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연구원 ‘미투’…“기관은 조치 않고 방치”

2020.07.13 20:49 입력 2020.07.13 22:18 수정

2017~2018년 근무 계약직 2명, 경찰에 상관이던 연구원 고소

“한두 달마다 연장…인사 결정권자의 성추행 문제제기 어려워”

연구원 “피해자, 추가 조치 원치 않아…‘쪼개기’는 당시 관행”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연구원들이 정규직 연구원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여성인 피해자들은 과거 계약 연장 여부를 손에 쥔 정규직 남성 연구원 ㄱ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으며, 기관은 피해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ㄴ씨와 ㄷ씨는 ㄱ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지난 1일 서울 강서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ㄴ씨와 ㄷ씨는 과거 ㄱ씨가 담당하는 사업의 위촉연구원으로, 2017년 4~9월 ㄱ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은 ㄱ씨가 출장지에서 ㄷ씨의 허리를 팔로 감싸려 하거나 입을 억지로 맞추려 하고, 자정이 넘은 시각 술에 취해 ㄷ씨의 숙소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ㄴ씨는 ㄱ씨가 억지로 자신의 손을 잡고,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고도 했다.

이들은 당시 정규직인 ㄱ씨가 인사권을 갖고 있어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거나 징계를 요구하기 어려웠다고 했다.ㄴ, ㄷ씨는 1~2개월마다 ‘위촉계약’을 맺으며 ㄱ씨에게 고용 여부가 달려있는 구조에서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ㄴ씨는 최소 20일, 최대 3개월 단위로 2017년에만 총 7번의 계약서를 썼다. ㄷ씨는 2개월마다 계약했다. 이들은 “연구책임자 손에 밥줄이 달린 건 모든 계약직들이 아는 사실”이라며 “ㄱ씨는 평소 ‘인건비가 별로 없다’며 간접적으로 해고 위협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또 “ㄱ씨가 징계를 받으면 팀의 모든 계약직 연구원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성추행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2017년 9월 기관에 성추행 피해사실을 알렸으나 기관 측이 피해를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의 고발 이후에도 ㄱ씨는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ㄱ씨와 한 팀에서 계속 일해야 했다. ㄱ씨와 매일 마주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 ㄷ씨는 약 보름 뒤 퇴사했다. ㄷ씨는 경향신문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퇴사한 것은 순전히 ㄱ씨 때문”이라며 “당시 기관이 성희롱고충처리위원회 개최 등 조치를 취해줄 수 있을지 공지하거나, 안전하게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줬다면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ㄴ씨는 2018년 3월까지 ㄱ씨와 같은 팀에서 일하며 업무배제 등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으며 지난 2월 직위해제됐다고 주장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당시 피해자에게 공식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안내했으나 피해자가 추가 조치를 원하지 않아 성희롱고충처리위원회를 여는 등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정규직 책임연구원이 직접 고용을 담당한 ‘쪼개기 계약’에 대해서는 “당시 사업별로 계약 조건에 따라 인건비가 제약된 상황에서 위촉연구원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계약을 쪼개서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즉각적인 조사 의무와 가해자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윤지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신고가 들어오면 즉각 조사해 피해자 의사에 반하지 않는 보호조치를 하는 게 회사의 의무”라며 “정규직과 계약직의 지위를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직장 내 성희롱에 분리 조치 등을 이행하지 않은 것만으로 법 위반”이라고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ㄱ씨는 경향신문에 “ㄴ씨는 당시 피해자로서 피해 사실을 고발하지 않았고, ㄷ씨에게는 당시 여러 차례 사과를 전하는 등 합의가 돼 명확하게 일이 끝났다”며 “당시 기관 측에서 불미스러운 상황이 있었냐고 물어와 팀원들과 오해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고 답했고, ‘행동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었다”고 했다. 계약 연장을 구실로 압박했다는 피해자 주장에는 “당시 연구책임자로서 계약을 짧게 한 건 맞지만, 경력을 이어주기 위해 고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일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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