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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컨설팅 받아보니..."요즘은 뇌물이 대세"

2021.07.17 08:40 입력 2021.07.17 08:41 수정

‘리뷰 이벤트’로 온 파이가 담긴 포장지에 ‘리뷰 뇌물’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송윤경 기자

‘리뷰 이벤트’로 온 파이가 담긴 포장지에 ‘리뷰 뇌물’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송윤경 기자

월급은 230만원 이상. 4대 보험은 없음. 주 5일 근무. 학력 무관. 광고대행업. 주 업무는 ‘맛집에 대한 자연스러운 후기 형식의 원고 작성’.

맛집 리뷰 작가를 찾는 구인 광고다. 구직 사이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달 앱이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이뤄지는 평점이나 리뷰를 둘러싼 시장은 오래전 형성됐다. 리뷰·평점 작성 대행 서비스 업체나 리뷰 삭제 회사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여럿 등장한다. 성형앱 평가 리뷰만 전문적으로 작성해주는 곳도 있다. 하나같이 ‘인위적 조작이 전혀 없는 순수 마케팅’을 강조하면서 ‘불법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나쁜 리뷰가 딱 하나 있는데 손님이 이 리뷰가 왜 있냐고 전화로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온라인 사무용품 판매업체 사장 A씨)는 말처럼 단 한건의 ‘나쁜 리뷰’도 소상공인의 매출에 영향을 끼친다. 리뷰를 달거나 삭제하려는 움직임 모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각종 플랫폼의 리뷰를 관리해준다는 업체 5곳으로부터 대략적인 ‘컨설팅’을 받아봤다. 이들은 주로 좋은 리뷰를 다수 달아주는 ‘리뷰 작업’과 서비스를 주고 별점 5점을 받아내는 ‘리뷰 서비스’를 추천했다. 컨설팅의 주요 내용은 상품과 서비스의 ‘질 향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별점과 리뷰는 과연 믿을 만한 지표일까.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삭제보다 리뷰 작업 추천

리뷰 관리 업체가 자영업자들로부터 자주 받는 문의는 ‘나쁜 리뷰 삭제’다. 일부 업체들은 실제로 온라인상의 리뷰 삭제 작업을 해주고 있다. ‘댓글 1개당’ 시세는 3만~5만5000원. 한 업체는 “(리뷰 삭제는) 포털사이트만 가능하고 배달앱은 상당히 위험하다”면서 “악의적 리뷰라 판단되면 공식적으로 신고하는 일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리뷰 컨설팅 업체들은 나쁜 리뷰를 좋은 리뷰로 ‘밀어내는’ 방식을 추천했다. 또 다른 업체는 ‘구매평+평점 5점’ 한건에 5000원이라며 가격까지 먼저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바이럴 마케팅’이라며 하나의 홍보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제품은 실제로 배송하지 마시고 빈박스만 (이름을 빌려준 고객에게) 보내주시면 된다’, ‘고퀄리티 리뷰를 원하신다면 직접 작성해서 보내주시면 된다’, ‘포토리뷰는 이미지 첨부가 필수다’, ‘너무 긴 구매평만 있으면 오히려 고객이 의심한다’는 팁은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왔다.

최근엔 ‘허위 리뷰’에서 진화한 ‘리뷰 이벤트’가 대세다. “영수증이나 사진 리뷰 달면 초밥 한두개 더 준다? 이런 건 무조건 해야 한다. 서비스 주고 리뷰 받게 되면 서로 호의적이게 된다. 사장하고 고객 소통도 되고. 서비스 음료 하나 더 주고 좋은 리뷰 받는 게 댓글 삭제하는 데 돈 들이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히고 효과도 더 크다”는 디지털 장의사 B씨의 조언이 요즘 상황을 뒷받침한다.

업체들은 주로 별점이 낮은 사업자들에게 ‘리뷰 이벤트’를 제안한다. 한 자영업자는 “앞집에서 배달이 엄청 나가길래 알아봤더니, 사장이 리뷰 업체에 월 180만원을 주고 관리를 받고 있었다. 리뷰 이벤트를 기획한 후 ‘사장님 공지’ 문구를 작성해주고, 리뷰에 댓글을 써주는 걸 해준다고 들었다”고 했다. 특히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나이 지긋한 사업자들이 리뷰업체들의 ‘타깃’이다.

허위 리뷰 대신 ‘리뷰 이벤트’가 흥한 배경엔 플랫폼 측의 적극적인 대응도 한몫했다. 배달의민족(배민)은 지난 5월 허위 리뷰 작성을 주도한 마케팅회사 사장이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허위 리뷰 작성이 실형으로 이어진 드문 사례다. 판결문을 보면, 리뷰 조작 업체 사장 2명은 ‘허위로 소비자 후기를 남기는 방식으로 홍보해주겠다’고 여러 업체에 제안했다. 업체 사장 C씨는 총 350회, 회당 30만원에 100개의 후기를 작성하는 계약을 맺은 사실이 확인됐다. C씨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리뷰를 만들어주는 한 업체는 “저희는 배달앱 쪽은 진행을 아예 안 한다. 배민 리뷰하는 분들 최근에 실형 받아 뉴스에 나왔다”고 했다.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클린리뷰시스템’ 안내 갈무리.

배달의민족이 운영하는 ‘클린리뷰시스템’ 안내 갈무리.

■뇌물 줄게 리뷰 다오

좋은 리뷰를 달아주는 대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뷰 이벤트는 공격용이면서 방어용이다. 악성 리뷰를 막아 낮은 별점을 줄이고, 높은 평점을 확보해 평균을 끌어올린다. ‘최신순’으로 봤을 때 상단에 좋은 리뷰를 게시하는 전시효과도 크다. 추가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에겐 이득일 수 있지만, 자영업자 입장에선 모두가 하니 ‘안 하면 죽는’ 이벤트다. 서비스만 받고 리뷰를 달지 않는 ‘리뷰 먹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온라인 사무용품 판매업체 사장 A씨도 한때는 좋은 리뷰를 여러개 써 악성 리뷰를 밀어내리는 작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어서” 리뷰 이벤트만 한다. ‘리뷰 작업’은 택배를 보낸 것처럼 위장해야 하기 때문에 택배비용이 들어간다. 그는 리뷰를 받는 대가로 고객에게 소정의 소모품을 서비스로 배송하니 “5분의 1 수준으로 비용이 줄었다”고 했다.

리뷰 이벤트를 활용하는 자영업자들 사이 경쟁도 치열해졌다. 지난 7월 11일 배달앱으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더니 2500원어치 파이도 같이 왔다. 파이는 ‘리뷰 뇌물’이라고 쓰인 빨간 스티커가 붙은 포장지에 담겨 있었다. 배달앱에는 5000~6000원에 파는 음식도 리뷰 이벤트로 증정하는 가게도 보인다. ‘리뷰 조공’, ‘리뷰참여 서비스입니다!’, ‘뇌물, 맛있게 드시고 리뷰 달아주실 거죵?’, ‘소소한 뇌물입니다’, ‘이건 뇌물, 작은 성의입니다’, ‘포토 후기는 사랑입니다’라고 쓰인 스티커를 제작해 판매하는 업체도 생겼다.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배달 요청사항’. 별점 5개와 좋은 후기를 남길테니 초밥 4개를 더 달라는 내용이다. 이 영수증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소상공인은 “(요구한 서비스는) 7천원 금액의 초밥”이라고 설명했다. 보배드림 캡처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된 ‘배달 요청사항’. 별점 5개와 좋은 후기를 남길테니 초밥 4개를 더 달라는 내용이다. 이 영수증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한 소상공인은 “(요구한 서비스는) 7천원 금액의 초밥”이라고 설명했다. 보배드림 캡처

최근에는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 “리뷰 이벤트 때문에 배달 맛집 찾기가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비스의 대가로 작성된 리뷰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배달앱은 방관한다. 한 예로 배민이 가동하는 ‘클린 리뷰 시스템’은 리뷰 이벤트로 올라온 리뷰는 걸러내지 않는다. 신규가입을 했더니 배달앱 매니저가 2주 동안 리뷰 서비스를 하라고 권했다”(디저트 카페사장 D씨)는 이야기처럼 배달앱에선 리뷰 서비스를 넌지시 추천한다. 믿기 어려운 리뷰 양산을 부추기면서 자영업자의 부담을 늘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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