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속에서 만난 X세대의 순간들

2020.10.24 15:38 입력 2020.10.26 13:44 수정

“잘사는 것보다 멋있게 사는 것, 먼 훗날 행복보다 지금의 행복이 더 소중하다는 의식이 일부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1995년 8월 15일 경향신문은 1990년대 X세대가 등장하면서 “권위 있는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X세대는 그야말로 신세대였습니다. “거리의 패션은 자유와 혼돈 그 자체. 유행모드를 단정지을 수 없다. 비닐재킷에 군화를 신은 여자, 귀 뚫은 꽁지머리의 남자가 거리를 활보했다. 입고 싶은 대로 입었다.” X세대를 겨냥한 상품이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신인 연예인에게는 꼭 X세대라는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그 시절 언론은 X세대를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X세대’ 키워드가 들어간 1990년대 중반 경향신문 기사들을 들춰봤습니다.

1994년 8월 12일자 ‘X세대 개그 선풍’ 기사

1994년 8월 12일자 ‘X세대 개그 선풍’ 기사

1994년 12월 <젊은 남자>라는 영화 한편이 개봉합니다. 대학을 휴학한 채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면서 톱모델을 꿈꾸는 X세대 이한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이한은 배우 이정재씨가, 오렌지족 재이는 신은경씨가 연기했습니다. 메가폰을 잡은 배창호 감독은 당시 불혹을 넘은 나이였습니다. 배 감독은 개봉 즈음 인터뷰에서 극장의 주 관객층인 90년대의 10대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습니다. “신촌, 방배동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록카페를 찾아다녔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고, 숨어서 10대들이 노는 모습을 관찰하기도 했죠.”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정재씨는 각종 신인상을 휩쓸었습니다.

신은경씨는 톡톡 튀고 저돌적인 X세대를 대표하는 스타였습니다. 드라마 <종합병원>에선 선머슴 레지던트 이정화 역으로 ‘신은경 신드롬’이 불었습니다. 그는 1994년 가을 ‘신세대 연예인이 말하는 신(新)대중문화’ 좌담에 참여했습니다. 탤런트 심은하씨, MC 이본·이매리씨, 영화배우 오정해씨, 가수 구본승씨, 그룹 노이즈 등 쟁쟁한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1994년 12월 23일자 ‘올 연예계 휩쓴 신데렐라’ 기사는 배우 신은경씨를 ‘X세대 대명사’라고 표현했다.

1994년 12월 23일자 ‘올 연예계 휩쓴 신데렐라’ 기사는 배우 신은경씨를 ‘X세대 대명사’라고 표현했다.

X세대 스타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언론 매체에서 저를 ‘X세대의 대표주자’로 자주 표현하는데 그때마다 어색한 기분이 들어요. 저 스스로는 오히려 구식에 가까운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찌 보면 신세대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아요.”(신은경)

“동감입니다. X세대라는 게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전 세대에 비해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건 사실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한 개인주의도 젊은이들의 특징이고요.”(노이즈 멤버 천성일)

“X세대의 기준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단순히 나이로만 따지는 거라면 팝송보다 판소리에 더 익숙한 저도 물론 X세대에 속하겠지만요. 그보다 저는 X세대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는 게 마음에 걸려요. 무책임하고 무계획적인 행동이 X세대의 특징인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게 못마땅해요.”(오정해)

1995년 1월 29일자 ‘얼굴만 빼놓곤 톡톡 튀는 X세대’ 기사

1995년 1월 29일자 ‘얼굴만 빼놓곤 톡톡 튀는 X세대’ 기사

1994년 X세대 개그맨 선두주자로는 이휘재씨와 신동엽씨가 거론됐습니다. ‘얼굴만 빼놓곤 톡톡 튀는 X세대’라는 기사의 주인공은 가수 박진영씨입니다. 데뷔곡 ‘날 떠나지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죠. 1997년에는 “X세대 뒤흔든 ‘광기’의 인공음”이란 기사에서 미디음악의 인기를 분석했습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에서부터 김건모의 ‘핑계’,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 조관우의 ‘늪’, 영턱스클럽의 ‘정’, 업타운의 ‘다시 만나줘’까지 미디음악인 X세대의 히트곡을 나열했습니다. 1995년 농구선수 현주엽씨의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어떨까요?. ‘X세대 최고의 오빠 高大(고대) 현주엽’.

1995년 2월 10일자 ‘X세대 최고의 오빠, 高大 현주엽’ 기사

1995년 2월 10일자 ‘X세대 최고의 오빠, 高大 현주엽’ 기사

X세대를 겨냥한 소비시장 보도도 빠질 수 없죠. 1994년 초 현대차와 기아차가 신세대를 겨냥한 소형 승용차 엑센트와 아벨라를 내놨습니다. 가격은 500만원대. 의류업계도 체이스컬트, 티피코시, 게스, 캘빈 클라인 등 국내외 브랜드가 X세대 시장 쟁탈전에 나섰습니다. 무선호출기 시장에는 ‘검은 사각형’을 벗어난 모토로라의 ‘패션삐삐’가 등장해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1995년 11월 28일자 ‘모래시계 학번-X세대 학번 경쟁자인가 동반자인가’ 기사

1995년 11월 28일자 ‘모래시계 학번-X세대 학번 경쟁자인가 동반자인가’ 기사

1996년 11월에는 조금 독특한 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젊은 세대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80년대 모래시계 학번과 90년대 X세대 학번 대표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이해하는 토론회였습니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아래에서 공부보다는 민주화운동에 더 몰두했던 80년대 학번은 대학생들의 시대적 책임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신세대들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중요시했습니다. “80년대 학번 선배들은 우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지나친 독선주의에 빠져 있다”, “90년대 신세대 후배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너무 방관자적이다.”

‘이래 봬도 나 X세대야.’ 그해 2월에는 고 최경자 국제패션디자인연구원 이사장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1911년생으로 86세의 패션계 대모였던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보면 그들의 뛰어난 감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아슬아슬한 초미니스커트며 배꼽티가 눈에 거슬리지 않느냐고요? 패션은 바람 같은 거예요. 60년대 초 미니스커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미니스커트 망국론까지 나왔지만 바람처럼 흘러갔다 또 복고바람을 타고 되돌아오잖아요.”

1994년 10월 17일자 ‘X세대형 할머니 늘고 있다’ 기사

1994년 10월 17일자 ‘X세대형 할머니 늘고 있다’ 기사

‘자유선언 X세대형 할머니 늘고 있다’(1994년)는 기사도 보입니다. 손자를 무릎에 눕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전형적인 할머니상은 옛말. 이제는 에어로빅이나 수영 등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할머니로 바뀌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손자를 돌보다가도 언제 거부하고 떠날지 몰라 ‘X세대 할머니’라는 신조어가 생겨났습니다. 각종 상담전화에는 “나는 더 이상 집 보고 아이 보는 일로 여생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들의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고 합니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면서 육아문제가 가정을 떠나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이지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신문 속에서 만난 X세대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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