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밝은 밤, 나의 건강을 빼앗고 하늘의 별을 지웠다

2020.12.01 21:31 입력 2020.12.02 08:24 수정

국내 ‘빛공해’ 관리실태

눈부시게 밝은 밤, 나의 건강을 빼앗고 하늘의 별을 지웠다

과도한 빛, 동식물 호르몬·번식주기 교란…“환경파괴의 완행열차”
작년 수면 방해 등 민원 6605건…관리구역 지정돼야 조명 등 제재
악취·소음보다 뒤로 밀린 관리…“외국선 별 안 보이면 빛공해”

“빛이 워낙 강하니까 공동어장 미생물도 다 죽어버리고, 여름에는 한치를 낚는데 며칠 동안 하나도 안 잡히고, 원래 대부시리도 무는데 이젠 안 물어요. 소라·전복·보말·성게도 많았는데 해녀들도 물건 구경을 할 수 없다고 해요.”

제주 서귀포 대포마을에서 한평생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온 양덕문 대포어촌계장(65)은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양 계장은 서귀포 앞바다가 황폐해진 원인으로 ‘밤인지 낮인지 모르게 비추는 빛’을 지목했다. 제주 방언으로 이야기하던 그의 입에서 서치라이트(search-light)라는 영어 단어가 튀어나왔다.

밤바다에 빛이 쏟아지기 시작한 건 4년 전쯤이었다. 인근 카페가 설치한 서치라이트였다. 카페는 밤에도 바다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바다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뱃길도 위험해졌다. 양 계장은 “밤에 입항할 때 어선끼리 불빛이 안 보여 충돌할 뻔한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할 지자체인 서귀포시는 “관련 규정을 찾아봤지만, 현재로선 단속할 근거가 없다”며 손을 놓고 있다.

눈부시게 밝은 밤, 나의 건강을 빼앗고 하늘의 별을 지웠다

■ 빛 때문에 잠 못 자는 사람들

대포마을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은 ‘빛공해’가 결국 인간에게 어떻게 돌아오는지, 국내 빛공해 관리실태가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밤하늘이 환해지면서 어류와 조류, 곤충들은 밤에도 쉬지 않고 활동을 한다. 생태계의 맨 밑바닥에 있는 생명체들이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여름밤 잠을 설치게 하는 매미도 사실은 빛의 피해자다. 주광성 곤충으로 낮에만 우는 매미가 밤새 시끄럽게 울어대는 것도 낮인 줄 착각해서다.

인공조명은 인간의 활동시간을 늘리고 생활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지만, 과도한 빛은 동식물의 호르몬 수치와 번식 주기 등 생체리듬을 교란시키고 있다. 홍승대 신안산대 교수(한국조명디자이너협회 회장)는 “학계에서는 소음과 대기·수질·토양 오염 등이 (환경 파괴의) 급행열차라면 빛공해는 완행열차라고 표현한다”며 “당장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구 생태계를 서서히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생태계는 한 축이 무너지면 전체가 파괴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빛공해는 인간의 건강을 해치는 직접적인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인공조명에 지나치게 노출될 경우 생체리듬에 관여하는 대표적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면서 여성은 유방암, 남성은 전립선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빛공해방지법)을 보면, 빛공해는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한 과도한 빛 또는 비추고자 하는 조명영역 밖으로 누출되는 빛이 생활을 방해하거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상태를 일컫는다. 도시의 야경을 휘황찬란하게 수놓은 네온사인이나 골목의 어두운 길을 지나치게 밝게 비추는 가로등, 밤새 켜놓은 간판과 전광판까지. 눈이 부시면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빛이 공해가 되는 순간이다. 도심에서는 좀체 별을 관찰할 수 없는 것 또한 과도한 빛을 내뿜는 데 따른 폐해다.

일상생활에서도 빛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에는 관련 민원이 수시로 올라온다. 대개는 외부 빛이 실내로 들어오는 침입광으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A씨는 “맞은편 상가 간판 불빛이 방 안쪽으로 들어온다. 자려고 누우면 불빛이 깜빡거려 수면에 방해가 된다”며 빛공해 단속을 요청했다. 광주에 사는 B씨는 “건너편 교회 십자가 조명이 강해 수면 및 생활에 지장이 많다”고 민원을 제기했다.

■ 조명환경관리구역 지정 안 하는 지자체

빛공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환경부가 집계한 ‘빛공해 민원 현황’을 보면 지난해에만 총 6605건이 접수됐다. 2015년까지만 해도 3000건대였던 민원은 2016년 6978건으로 훌쩍 뛰더니 2018년에는 7191건으로 증가했다. 피해 유형은 역시 수면 방해가 3261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생활 불편(1336건), 농작물 피해(1306건), 눈부심(702건) 순이었다.

지난해 접수된 민원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2168건(32.8%)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1221건), 충북(712건), 경남(588건) 등의 순이었다. 전남(22건)과 제주(32건) 등 상대적으로 도심이 덜 개발된 지역의 빛공해 관련 민원은 적었다.

한국은 이미 ‘빛공해에 많이 노출돼 있는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6년 국제 공동연구진이 미국의 지구 관측위성인 수오미 NPP로 지구의 밤하늘을 촬영해 각국의 빛공해 정도를 분석한 결과,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중 이탈리아(90.3%) 다음으로 빛공해에 많이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전체 국토 면적에서 빛공해 지역이 차지하는 비율은 89.4%였다. 빛공해 지역이 거주지와 겹치는 비율을 계산한 인구별 노출량에서도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빛공해 관련 논의와 연구는 지지부진하다. 도시화·산업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빛에 지나치게 관대해진 영향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인근 공장이나 동네 점포의 불빛이 밤새 환하게 켜져 있어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2012년 빛공해방지법이 제정됐으나 현재로선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 법이 효력을 가지려면 빛공해가 발생한 지역은 ‘조명환경관리구역’(관리구역)으로 지정돼 있어야 한다. 현행법상 관리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한해서만 가로등과 광고물 등 조명기구의 빛 방사 허용기준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최근 빛 방사 허용기준을 초과해 공해를 유발했을 때 부과하는 1차 과태료를 5만원에서 30만원으로 올렸다. 위반 횟수가 3회 이상이면 과태료는 100만원으로 오른다. 이 모든 제재는 관리구역에만 적용된다.

■ ‘별 헤는 밤’은 다시 돌아올까

문제는 관리구역 지정 권한이 있는 지자체 대다수가 빛공해 해결에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2014년 ‘제1차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에서 2018년까지 국토의 절반을 관리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도 목표 달성은 요원하다. 관리구역을 지정한 지자체는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광주·인천·경기·부산 등 5곳뿐이다. 나머지 12개 시·도는 여전히 관리구역을 지정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빛공해 관리는 악취나 소음 등보다 뒤로 한참 밀려 있다”며 “인력과 예산 부족, 지역경제 타격 및 규제 적용 부담 등의 이유로 빛공해를 관리하지 않으려고들 한다”고 말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빛공해 방지 업무는 역량을 총동원해도 눈에 띄는 정책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외 상황은 다르다. 빛공해에 대한 본격 논의가 대략 40년 전부터 이뤄지면서 이탈리아와 일본 등은 도시 조성 권한이 있는 지자체에서 가로등이나 옥외광고 조명, 전광판 등을 적극 관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값이 싸면서도 고효율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등장함에 따라 새로운 규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김훈 강원대 교수(한국조명전기설비학회 명예회장)는 “한국에서 빛공해라고 하면 가로등이나 간판 등에 따른 불편을 떠올리지만, 외국에서는 ‘하늘의 별이 안 보인다’는 것”이라며 “길바닥을 비추려고 만든 옥외조명 빛이 새어나가 위로 향하면 하늘이 환해진다 외국에서는 그것을 적절한 수준으로 규제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는 빛공해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도 천문학자들이었다.

지금이라도 지자체들이 관리구역 지정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그래야 필요한 곳에 적정 밝기의 ‘좋은 빛’은 확산하고 빛공해는 단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는 커다란 광고판 안에 수십개의 형광등을 넣었지만 요즘은 LED를 쓰면서 전체를 발광하게 하고 테두리에 조명을 둘러도 버젓이 방치되고 있다”며 “빛이 필요 없는 곳은 어둡게 해주는 게 야간 미관이나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는 것을 각 지자체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승대 교수는 “국내외에서 빛의 양이 점차 늘고 있다. 늘어나는 빛 때문에 밤하늘이 밝아지고 있다.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라며 “밤은 어두워야 한다.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빛공해방지법을 개정하고, 지자체가 필요시 빛공해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검사기관 지정제도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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