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익명출산을 돕는 ‘보호출산에 관한 특별법안(보호출산특별법)’ 입법을 놓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갓난아기를 시설에 맡기는 ‘베이비박스’의 대안으로 보호출산제 도입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이 제도 도입 시 되레 양육 포기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일 국회에 따르면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보호출산특별법안이 오는 21일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영아 유기 발생 건수는 총 1272건으로, 2014년 41건에서 2018년 183건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또 베이비박스 운영을 두고도 ‘병원 밖 출산’으로 아동의 건강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보호출산제 도입은 이처럼 영아 유기가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국회 논의를 앞둔 보호출산특별법안은 자녀를 낳은 친모가 입양 의사 피력 시 지방자치단체에 자녀를 인도하고, 의료기관은 임산부 신원을 비식별화(익명화)함으로써 비밀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호출산을 선택한 임산부는 정부 지원을 받아 의료기관에서 검진을 받고 출산을 할 수 있다. 경제적·사회적 곤경 등을 이유로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여성을 보호하고 태아에게 안전한 양육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이다.
보호출산제 도입을 반대하는 단체들은 이 제도가 임신갈등 상황에 있는 임산부들에게 양육 포기나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친부모 동의가 없으면 아동이 성장해도 누가 낳아준 부모인지 알기 어려운 점도 논란거리다. 법안에 따르면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동이 성년에 도달해도 친부모 동의를 받아야만 출생증명서를 볼 수 있다. 이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알 권리를 아동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도 배치된다.
2014년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독일은 영아 유기가 매년 30여건씩 감소하는 등 일부 효과를 보고 있다. 독일 전역에 임신갈등 상황을 털어놓을 수 있는 1000여개의 상담소가 설치되는 등 인프라 구축이 신속하게 이뤄진 점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다만 독일은 친모 동의가 있을 때만 가족 정보를 공개토록 한 ‘익명출산제’를 운영 중인 프랑스와 달리 친모가 공개를 거부해도 법원 판결로 관련 정보 공개가 가능한 ‘신뢰출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국내입양인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10개 단체는 이날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호출산특별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아이의 출생 사실을 부모가 신고하는 게 아니라 분만 병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이진혜 변호사는 “지금은 ‘출생통보제’를 신속히 도입해 한국에서 태어난 모든 아동이 부모의 지위나 국적과 무관하게 출생등록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아동이 부모에 의해 양육받을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체계 없이 보호출산제를 도입하면 익명출산이 ‘최후의 수단’이 아닌 ‘유일한 수단’으로 기능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