게 (굿즈를) 많이 사는 팬들이 있다는 것을 소속사에 보여주고픈 마음이 컸어요. 소위 ‘화력’이라고 하죠.”
한국에서 아이돌 팬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20여년이 흘렀고 1990년대 HOT, 젝스키스 때와는 팬 문화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그때는 콘서트장에서 우비를 입고 ‘오빠 얼굴을 계속 보고싶어서’ 엽서를 샀지만 요즘 팬들은 콘서트장에서 응원봉(공식굿즈)을 들고 아이돌을 소유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비공굿(비공식굿즈)을 트위터를 통해 구매한다. 소속사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굿즈를 ‘공식 굿즈’라 한다면 팬들이 직접 사진을 찍고 도안을 그려 만들어 소규모로 공동구매하는 굿즈를 ‘비공식 굿즈’로 구분된다.
그간 다음 카페 중심이었던 팬덤도 갤러리, 트위터 등으로 옮겨갔다. 기술의 발전으로 화질 좋은 카메라로 ‘내 아이돌’을 직접 찍을 수 있게 됐고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에서 직접 공동구매자를 찾아 굿즈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굿즈를 만드는 덕질러들을 구분하는 용어도 생겨났다. 아이돌을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홈마(홈마스터·연예인의 고퀄리티의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라고 부르고 굿즈 제작 전반을 책임지는 사람은 ‘총대’라고 부른다. ‘아이돌 덕질’을 소재로 한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서 주인공 ‘덕미’는 홈마다. 애정이 가득한 각도로 아이돌의 사진을 촬영해 트위터 계정에 올리는 파워 트위터리안이다.
팬 문화가 달라진 것은 트위터와 같은 SNS, 즉 정보 유통 경로가 달라진 것이 크다. 어떤 면에서 팬은 훨씬 주체적인 존재로 변신했다. 아이돌을 TV로 보고 소비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굿즈를 만들고 아이돌을 향유하는 존재로.
2. 비공식굿즈를 만들고 무료로 나눈다?
한편 팬 입장에선 비공식 굿즈는 ‘다시 살 수 없는 물품’이다. 그래서 네오 기자는 굿즈를 구매할 때 2개씩 산다. 총대가 들어오는 수량대로 팔아버리기 때문에 통상 지나가면 다시 살 수 없는 물품이기 때문이다. 한편 팬들은 아이돌과 관련한 굿즈를 만들면서 크게 이윤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아이돌’을 매개로 돈을 버는 것을 경계하는 신기한 ‘시장’이다. “화폐가 오가긴 하는데 부가가치가 (별로) 안 남는 시장(네오 기자)이에요. 포스트잇 같은 경우는 몇 만개를 팔지 않는 이상 얼마나 남겠어요. 노력봉사 하는 정도예요. 또 팬덤 내부에는 이런 걸로 많이 남겨 사적으로 돈을 버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도 있어요.”
수익도 별로 안 남는데 굿즈 제작하는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만드는 걸까. 김지현씨(28·가명)는 뉴이스트 팬으로 슬로건, 마스킹테이프 등의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한다. 비공식굿즈의 제작 절차를 책임지는 ‘총대’다. 김씨가 처음 굿즈를 제작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갖고 싶은 물품을 찾기 어려워서였다. 마침 주변에 디자인하는 사람도 있어서 제작 단가를 어림짐작하기도 쉬웠다. 2017년 전자파 차단 스티커부터 제작했다. 트위터상에서 만난 디자인하는 친구가 디자인을 하고 김씨는 발주를 맡았다. 그동안 제작한 굿즈는 포토카드 세트, 마스킹 테이프, 응원타올, 홀로그램 스티커 등 다양하다. 뭘 위해서 굿즈를 제작하는 걸까.
“제일 큰 건 ‘제가 갖고 싶어서’이고요. 제가 만든 걸 콘서트장에서 들고 있는 걸 보면 보람도 있고요. 개인적 만족감이 제일 큰 듯해요. 물론 ‘업’으로 삼는 분들도 있어요. 굿즈 판매해서 생활비를 버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데 저는 따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이윤 추구는 하지 않고요. 딱 개인 만족의 선에서만 해요.” 김씨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이러한 비공식 굿즈를 만드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쉽게 예상은 어렵다. “사진 찍고 슬로건 만드는 사람들은 멤버별로 수십명씩 될 테니까 홈마만 몇 백명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분들은 50명 내외라고 봅니다.”
팬들은 직접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광고할 수 있는 컵홀더를 제작해 카페에 제공하기도 한다. 그럼 카페에서 음료를 만들 때마다 이 컵홀더를 끼워 손님에게 판매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돌을 광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면 어떤 카페 사장님들이 ‘아이돌 컵홀더’를 나눠주고 있을까. 박민영씨(30·가명)는 부산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다. “지금도 뉴이스트 컵홀더 5종류가 있어요. 10번 정도 컵홀더 ‘주최’를 해봤는데요. 보통 전화나 트위터상으로 연락이 옵니다. 수량은 보통 1000개 정도 들어와요. 저희 카페가 뉴이스트 카페로 소문이 나서 최근에는 더 연락이 많이 왔어요.” 박씨는 이 컵홀더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모은 컵홀더를 탑으로 쌓아 전시했다. 대략 90여개의 컵홀더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 앞에서 팬들은 인증샷을 찍는다.
종합문제 - 아이돌 생일파티 준비법
자발적으로 아이돌을 광고해주는 도구는 ‘컵홀더’뿐만이 아니다. 지하철역을 지나다가 혹은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다가 아이돌 광고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이 광고는 누가 했을까. 예상하는 대로 ‘팬들’이다. 최유미씨(28·가명)는 한 아이돌 멤버의 생일파티 ‘스탭’이 되어 생일파티 준비를 해본 적이 있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서 모금하는 규모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큰 돈이기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도 있다. 팬덤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팬덤 안에서 서로 견제하는 구조를 만들고 일을 진행한다. 팬덤 갤러리 등에서 먼저 ‘불판’이 열린다. 이야기가 열리는 플랫폼(갤러리나 카페)을 ‘불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먼저 팬 인증을 통해 스탭에 지원하면 투표가 진행된다. 인증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들 중 투표를 해서 스탭을 뽑는다. 아무나 스탭이 될 수 없다. ‘아이돌 노래 스밍 1만5000번 이상’ 등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선발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구인 조건을 정하기 위해서 불판이 가동된다. 다같이 이야기를 나눠 ‘스밍 횟수가 이 정도는 되어야, 문자투표 몇 번 이상은 해야 스탭이 될 수 있다’고 조건을 정한다. 그러면 스밍 인증을 ‘짤(캡처 사진)’을 통해 하고 스탭을 뽑는다.
보통 5명에서 10명 정도의 스탭이 꾸려지면 모금을 시작한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모금이다. 모금 금액별로 특전이 나간다. 5000원을 냈다 하면 포토카드 1장, 1만원을 냈다면 포카에 스티커 등. 모금이 잘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구조다. 모금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모금 액수를 보고 생일파티의 규모를 정한다. 지하철 광고에 얼마를 쓰고 생일선물을 어느 정도 가격대를 사느냐 등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예산 책정이 끝나면 집행한다. 어느 하나 스탭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모금에 참여했던 팬들이 ‘불판’에 참여해 얘기를 나눈다. ‘메인 선물’로는 뭐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결정도 한두명이 할 수 없다.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최종적으로 선물을 결정한다.
최씨는 생일파트 준비가 ‘불판의 민주주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어떤 일을 진행할 때 누가 독단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니예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영해서 찬반 투표를 하면서 정해가는 거죠. 같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이 신기한 덕질의 ‘효용’은 뭘까. 덕질은 네오 기자에게 ‘쉼터’다. “술과 담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게 발전적인가요? 아이돌 덕질은 아티스트, 그룹을 키워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성장하고 이들도 성장한다는 것을 지켜보는 느낌이 있거든요. 제게는 안식처, 위안, 피난처, 쉼터 그런 느낌이에요.”
“네오 기자의 뉴이스트 콘서트 브이로그 | 이슈파이 ‘덕질학개론-실전편②’” 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