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이란 용어, 쉽게 사용할 말 아닙니다”

2020.11.01 14:39 입력 2020.11.01 23:01 수정

추미애 장관과 검찰 간 갈등서 ‘커밍아웃’ 표현 반복되자

성소수자 단체들·정의당, 무분별한 용어 사용 자제 촉구

“투쟁 방식이자 결의 담은 행동…의미를 퇴색시키지 말라”

“커밍아웃이란 용어, 쉽게 사용할 말 아닙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검찰 간 갈등에서 ‘커밍아웃’ 표현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자 성소수자단체 등이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주의해달라”고 비판했다. ‘미투’를 차용한 ‘빚투’에 이어 소수자 저항의 언어를 오·남용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추 장관이 지난달 29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 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이라고 글(사진)을 올린 이후, 일부 검사들과 여권 인사 등이 커밍아웃 용어를 검찰개혁과 관련해 추 장관에 대적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같은 날 최재만 춘천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에 ‘장관님의 SNS 게시글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려 “나도 커밍아웃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검사들의 ‘나도 커밍아웃’이 유행인가”라며 “대한민국의 진짜 검사들, 국민들은 ‘자성의 커밍아웃’을 기다리고 있다”고 페이스북을 통해 말했다.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커밍아웃 검사’ ‘추미애 커밍아웃 논란 확산’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커밍아웃’ 용어의 선택이 적절치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달 30일 추 장관과 검사들의 커밍아웃 표현 사용에 대해 “커밍아웃이 갖고 있는 본래의 뜻과 어긋날 뿐더러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걸어온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정의당도 논평을 통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검찰은 더 높은 인권 감수성을 지녀야 할 위치에 있으며 용어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아무리 올바른 주장을 할지라도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설득력은 반감될 뿐”이라고 했다.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자신의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 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으로, 성소수자의 투쟁 방식이자 결의를 담은 행동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는 2011년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실천 매뉴얼에서 “커밍아웃은 성소수자가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성정체성을 밝히는 의미이므로 범죄 사실을 고백하는 표현 등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성소수자와 관련해 잘못된 용어 사용을 지양할 것을 권고했다.

성소수자는 겹겹의 위험 속에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커밍아웃을 하지만 정치권이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어를 사용해 운동의 의미를 퇴색시켰다고 성소수자단체는 지적했다.

이종걸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장은 “여전히 차별과 억압이 공고한 현실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더 큰 사회적 차별, 린치에 맞닥뜨린다”며 “차별을 개선할 책임이 있는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이 커밍아웃 운동의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어를 오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들은 지난 2018년 마이크로닷 등 연예인 가족의 채무 불이행 폭로를 가리켜 ‘빚투’라는 용어를 사용해 비난받았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소수자 운동이나 대의적인 정의를 위해 애써 구축해온 용어들이 쉽게 사용되는 것은 문제”라며 “특정 용어가 항상 독점적 맥락으로 사용될 수는 없지만 왜 정의로운 가치를 위해 사용돼야 하는지 토론과 의미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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