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출한 저녁, 치킨을 들고 온 배달대행업체 라이더는 “맛있게 드세요”란 말을 남기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많이 바쁜가 봅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나니 드는 생각. 이 라이더는 누굴 위해 일을 하는 걸까요? 라이더가 일한 몫은 어느 곳으로 흘러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돼 라이더에게 돌아오는 걸까요? 그리고 이 방식은 누가 결정할까요. 다시 말해, 라이더의 ‘사장님’은 누구일까요?
우스운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장님의 사장님이 누구냐”는 질문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배달의민족·부릉·바로고 같은 배달대행업체(플랫폼)와 라이더는 근로계약이 아닌 사업자 계약으로 맺어져 있습니다. 라이더 한명 한명이 형식적으로는 개인사업자라는 얘깁니다.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분명 배달대행업체의 유니폼을 갖춰입고, 초인종을 누를 때도 소속 대행업체의 이름을 댔는데 ‘자영업자 사장님’이라니요.
12일 <이런 경향>은 알면 알수록 복잡한 ‘플랫폼 노동’에 대해 알아보는 컨텐츠를 선보입니다. 플랫폼과 노동자, 소비자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귀여운 레고 캐릭터를 이용해 알기 쉽게 풀어냈습니다. 플랫폼 노동은 O2O(Online to Offline)플랫폼에서 일감과 소득을 얻는 노동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라이더뿐만 아니라 대리운전·가사노동 등 중개 어플리케이션(앱)을 기반으로 일하는 노동자를 통칭합니다. 미국에서 이미 택시 대신 자리잡은 우버·리프트 같은 승차공유 서비스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법에는 아직 플랫폼 노동이라는 개념이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플랫폼 노동자는 최저임금·야근수당·산재보험 등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에서 제외됩니다. “개인사업자니까 어쩔 수 없잖아”라고 넘기기엔 뭔가 애매합니다. 배달 라이더가 정말로 ‘라이더 사장님’이라면 타인의 지시와 통제 없이 독자적으로 일하고, 몸이 좋지 않은 날 쉬는 등 재량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만나본 라이더들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어 무조건 정시에 일을 시작해야 하고 업체와 약속한 근무일은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1회 운행에는 단건 배달이 원칙이지만 대행업체의 요구에 따라 2건 이상의 주문을 동선이 꼬일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한번에 배달하는 일도 잦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배달대행업체의 직원”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라이더가 배달대행업체 직원이라면 요즘 핫한(?) 주 52시간의 적용도 받고 사고가 나면 산재보험도 받아야 하는데 이 라이더들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이상 일했습니다. 산재보험도 들어 있지 않았고요. 과로로 쓰러지거나 오토바이가 미끄러졌을 때 책임져줄 사람(고용주)도 제도(근로기준법)도 없는 겁니다.
결국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장님과 노동자 사이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형국입니다. 참 애매하죠. 과거에는 간단했습니다. 동네 중국집에 주문을 넣으면 해당 가게에 고용된 배달원이 그 가게 소유 오토바이를 몰고 배달을 왔습니다. 중국집 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필요한 인력은 직접고용하는 것이 당연시됐습니다. 하지만 점차 기업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경비·청소 등 비숙련 인력부터 차례로 외주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의 노동도 이런 외주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사람을 불러서 쓰기 때문입니다.
외주화든 플랫폼 노동이든 ‘사장님 찾기’는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생긴 이윤을 챙기는 사람이 책임도 감수하라는 것이 모든 노동 관련 법·제도의 1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사장님 찾기가 실패하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용은 결국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합니다. 플랫폼 노동자가 만들어낸 부가가치가 어디로 귀속되는지 살피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라이더 사장님’들을 ‘대행업체 직원’처럼 일사불란하게 지휘·감독함으로써 배달대행 플랫폼은 신뢰도도, 규모도 커지고 광고료와 중개수수료 수익도 늘어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플랫폼이 단순히 “우리는 중개만 할 뿐”이라고 발을 뺄 수 있을까요.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플랫폼 노동자 보호에 나서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플랫폼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꾸려 파업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유럽연합에서는 플랫폼 기업에게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업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웠습니다. 한국도 뒤늦게 고민중입니다. 개인사업자인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재보험을 확대하고, 새로운 보험체계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노동, 숙제도 빠르게 늘고 있는데요. 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야, 너무 좁은 건 아닌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