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읽음

“수감자 자녀는 죄인이 아니다”

2020.05.23 17:46
글 이하늬 기자 ·사진 김영민 기자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 / 김영민 기자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 / 김영민 기자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가 성학대 피해자를 위한 쉼터에 들어왔다. 가해자는 아빠와 가까웠던 이웃 아저씨. 그는 단순한 이웃이 아니었다. 아이의 아빠가 “잠시만 잘 돌봐달라”며 아이를 맡긴 일종의 ‘보호자’였다. 아이의 아빠는 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트럭에 채소를 싣고 다니며 팔았던 아빠는 교통사고 뺑소니 사건으로 수감됐다.

이경림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대표(56)는 “그 일을 계기로 ‘엄마·아빠가 지방에 있다’, ‘아파서 병원에 있다’, ‘돈 벌러 외국에 나갔다’는 말을 다시 살펴보게 됐어요. 그리고 의외로 수감된 부모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법이나 단체는 찾기 어려웠다. 수용자 자녀가 몇 명인지 알 수 있는 통계도 없었다.

이 대표가 총대를 멨다. 그렇게 2015년 2월 ‘세움’이 만들어졌다. 세움은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국내 최초의 민간단체다. 발족 이후 전국 교도소에 세움의 존재를 알렸다. “교도소에 도움이 필요한 수용자 자녀가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개가 넘는 추천서가 도착했다. 이중 40개 가정에 지원을 하는 것으로 활동이 시작됐다.

직접 편지를 보내온 수감자도 있다. “저는 OO교도소에 복역 중인 수감자입니다. 무어라 편지 내용을 적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하고, 저 같은 수감자 가족이나 아이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용기를 내 적어봅니다. 저 하나로 인해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 많이 후회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편지지만 꼭 읽어주시고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 5년,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관련 실태조사에 나섰고 이는 인권위의 정책권고(2019)로 이어졌다. 올해 1월 경찰청·대법원·법무부 모두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수용자 자녀와 양육자가 겪는 어려움, 그리고 이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지난 5월 18일 서울 합정동의 세움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세움과 아이들이 처음에 어떻게 만나는지 궁금하다.

“교도소 추천이 가장 많고 교도관이 수감자에게 알려주면 수감자가 직접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수용자 가족이 도와달라고 연락이 올 때도 있다. 연락이 오면 현재 아이를 돌보고 있는 양육자와 이야기를 한 다음에 방문한다. 지원은 아이와 양육자 상담, 경제적인 지원, 동아리 활동 등 여러 가지다. 상담은 100% 가정방문이다.”

-부모가 수감돼 있는 상황이면 보통 양육은 어떻게 되나.

“양육자는 크게 엄마·아빠·조부모로 나눠질 수 있는데, 각각의 어려움이 다 다르다. 엄마와 아이만 남겨지는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무척 크다.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질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아빠가 양육자가 될 때는 밥이나 빨래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조부모는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죄책감 때문에 남겨진 손자·손녀를 더 반듯하게 키우려고 한다. ‘너희 아빠도 그런데 너까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는 마음인데 사실 그러면 아이들은 더 엇나갈 수 있다.”

-원래 한부모 가정이었거나 조부모가 없는 아이는 어떻게 하나?

“시설로 보내진다. 문제는 시설마다 또 시설의 담당자마다 수용자 자녀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수용자 자녀를 지원하는 법이나 매뉴얼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당장 면회만 해도 그렇다. 면회신청을 하는 것부터 면회에는 어떻게 데려갈 건지, 학교에는 어떻게 말할 건지 등 담당자들이 알기 어려운 게 많다.”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수용자 자녀 70% 정도가 부모의 수감 사실을 모른다. 알려주는 게 좋은지 숨기는 게 나은지 판단이 어렵다.

“각각의 사례가 다르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른의 관점과 아이의 관점은 다르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뭐 좋은 거라고 알려주느냐’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아빠가 말도 없이 사라진 거다. 어디로 간 건지, 왜 갔는지, 언제 돌아오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이럴 때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걱정, 공포는 엄청나다. 아이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내 부모가 나를 왜 떠났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아동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아동은 부모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다는 게 세움의 원칙이다.”

세움이 만나는 미취학 아이들에게 첫만남 선물로 주는 ‘세우미’ 인형.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비밀친구를 의미한다. / 김영민 기자

세움이 만나는 미취학 아이들에게 첫만남 선물로 주는 ‘세우미’ 인형. 무엇이든 말할 수 있는 비밀친구를 의미한다. / 김영민 기자

-반면 부모의 체포장면을 목격하는 아이들도 있다.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6%,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연구에 따르면 11% 정도가 부모의 체포장면을 목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아이가 받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2018년 한 아이의 부모가 마약을 밀수하다가 공항에서 체포됐다. 아이도 같이 경찰서에 갔다. 당시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가족 여행을 갔다 왔다고 생각했다. 이후 한동안 아이는 대소변을 못 가리고 밤에 잘 때 소리를 질렀다. 해외는 체포할 때 가능하면 아동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매뉴얼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그런 경우가 많다. 양육자가 숨겨도 법원에서 계속 뭔가가 날아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알게 된다. 이러면 집에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다. 아빠가 15년형을 선고받은 아이가 있다. 아이는 아빠가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줄 안다.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그걸 믿는다. 하지만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 말을 믿을까? 어른의 욕심이 아이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든다.”

-수감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보통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보통 부모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두 가지를 가진다.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에 대해 주변에는 말하지 못하지만 면회는 계속 가고 싶어한다. 첫 면회를 가기까지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한 번 면회를 갔다 오면 더 면회를 하고 싶다, 보고 싶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면회는 어떤 환경에서 이뤄지나.

“2018년 이전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철장이 있고 투명 플라스틱을 사이에 둔 15분 면회였다. 면회하는 시간만큼은 가정과 같은 환경이었으면 좋겠다고 법무부에 건의했고, 법무부가 받아들였다. 현재 전국 53개 교도소의 절반에 ‘아동친화적 가정접견실’이 있다. 부모와 아이가 스킨십을 할 수 있고, 면회시간도 2시간이다.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아 개근상을 받을 수 있었던 한 아이는 아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일에 면회를 선택했다. 아이들에게는 이런 면회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왜 범죄자 자녀를 도와야 하나’라는 시각이 여전하다.

“범죄가 유전일까? 아니다. 범죄를 뜯어보면 구조적인 게 많다. 그럼에도 편견 때문에 아이들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노출될 뿐 아니라 ‘나도 아빠처럼 되면 어쩌지,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당신의 아이와 수용자의 아이는 다르지 않다. 우리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대물림된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부모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녀들이 뭘 배울까? 배제가 답이 아니다. 그리고 이건 수용자의 아이들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해야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해진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