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구 중학생 사건' 어머니 "지금도 꿈에서 만나는 아들…사과는 아직도 받지 못했다"

2021.03.21 08:10

10년 전 대구의 중학생 권모군이 동급생의 물고문과 구타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 이후 학교폭력 대책이 강화됐지만, 최근의 연쇄적인 폭로는 그간의 제도가 피해자 회복과 치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건 직후 “지금 말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취재해달라”고 요청했던 권군의 어머니 임지영씨와 만났다. 그는  “저에겐 아픈 일이지만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kyunghyang.com

10년 전 대구의 중학생 권모군이 동급생의 물고문과 구타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한국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 이후 학교폭력 대책이 강화됐지만, 최근의 연쇄적인 폭로는 그간의 제도가 피해자 회복과 치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건 직후 “지금 말고 10년 후, 20년 후에도 계속 관심을 갖고 취재해달라”고 요청했던 권군의 어머니 임지영씨와 만났다. 그는 “저에겐 아픈 일이지만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kyunghyang.com

대구에 사는 임지영씨(58)는 몸이 조금만 아파도 악몽을 꾼다. 꿈에선 늘 ‘그날’의 하루가 반복된다. 아이보다 먼저 출근하면서 “갔다 올게”라고 말한다. 아들은 소파에서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말한다. 마음속에선 ‘출근하면 안 돼’라고 외치지만, 꿈에서조차 결국 집을 나선다. 그리고 그날,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와 봤던 그 장면…. 그는 10년 전 동급생들의 물고문, 구타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고 권모군의 어머니다.

최근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면서 2011년 ‘대구 중학생 사건’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당시 대구에선 권군의 사건 이후 여러명의 중·고등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이듬해 투신한 고1 남학생 이모군이 찍힌 엘리베이터 CCTV 사진도 한국사회 시민에게는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권군의 유서와 이군의 사진은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다시 공유되고 있다.

임씨는 2011년 아들의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인터뷰로 끝내지 말고 10년, 20년, 3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꼭 취재해주세요. 그때 다시 인터뷰해주세요.” 더는 학교폭력으로 희생되는 아이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싶었다. 당시 임씨가 아들의 유서를 언론에 공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후 10년이 흘렀다. 임씨는 지금도 종종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다. 주간경향과 만남에서 그는 “저에겐 아픈 일이지만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얘기하면서, 조금이라도 학교폭력 문제가 나아지길 소망한다”고 했다.

-혹시 이사 가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가족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이 계속되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아이(숨진 권모군) 때문에 못 갔죠. 애 흔적이 너무 많은데 그걸 내가 다 버리고 가면, 내 아들이 다시 보고 싶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잖아요. 아이 방이 그대로 있거든요(임씨는 권군의 책상을 10년 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지금도 선잠이 들었을 때 무슨 소리가 나면 ‘아, 아이가 오나’ 싶어요. 아이가 가끔 베개 들고 와 안방에서 자고 그랬거든요. 방문이 확 열리고 애가 들어올 것 같은 거예요.”

-10년 전에 가족이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나와 남편은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요. 큰아이는 경찰청 심리케어팀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그분들과 자주 연락하고, 형처럼 의지하고 있어요. 아이는 경찰이 돼 심리케어팀에서 일하고 싶어해요. 그 분야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어요. 큰아이 친구들도 너무 고마웠어요. 당시에 우리 집에 와 같이 등교하고 그랬어요. 아이(고 권모군) 추모공원을 찾아 편지를 남겨놓고 간 분들도 있고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았어요.”

-사건 직후 언론에 가해학생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요.

“지금도 그 아이들 이름이 어쩌다가 (인터넷 등에) 나오거든요.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것이 중요하지, 그 아이들도 인생이 있는 거니까요.”

-가해학생 2명은 각각 2년, 3년형을 받았는데, 아직 사과는 받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가슴이 아프죠. 마음이 두 갈래예요. ‘차마 우리에게 오기가 미안해 못 올 것이다’라고 믿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혹시나 뉘우치지 않고 자기들도 억울하다고 여기며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요. ‘좋게 생각해야지’ 하고 마음먹어 보지만 용서가 안 돼요. 어떻게 용서가 되겠어요. 용서라는 단어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 아이들이 반성하면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뉘우침 없는 모습을 본다면, 제가 무너져 내릴 것 같아요.”

-혹시 용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나요.

“나는 가톨릭 신자예요.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는 기도문이 있어요. 그 기도문을 외울 수가 없는 거예요. 사건 직후에는 성당에도 못 갔어요. 용서가 안 되는데 내가 뭘 기도할 수가 있나 싶어서요. 나중에 너무 힘들어 성당을 찾았는데, 수녀님을 만나자마자 ‘제가 그 엄마예요’라고 겨우 말하고는 펑펑 울었어요. 그때 신부님과 면담을 했는데 ‘억지로 용서하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고요. 많은 위안이 됐어요. 그렇지만 지금도 성당에 가면, 앞자리에 앉지 못해요. 내 아이를 못 지킨 데 대한 죄책감이 크니까.”

임지영씨는 학교폭력으로 희생되는 아이가 더는 없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아들의 유서를 모두 공개한 바 있다. 임지영씨 제공

임지영씨는 학교폭력으로 희생되는 아이가 더는 없어야 한다는 바람으로 아들의 유서를 모두 공개한 바 있다. 임지영씨 제공

-유서를 보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떤 아이였나요.

“저에게 나쁜 기억을 하나도 주지 않았던 아이예요. 애정을 듬뿍 받고 컸어요. 형도 동생을 정말 예뻐해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리곤 했어요. 큰아이도 죄책감이 컸죠.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얘기했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해학생 중 한명이 ‘나에게 조폭 친척 형이 있다. 주변에 말하면 가만 안 둔다’는 식으로 위협했다고 해요. 아들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신고하겠다는 걸 애가 말렸대요. ‘나, 맞아죽는다고, 내가 죽는 걸 보고 싶으냐’고 하면서요. 아이는 우리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냥 내가 당하고 끝내자’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사건 직후에는 가해학생, 부모들과 만난 적이 있나요.

“두 집(두명의 가해학생 가정) 중 한집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와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죄송하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잘못한 만큼 벌 받았으면 좋겠다’ 했더니 ‘알겠다, 죄송하다’라고 하고 갔어요. 그런데 또 다른 집 어머니는 계속 찾아와 ’우리 아들은 시켜서 때린 거다’, ‘우리 애도 피해자다’라고 했어요. ‘우리 아들을 ○○이 대신 이 집 아들로 살게 하겠다’라는 말도 하는데, 결론은 억울하다는 거였어요. 너무 자주 찾아와 가끔은 문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제가 딱 잘라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할머니를 모시고 또 왔더라고요. 할머니가 직접 뜯은 것이라며 나물을 주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먹을 수 있겠어요. 애가 죽었는데…. 합의라는 것도 애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거잖아요. 차라리 애(가해학생)를 직접 데리고 와 사과하게 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엄마만 계속 찾아와서….”

-그후 어떻게 됐나요.

“형사재판이 시작되니까 발길을 딱 끊었어요. 그 사람이 찾아오던 한달 동안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두분 모두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사건 직후 잠시 교편을 내려놓았다고요.

“저희가 주말부부였어요. 사건이 있고 나서 둘 중 한명은 큰아이(권군의 형)를 지켜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죠. 당시 고1이었지만 너무나 불안했으니까요. 그래서 남편이 일을 그만뒀어요. 전 지금도 큰아이와 연락이 잠깐 끊겨도 불안해요. 큰아이도 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엄마, 학교에 왔어요’, ‘엄마, 밥 먹었어요’, ‘엄마, 어디 도착했어요’ 이런 식으로 문자를 자주 보내줘요. 큰아이에게 종종 말해요. ‘엄마가 너한테 너무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라고.”

-최근의 학교폭력 폭로 현상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학교폭력 사건에서 가장 ‘기본’은 피해자의 회복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복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끊임없이 기다려주고 살펴줘야 해요. 그런데 교육부에선 그걸 허락하지 않아요. 폭력 사안이 생기면 2~3주 안에 사안조사를 해 교육지원청에 넘겨줘야 해요. 피해자는 마음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행정적 절차가 이뤄지고 끝나는 거죠. 만약 피해자들의 치유가 제때 이뤄졌다면 폭로도 잇따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의 현상은 일종의 성장통 아닐까요. 피해자의 마음을 살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거짓 폭로도 있겠지만 전부는 아닐 거예요. ‘잘 나가니까 저런다’는 식의 반응은 또 다른 상처만 입혀요.”(임씨는 대학원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에 관해 공부했다. 그의 연구보고서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피해자가 회복하여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졸업 후 사회에서도 적응하는 모습의 사례를 찾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중요할 텐데, 실례를 보면 형식적인 사과가 많더라고요.

“유치원 시절부터, 아주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의 어떤 행동 때문에 저 아이가 힘들구나’ 하는 것을 가해자·방관자 모두가 인식하도록 오랫동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단번에 이루어지진 않겠죠. 그래도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요.”

권군의 유서에는 “저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우리 가족을 기다릴게요”라는 대목이 나온다. 엄마는 ‘기다리고 있을’ 아들을 위해 지금도 매일 기도를 한다. 그는 만약 지금 아들이 듣고 있다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미안해. 엄마는 네가 그렇게 아픈 줄 모르고 있었어. 그래도 너로 인해 세상이 조금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어. 엄마가 갈 때는 ‘이렇게 많이 변했어’라고 웃으면서 얘기하고 싶어. 거기서는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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