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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날아간 소중한 투표권, 붙잡을 수 없을까

2020.04.03 20:10 입력 2020.04.03 20:15 수정

코로나에 날아간 소중한 투표권, 붙잡을 수 없을까[영상]

전염병이 정치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설마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해 보신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유권자들에겐 이 우려가 현실이 돼버렸습니다. 4·15 총선 재외국민투표가 지난 1일부터 오는 6일까지 진행 중인데요. 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소 자체를 설치하지 않는 지역이 계속 추가되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에 사는 유권자들은 우리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는 선거권을 행사할 방법이 없어지는 겁니다. 투표권을 ‘박탈’당한 사람은 지난 2일 기준 전체 재외선거인(17만1959명)의 50.7%(8만7252명)에 이릅니다.

재외국민 참정권은 쉽게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해외 거주 국민들이 처음으로 현지에서 투표에 참여한 것은 1967년 6대 대통령선거 때입니다. 베트남 참전 군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은 그해 처음 실시된 ‘해외 부재자투표’를 통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1972년 ‘유신헌법’(통일주체국민회의법)을 제정하면서 이 제도가 폐지돼버렸습니다.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일본과 프랑스의 재외국민들이 1997년 헌법소원을 제기합니다. 2년 후 헌법재판소는 재외선거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놓습니다.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분단현실에서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교포의 선거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2004년 일본, 프랑스, 캐나다의 재외국민들이 또다시 헌법소원을 냅니다. 재외국민 참정권 보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습니다.

2007년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공직선거법의 관련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립니다. “북한주민이나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추상적 위험성만으로 재외국민의 선거권 행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종전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 불이행’도 선거권을 부인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은 납세나 국방의 의무 이행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며, 재외국민 중에는 병역의무와 무관하거나 이미 병역의무를 다한 사람들도 있다고 짚었습니다.

헌재 판결에 따른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해외 거주 국민도 비로소 대통령 선거와 총선 비례대표 투표권을 가지게 됐고, ‘재외선거제도’가 2012년 총선에서 처음으로 실시됐습니다.

투표 열기는 선거를 거듭할수록 뜨거워졌습니다. 2012년 총선 때는 최종 투표율이 45.7%였으나, 같은 해 치러진 18대 대선에서는 22만명 이상이 투표해 투표율이 71.2%를 기록합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실시된 19대 대선에서는 투표율이 75.3%를 기록했습니다.

경향신문이 화상으로 인터뷰한 재외국민들은 ‘세월호 참사’가 정치와 투표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체류국 국적을 취득하면 생활이 훨씬 편리하지만 그러면 투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국적을 유지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사상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 이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 하나인 선거권을 쉽게 제약해도 되는 걸까요?

지난달 30일 독일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교민 24명은 또다시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선관위의 이번 사무중지 결정이 ‘위헌’임을 확인해 달라는 내용입니다. 앞으로 또다른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선거권은 침해당하지 않도록 기술적·제도적 방편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우리는 국외에서 체류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적극적 유권자입니다. 한 나라에 많지 않은 투표소까지 이동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자 하는 주권자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해외에 체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가진 주권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국가는 마땅히 이런 주권의 행사를 조력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투표를 포기 않으려는 교민들의 목소리를 ‘이런경향’ 채널에서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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