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켜주세요” 혐오와 차별 없는 학교는 언제쯤

2021.03.04 16:00 입력 2021.03.04 23:32 수정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생인권 종합계획’ 시행을 강력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학생인권 종합계획’ 시행을 강력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학교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외국으로 도망치는 것만이 답인가요? 사회로 나아가기 전 ‘나도 사회에서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느끼게 해주세요.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조희연 교육감님, 제발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켜주세요.”(17세 게이 청소년)

스스로 트랜스젠더라고 밝힌 첫 직업 군인 변희수 전 육군 하사가 지난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그를 추모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청소년 성소수자를 혐오와 차별로부터 보호하자는 기본적인 원칙조차 교육 현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른바 ‘혐오세력’의 공격 때문이다.

4일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이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생인권 종합계획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국의 청소년 성소수자 106명의 목소리가 담긴 요구안이 공개됐다.

학생인권 종합계획은 서울시교육청이 혐오와 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세운 방안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2023학년도에 적용할 3개년 계획을 지난해 12월 발표했으나, 새 학기가 시작된 지금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단체들이 문제삼은 것은 학생인권 종합계획 중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 부분이다. “성인권시민조사관을 통한 성소수자 피해 학생 상담·조사 지원”, “각종 교육자료, 홍보물 대상 지속적인 성평등 모니터링 강화” 등 내용으로 이미 2012년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소수자 학생의 권리 보장’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인권 보호가 아니라 특권 부여” “동성애를 의무교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항의 전화·글 게재와 같은 각종 민원 제기, 기자회견을 통해 학생인권 종합계획에서 ‘성소수자’ 부분을 빼라고 서울시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다.

4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희수 전 하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연합뉴스

4일 국회 정의당 대표실 앞에 변희수 전 하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연합뉴스

청소년 성소수자가 학교에서 혐오와 차별을 자주 경험하고, 이 때문에 학교 활동을 포기하거나 우울증·자살 시도·자해를 하기도 한다는 자료들이 있다. 나아가 띵동 등은 지난달 18일부터 23일까지 12~20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혐오발언을 듣고, 아우팅(당사자 동의 없이 성적 지향 등이 공개되는 것) 또는 정서적·물리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14세 레즈비언입니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 말해도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괜히 이상한 소문이 돌아 저를 괴롭힐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15세 양성애자 시스젠더입니다. 교과서에는 전혀 성소수자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17세 트랜스젠더 무성애자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남녀분리 체육수업이 괴로웠고, 성별에 따라 앞 번호 뒤 번호가 갈려 번호를 쓸 때마다 매우 괴로웠으며, 모의고사에서 성별을 표기하는 것도 고통이었고,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줄을 서는 것도, 수강신청 페이지에서 성별이 표기되는 것도 고통이었습니다.”

“18세 호모 플렉시블입니다. 학교 상담 선생님께 ‘3년 전에 커밍아웃을 한 후에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다’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신 상담선생님께서 갑자기 아직 어려서 그렇다느니, 더 고민해보라느니, 20살까지 계속 그러면 외부 상담을 받아보라느니 이상한 소리를 하셔서 상처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13세 범성애자입니다. 선생님이 레즈비언, 게이 같은 동성애자들이나 트렌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은 전부 정신병자라며 우리 반엔 없길 바란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19세 범성애자 논바이너리입니다.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이 돌아 친구 관계는 물론 학교생활이 무너졌습니다. 소문을 알고 있는 사람을 누구일지 몰라 늘 불안했고, 아우팅과 조롱을 학교폭력으로 넘기는 과정 속에서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사건이 꿈에 나오거나 다시 생각이 날 때면 마음이 쿵 내려앉고는 합니다.”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켜주세요” 혐오와 차별 없는 학교는 언제쯤

지난달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중·고등학교를 다닌 584명 중 성소수자 관련 성교육의 부재나 성별 정체성에 맞지 않는 교복 착용 등으로 힘들었던 경험을 했다는 답변이 92.3%였다. 중·고등학생 때 교사가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답변도 67.0%나 됐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나 폭력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이 조사를 진행한 이혜민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는 교육제도는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가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공간이 되는 밑거름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어 “반인권적인 교육 현장에서 청소년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혐오와 차별·폭력은 이들의 학업과 건강, 나아가 이들의 삶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교육당국의 책임있는 개입으로 변화할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겪는 폭력을 방지하고, 학교 교육과정에 성수자의 인권과 다양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다솜씨는 “일각에서 학생인권 종합계획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각종 혐오와 폭력을 일삼고 있다”며 “그러나 동성애를 가르친다고 해서 성소수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를 부정한다고 해서 성소수자 학생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씨는 “차별과 혐오에 취약한 학생들을 위해 학생인권 종합계획은 하루 빨리 수립돼야 한다”며 “서울시교육청은 성소수자 학생을 포함한 학생들을 차별과 혐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했다.

띵동의 보통 활동가는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반복됐던 혐오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일상적 스트레스와 우울을 낳았다”며 “현재의 학교 현장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안전하고 온전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청소년 성소수자 106명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어달라”며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이 포함된 학생인권 종합계획, 그 이후의 변화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관련기사: ‘서울 학생인권의 날’ 앞두고…여전히 ‘성소수자 보호’가 ‘동성애 조장’이라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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