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공주는 싫다”면서 “인종차별은 아니다”라는 궤변

2019.07.13 06:00 입력 2019.07.13 06:01 수정
위근우 칼럼니스트

<인어공주> 캐스팅에 반대하는 세 가지 ‘헛소리’는 어떻게 서로 반목하는가

[위근우의 리플레이]“흑인공주는 싫다”면서 “인종차별은 아니다”라는 궤변

실사화 예정인 디즈니의 <인어공주>에선 주인공이 인간이 되기 위해 목소리를 잃는다는 원작의 설정을 넣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주인공 캐스팅에 대해 세상이 떠나갈 듯 울부짖는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을 가득 채워 인어공주가 어떤 말을 해도 어차피 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실사로 제작되는 <인어공주>의 주인공 애리얼 역에는 흑인 배우인 할리 베일리가 섭외됐고, 이에 대해 원작 애니메이션 팬덤 혹은 원작 팬덤을 가장한 차별주의자들은, 아니 원작 팬덤의 차별주의자들과 팬덤을 가장한 차별주의자들은 할리 베일리의 애리얼이 애니메이션 속 붉은 머리카락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만을 토해내는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NotMyAriel(나의 애리얼은 이렇지 않아)이라는 해시태그 운동까지 벌어졌다. 이에 대한 디즈니의 대답은 명료하다. 그들은 지난 9일, 산하 채널 프리폼의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애리얼이라는 캐릭터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할리 베일리가 원작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재능 있고 아주 멋진 그에 대해 ‘인어공주라고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아니다’라는 발상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차별주의자’라는 말을 안 쓰는 선에서 가능한 가장 단호하고 적절한 대응이다. 그럼에도 해당 소식에 대한 한국의 포털 댓글 반응은 한심한 수준이다. 한심한데, 앞서 말했듯 목소리도 크다.

디즈니의 대응에 대해 나름 반박하는 포털 반응은 크게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원작 근본주의자 타입. 댓글을 직접 인용하자면 “누가 봐도 저 인어(할리 베일리)는 애리얼이 아니잖아요. 이미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편견이라고 하다니” “안 닮아서 싫은 거다” “단순 흑인이라서가 아니라 실사화하는 원작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는 게 문제인 건데, 캐스팅 비판하는 사람들을 죄다 인종차별자로 만들어버리네” 등의 의견이다. 명백히 시각적으로 구체화된 원작 이미지가 있는데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비판일 뿐이라는 것이다.

원작 근본주의자들은 “백인 중심 서사·주인공은 익숙하고 당연해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데
이것은 역차별주의자들이 말하는 “세상이 ‘블랙 워싱’으로 돌아가서 백인들이 배제, 역차별 받는다”는 주장에 모순되고
여기에 인종이나 원작의 일치 여부와는 상관없이 “예뻐야 한다”는 외모지상주의자들이 끼어들면
역차별론자들은 ‘외모 차별’에, 근본주의자들은 원작에 대한 자신의 ‘순수성 훼손’에 당면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과 모순되는 논거를 대는 데도 다투기는커녕 신성동맹을 맺고 있다, 서로의 뺨을 때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다음은 역차별론자 타입. “왕자는 그러면서 백인 뽑으면 그것도 웃기게 되는 거고 흑인 뽑으면 덴마크 왕자가 흑인인 것도 말이 안되는 거지, 진저(붉은 머리칼)를 은근 흑인으로 바꿔치기하는 너희가 더 인종차별주의자들이다” “화이트 워싱(비백인 캐릭터를 백인으로 바꾸는 행위) 욕먹는 것처럼 블랙 워싱이라 욕먹는 거야” “흑인들 땡강 답도 없다. 아카데미상도 작품성과 관계없이 거지같은 흑인 영화 만들어놓고 무조건 상 달라고 시위하고 안 그러면 인종차별이라고 직업도 없이 몰려다니며 시위가 일상” 등의 발언으로 요약된다. 마지막으로 외모지상주의자 혹은 ‘역시 하나만 하는 놈들은 없다’ 타입. 이들은 할리 베일리의 인종이 아닌 외모를 문제 삼는다. 가령 “흑인이어도 뭐 요즘 시대가 시대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쟤는 인종 다 떠나서 그냥 못생김. 동심 파괴 수준인데 잘도 흥행하겠다” “흑인 여부를 떠나서 저게 어떻게 인어공주냐? 넙치나 가자미지” “디즈니는 뭔가 문맥을 잘못 짚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흑인 인어공주라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가 솔직히 말해서 예쁘지 않아서 싫어하는 것임” “왕자가 저 얼굴 보고 퍽이나 반하겠다” 등의 발언으로 본인들이 외모지상주의자이자 외모차별주의자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중이다.

이들 중 들어줄 만한 것은 어느 것도 없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상체는 인간 여성의 몸, 하체는 어류의 몸을 하고 목에 아가미도 없이 바다에서 사는 공주와 그 일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다가 그 상체가 흑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하늘과 땅이 뒤집힌 듯 놀라는 중이다.

또한 이런 이종의 존재가 인간의, 좀 더 정확히는 집에서 다리를 긁으며 포털 댓글을 달고 있는 한국인 남성의 미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중이기도 하다. 어떤 위대한 서사적 상상도 불변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는 순간 더없이 안전하고 안일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원작과 디즈니의 상상력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그들을 비판하는 데 힘을 쏟기보단 앞서 세 부류의 목소리를 한데 모으면 그들의 맹점과 허구성은 더 잘 드러난다.

가령 근본주의자는 애리얼이 원작 애니메이션의 그것과 거의 같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즉 이들은 그 수많은 디즈니의 백인 왕자와 공주를 포함해 어차피 기존 서사와 이미지가 백인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니 굳이 손대지 말고 고착화하자고 말하는 중이다. 이들에게 있어 백인 주인공은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역차별론자가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과 모순된다. 역차별론자들은 이미 이 세상이 흑인 중심으로 돌아가고 백인들이 배제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즉 그들은 흑인을 배제하자는 입장은 공유하되, 그 논거의 바탕이 되는 세계의 모습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취하는 중이다.

여기에 외모지상주의자가 끼어들면 구도는 더 우스워진다. 그들은 인종이나 원작과의 일치 여부는 상관없고 여주인공이 예쁘면 된다고 말한다. 역차별도 차별이니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역차별론자라면 이러한 외모 차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반대해야 할까, 아니면 작금의 할리우드에선 예쁜 여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주장해야 할까. 또한 근본주의자라면 원작에 대한 자신의 순수성을 단순히 여성 미모에 대한 욕망으로 환원한 외모지상주의자에게 모욕을 느끼고 크게 분노해야 마땅하다.

[위근우의 리플레이]“흑인공주는 싫다”면서 “인종차별은 아니다”라는 궤변

물론 예상대로, 논거와 세계 해석이 모순적인 수준으로 뒤죽박죽 섞인 이들 주장은 서로 다투기는커녕 신성동맹을 맺고 디즈니와 할리 베일리를 비난하는 데 목소리를 모으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왜’ 디즈니의 캐스팅에 반대하느냐는 분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에겐 논리의 정합성보다 흑인 캐스팅에 대한 반대가 중요하다는 게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은 그냥 흑인이 인어공주가 되는 게 싫은 거다.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감정이 먼저고 이유는 그다음이다. 그러니 자기들끼리 모순되는 논거를 대도 위화감이 없다. 그럼 이들이 스스로를 무엇이라 생각하고 어떤 당위를 주장하든, 이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대체 어디 있을까. 좀 더 나아가 이들 차별주의자의 목소리로부터 일말의 근거나 당위를 읽거나 읽으려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인간을 생득적인 이유로 차별하고 배제해선 안된다는 수준의 규범조차 지키지 않으려고 자신들이 서로의 뺨을 때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궤변을 늘어놓는 이들의 말을 경청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헛소리를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그 헛소리가 옳을 가능성까지 인정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 침묵이 필요한 건 애리얼이 아닌 그들이다. 서사적 우연이지만, 애리얼은 목소리를 잃고 사람이 됐다. 이들 차별주의자도 우선 입부터 다물고 사람이 되길 바란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