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 외나무다리
서울고등법원 583호 법정. 공판이 막 개시된 참이다. 원고는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작은 체구의 승려이며 피고1번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피고1번은 형상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피고석에는 곤색 정장을 갖춰입은 정부법무공단의 변호사들이 대리인 자격으로 앉아있다. 법원의 사려 깊은 배려에 따라 공판 법정 앞 재판일정표에 적힌 피고의 이름은 머릿글자만 남긴 채 숨겨졌다. 피고: 대○○○.
본래 이 소송은 영주댐 건설의 중지를 구하는 것이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댐이 완공되었기에 원고의 주장은 더욱 완강해졌다. 그는 이제 댐의 철거를 주장했다. 법정의 더딘 시간과 달리 바깥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피고석에 불려왔던 정권의 주체가 바뀌었다. 일련의 사건들로 사법부의 평판이 추락했고, 희박한 확률을 뚫어내고 국가소송 사건의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졌다. 재판장은 권위를 숨기고 친근한 말투를 썼다. 아이를 어르는 태도였다. 5년간 각급 법원을 거쳐 확정판결까지 나온 사건이 고등법원으로 다시 돌아온 과정 자체가 정치적임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첩을 무릎 위에 올려두고 깨알같이 글자를 적어내려갈 채비를 마친 기자들의 모습이 판사의 눈에도 띄었을 터다.
재판장은 먼저 법형식적인 결함을 지적했다. 댐 건설 중지 청구로 시작된 소송에서 원고가 완성된 댐의 철거를 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구취지가 바뀌었으므로 적법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서, 판사는 민사소송법은 기술적인 법이라서 융통성이 없다고 덧붙였다.
스님은 그 말에 담긴 불길한 신호를 받아들이느라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재판장은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발짝 더 친근한 비유로 다가섰다. “그러니까 원고는 이전 재판 내용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 아닙니까?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요.” 원고의 침묵이 더 길어졌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충분한 용기를 얻지 못한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새어나왔다. “홍상수 감독 영화 제목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인데….” 판사가 오인한 사실관계를 법형식의 엄격함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 같았다. 기술적이고 융통성이 없는 반격이었다.
봉화서 발원해 100㎞를 흘러 낙동강에 합류하는 1급 수질의 내성천
4대강의 ‘복마전’에 바쳐질 즈음 나타나 댐의 습격에 맞선 지율 스님
9년간 ‘엎질러진 물’ 주워담는 투쟁의 기록으로 강의 파괴 과정 증명
내성천은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발원하여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내려와 낙동강에 합류한다. 100㎞가 넘는 긴 행군을 마칠 때까지 산뿌리를 야금야금 갉아 발밑의 모래로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물과 함께 모래가 흐르는 강인 셈이다. 모래의 정화작용 덕분에 낙동강의 지천 가운데 유일한 1급 수질을 유지해온 내성천은 투명하게 맑다.
2009년 국토교통부는 이 강의 허리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고시했다. 댐의 명목상 주요 기능은 환경용수를 공급하여 수질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이 댐은 정부에 4대강 정비 사업의 명분을 안겼고, 건설사에 수천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려주었고, 주민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의 기대감에 한껏 부풀게 만들었다.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잔칫상에 잿물을 끼얹는 환경주의자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는. “이 맑은 강에 수질정화 용도의 댐이 왜 필요한가?” 그 질문은 영주댐 건설 계획 전체를 개발 담합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모래가 댐에 막히면 거꾸로 수질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졌다. 이율배반의 논쟁이 뒤따랐다. 댐은 모래의 퇴적을 막고, 모래는 댐의 건설을 막는다. 강을 구하는 것은 모래인가, 댐인가.
지율 스님은 이즈음 홀연히 내성천에 나타났다. 스스로를 인질로 묶어두기 위해 수몰예정지구에 4년 동안 천막을 쳤다. 그 뒤로는 영주댐 건설 중지 청구소송의 원고로 법정에서 5년의 시간을 보냈다. 부처의 자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차가운 법정에서, 개념의 추상성에서는 불경의 수준을 한참 앞지른 숫자와 법을 든 승려 한 사람이 댐의 습격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내가 내성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저 강모래가 지닌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내성천의 어깨에 걸린 하얀 모래톱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온다. ‘물 위의 섬’이란 뜻으로 마을에는 무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7세기부터 형성됐다는 무섬마을에는 불과 40여가구가 살고 있지만, 사대부 전통가옥이 30여채 남아있고, 그 가운데 100살이 넘는 고택은 16채이며, 특별히 9채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로 따지면 단연 최고 연장자는 강을 낀 모래톱 양안을 이어왔던 외나무다리일 테지만, 정작 이 다리는 문화재가 될 수 없었다. 존속된 건축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큰비가 내리면 불어난 물에 쓸려내려가고, 한동안 소실되어 있던 다리를 위치만 조금 바꾸어 복원하는 과정이 무수하게 반복되었다. 이 외나무다리에 수백년의 연속성을 부여하려면 목적론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지구가 태양 반대편으로 돌아도 땅은 변함없는 좌표 위에 놓여있고, 인체를 구성하는 원자의 98%가 해마다 새것으로 교체되어도 작년과 올해의 나는 똑같은 존재라고 믿듯이.
버팀목에 더 가까워 보이는 교각은 강바닥의 모래에 파묻힌 나무기둥에 지나지 않는다. 그 위로 통나무를 켜낸 널빤지를 얹었는데 폭은 한 뼘이 조금 넘는 정도다. 일직선으로 뻗었더라도 효율과는 거리가 멀었을 테지만, 이 외나무다리는 내성천의 형상을 흉내내듯이 굽이치며 수면 위를 휘돈다. 현대식 교량과는 기능뿐만 아니라 목적까지 반대인 다리다.
콘크리트 다리는 안정성이 우선이다. 강 위를 이동하는 감각과 땅 위를 이동하는 감각의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강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섬의 불편을 지우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무섬마을에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가 들어선 뒤로 한동안 잊혔던 이 외나무다리를 뒤늦게 복원한 이유는 거꾸로 보행자를 위태롭게 만들기 위해서다.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시선을 떨어뜨려 강을 보면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헛디딘 발이 차가운 강바닥의 모래에 잠기고, 태양이 달군 모래톱 위에서 젖은 신발을 말리는 것까지가 이 다리를 건너는 과정의 일부다. 사실 처음부터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을 첨벙거리며 강을 건너는 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다. 하지만 여행객들은 언제나 콘크리트 다리를 놔두고 이 외나무다리를 천천히 건넌다. 그 경험을 해보려고 외진 마을로 찾아오기도 한다. 강을 지우려고 고안된 온갖 기술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그대로인 강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편리한 느낌은 아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보행자는 감각을 물과 모래에 집중할 것을 강요받는다. 내성천 어디에서나 모래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섬마을을 특별히 기억하는 건 이 외나무다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맛을 잊지 못해 계절을 바꿔가며 내성천을 찾았다. 늦봄의 저녁을 밝히는 초롱불을 들고 한 줄로 서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아이들, 입자가 너무 고와서 여름 햇살을 받으면 설원처럼 하얗게 보이던 모래톱, 차분하게 가라앉은 가을의 물색, 주민들이 떠나간 수몰예정지구의 마을에서 맞는 마지막 겨울. 물보다 먼저 밀려온 폭설 아래 폐가들이 불평 없이 잠겨 있었다.
작가마다 이곳에서 젖어든 감상은 다르다. 조지훈은 사랑하는 사람이 밟고 간 자취가 바람에 밀려간다고 느꼈고(<별리>), 최대봉은 떠난 시간들이 모래가 되어 쌓였음을 깨달았으며(<무섬에 와서보니>) 정한숙은 모래가 밀리고 물이 얕아지는 강에서 한 시대의 종말을 읽어냈다(<고가>). 한때 4대강 어디서나 볼 수 있던 모래톱의 낭만적인 풍광에 도취되지 않고 경각심을 드러낸 작가들도 있다. 손홍규는 강의 바닥을 들어낼 작정으로 덤볐지만, 끝없이 모래를 쏟아내는 강에 압도당하는 모래채취업자를 떠올렸다(<화요일의 강>). 김정한은 내성천의 전철을 밟았던 낙동강 하구 모래섬의 운명에 주목했다. 개발 이득을 취하려는 유력자들은 주민이 이미 살고 있던 멀쩡한 하천부지를 매립해 버렸다(<모래톱 이야기>).
개발의 가치가 개발 그 자체로 발생할 때가 있다. 일단 시작된 개발은 관성적인 가치를 얻는다. 댐 건설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이 댐 건설에 얼마나 큰돈이 모였냐는 사실에 압도당하는 것처럼. 시험 가동한 댐이 강 위로 녹조를 쏟아부어도, 그래서 물을 담지도 못한 채로 허물어진 성벽처럼 몇년째 우두커니 방치되어 있어도 수천억원을 들여 세운 건축물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제관념을 향해 수천억원의 가치를 끈질기게 호소한다. 댐을 다시 허물자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려면 수천억원의 지폐 더미를 불사르는 듯한 환각통을 견뎌내야만 한다. 실패한 요리도 끝까지 먹어치우곤 하는데, 댐을 함부로 버려도 될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우리가 사물의 가치를 인식하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이 모양이다. 그래서 누구도 개발하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그자리에서 할 일을 해왔던 모래를 무가치한 먼지처럼 긁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발명하지 않았다는 점은 모래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불운이다.
이것은 개발의 역사를 설명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법은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뒤 공사를 승인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 법원은 환경영향평가가 다소 부실하더라도 공사 승인이 위법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하고 있다. 이미 한참 삽을 뜬 사업이 문서 한 부 때문에 쉽게 백지화되어서는 곤란하므로. 이 법리는 영주댐 공사중지 청구를 기각한 판결문뿐만 아니라 4대강 개발 사업 관련 사건(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하천공사 시행취소 청구)의 패소 판결문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 전에는 새만금 간척사업, 을숙도 명지대교, 천성산 터널의 공사착공금지 청구 사건에도 쓰였다. 발원지를 찾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이 법리의 기원을 좇아가면 한 사건에 도달하게 된다. 환경영향평가법이 제정되고 얼마 지나 제기된 경부고속철도 차량기지 정비창 건설 승인 취소 청구 사건에서 법원은 처음으로 이와 같은 입장을 정했다. 그리하여 개발을 뒤엎는 것은 판결을 뒤엎는 난도로 올라섰다. 법원의 입장은 환경과 충돌하는 개발을 밀어붙이려는 사업 주체에 중요한 지침을 제공했다. 법은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엎지른 물을 주워 담으려는 법 바깥의 시도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주댐이 한참 시공 중일 때, 지율 스님은 나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정치구호로 개발 반대를 한번 외쳐 보고 포기해서는 안돼요.” 댐이 완공되어도 실패하는 것은 아니며, 남겨진 기록은 증명의 과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말로 한번 목소리를 내어보고 포기하지 않았다. 수몰지구의 천막에서 4년을, 법정에서 5년을 보냈고, 두 편의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고 무수한 문서를 작성했다. 그 시간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뜬금없이 발표된 댐 건설 계획, 문제가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환경영향평가,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더라도 이미 시작한 공사는 중지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문, 생기를 잃은 모래톱에 돋아난 잡초들, 1급수가 멀쩡하게 흐르던 강 위로 수질정화용 댐이 쏟아붓는 녹조, 그 모든 것들이 남겨진 기록 속에서 저마다 역할을 수행하며 연결된 의미를 세상에 드러냈다.
소실·복원 반복 속 날것의 강을 느낄 수 있어 다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리 아래 켜켜이 쌓인 기억은 말한다, 닥칠 자연의 위기에 대비하라고
하지만 결국 실패할 거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 부질없어 보일 수도 있다. 장마가 닥치면 떠내려갈 외나무다리를 세우는 미련한 주민들도 그렇고, 바로 옆 콘크리트 다리를 놔두고 불편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어리석은 여행자들도 그렇다. 미래를 기억해내는 초자연적인 마술에 익숙해지기는 쉽지 않다. 과거는 물처럼 흘러가지만 기억은 모래가 되어 그 아래 쌓인다. 인간의 무의식이 자리 잡는 곳이다. 거기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지만 앞으로 맞닥뜨리게 될 일에 대비하라고 우리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목소리가 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작동원리를 설명할 방법은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