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부터인가, ‘중국집 철가방’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배달음식의 대명사나 다름없던 짜장면·짬뽕·탕수육을 양철 가방에 싣고 허름한 오토바이를 몰던 중국집 배달원들은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대신 깔끔한 헬멧과 유니폼을 갖춰입고, 복장과 ‘깔맞춤’한 오토바이와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으로 무장한 라이더들이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배달 가능한 음식도 다양해졌다. 짜장면, 치킨 같은 전통적인(?) 배달음식 외에도 파스타, 스테이크처럼 번듯한 레스토랑에서나 접할 수 있던 요리를 간편하게 거실에서 즐길 수 있게 됐다.
5일 <이런경향-와플>이 선보이는 영상은 21세기 한국인들의 허기진 속을 달래주는 ‘배달대행 라이더’들의 이야기다. 국내 배달대행업체 중 손가락 안에 드는 업체의 라이더, 현성수씨와 김명성씨가 출연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 이들은 배달대행업체 ‘소속’은 아니다. 업체와는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대행업체가 제공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콜(주문)을 받아 음식을 배달한 뒤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형식적으로는 라이더 한명 한명이 모두 ‘사장님’인 셈이다. 하지만 이 사장님들이 플랫폼 외부에서 독자적인 수익을 내기 어렵고, 사실상 플랫폼에 매여 있는 상황이다 보니 ‘플랫폼 노동자’라는 개념이 새로이 생겨났다. 라이더들의 노동으로 이익을 얻는 플랫폼이 사실상 사용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라이더는 법적으로 근로자가 아니므로 근로기준법의 보호는 받지 못한다. 현씨와 김씨가 하루 벌어가는 일당은 대략 20만원대 후반. 숙련직 기능공의 소득과 비슷한 정도다. 다만 이는 노동시간이 일반 근로자들보다 곱절 가까이 길기 때문에 가능한 소득이다. “주말에는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까지 근무한다”“일주일에 하루 쉬고 나머지는 모두 낮 12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한다” 법정 최대근로시간(주 52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노동량이다. 그나마도 이들이 경력이 오랜 ‘베테랑’이라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이지, 평균적인 라이더들의 소득은 하루 10만원대를 맴돈다.
배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라이더 공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콜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한 이유다. 김씨는 “주문이 1초의 찰나에 따라서 잡고 안 잡고가 결정된다”고 했다. 라이더들끼리 콜을 놓고 선착순 다툼을 벌이는 사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배달대행업체들의 단가 싸움이다. “단가를 낮춰야 음식점을 확보할 수 있잖아요. 동네 PC방이 많이 생기면 게임비 가격 내려가는 거랑 똑같은 거에요. 대행업체들끼리 싸우는 게 더 치열한 거 같아요. 그러면서 배달원들은 더 죽어나는 거죠.” 배달 수수료는 건당 3500원 안팎이지만 최근에는 2700원까지 대폭 낮춰 출혈을 감수하는 업체도 생겨났다고 한다.
길 위에서 일하다 보니 사고의 위험은 늘상 있다. 게다가 주문을 잡으려는 경쟁도 심해지다 보니 여러 건의 주문을 한 번에 배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 라이더의 마음은 급해질 수 밖에 없고, 사고의 확률은 덩달아 올라간다. “동선이 전혀 안 맞는데도 (업체에서) 주문 여러 건을 같이 가라고 하니까요. 기사 입장에서는 ‘사고 나란 소리야 뭐야’ 이러는 거죠.”
이외에도 ‘못 배운 사람들이나 저런 일을 한다’는 선입견과 업체들의 출혈 경쟁으로 인한 근로조건 저하 등은 소비자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라이더를 ‘천직’으로 여기는 듯 했다. “배달도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존재 아닌가요. 저희는 정말 책임감 있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거든요.”라고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경향신문 유튜브 채널 <이런 경향>(https://bit.ly/2wIHzGJ)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