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하필 경기 이런 때에…빛나는 졸업장은 장기실업 알림장이 된다

2021.07.26 21:30 입력 2021.07.26 21:40 수정

(4)코로나 시국에 ‘졸업’을 한다는 것

하필 경기 이런 때에…빛나는 졸업장은 장기실업 알림장이 된다 [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작년·올해 대학·직업계고 졸업자
약 80만명…단기 일자리 전전 많아

한상희씨(가명)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보다는 일이 하고 싶었지만 얼어붙은 취업시장에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씨는 “주변에서 대부분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만 구하면 학교는 언제든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2020년과 2021년 대학 및 직업계고를 졸업한 ‘코로나19 졸업생’은 1년 미만 단기실업을 넘어 장기실업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이다. 1997년 외환위기 졸업생,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졸업생처럼 노동시장 진입이 유예되면서 장기적으로 낮은 임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함몰 세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졸업생이 장기실업으로 빠지지 않도록 이들을 위한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국공립과 사립 대학 졸업자는 32만4004명, 직업계고 졸업자는 8만9998명이다. 여기에 올해 졸업이 예정된 40만명가량을 포함하면 지난해와 올해 총 80만명대 청년이 경기침체기에 구직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코로나19 졸업생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지난해 직업계고를 졸업한 대다수 청년은 안정적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취업률은 50.7%였는데 취업에 성공한 학생 5명 중 1명 이상이 6개월 이내에 직장을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수 자체가 적었던 데다, 조기 취업해도 열악한 일자리를 견디지 못하고 경계청년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사장은 “대면 실무교육이 필수적인 특성화고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2020년도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통계청과 교육부에서 조사 중이다. 그간 구직단념자 수와 쉬었음 인구 등 비경제활동인구 청년층이 대폭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취업이 유예되거나 구직에 실패한 졸업생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필 경기 이런 때에…빛나는 졸업장은 장기실업 알림장이 된다 [기획 시리즈 ‘경계 청년’]

기업들 장기실업자 선호하지 않아
이후 졸업생들에 경쟁력 밀리기도

이력서 채울 교육 프로그램 제공 등
정부, 조기에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경기가 회복된 이후 코로나19 졸업생의 향후 몇년간 취업 동향은 과거 경기침체기에 졸업한 이들의 패턴을 닮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졸업생들의 취업상황을 다른 해 졸업생과 비교한 결과, 2009년 졸업생들이 졸업 후 6년 안에 상용직에 취업하는 비율이 더 낮았다고 밝혔다. 개발원은 “2020년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은 2009년 졸업생과 유사하게 장기적으로 낮은 노동시장 성과를 얻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졸업생들의 임금이 다른 해 졸업생보다 더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 온라인매체 복스는 교육통계청 자료를 인용해 2008년 졸업생의 2012년 기준 중위소득은 4만6000달러였는데 이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10년 전 25~34세의 중위소득보다 8%가량 낮다고 보도했다.

경기침체기 졸업생들은 경기가 회복된 이후 취업시장에 나오는 졸업생들에게 밀려 좋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기업들은 2~3년간 취업하지 않은 장기실업자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코로나19 졸업생들의 취업이 장기적으로 유예될 수 있는 이력효과가 예상된다면서 “기업에서 신규 인력에 대한 수요 자체가 없는데 정부가 기업의 연구·개발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신규 일자리 창출도 힘들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졸업생의 장기실업이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정부는 이들에 대한 별도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국민 전반에 취업지원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인데, 그 대상도 중위소득 기준으로 제한되고 지급액도 6개월간 월 50만원에 불과해 이들 졸업생의 장기실업을 막는 충분한 지원이 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졸업생들을 조기에 집중지원해 장기실업으로 가지 않게끔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들이 장기실업이나 장기 니트(NEET·교육 또는 직업훈련을 받지 않는 실업자)로 빠지지 않게끔 대학 4학년 혹은 마지막 학기에 전폭적으로 두껍게 지원해서 빠르게 취업에 나서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최소한 이력서에 쓸 만한 교육 프로그램 등이라도 지원해야 장기 백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특정 연령대 청년에게 조기 개입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2013년 도입한 청년보장(Youth Guarantee) 프로그램은 정규교육 종료 후 4개월 시점까지 미취업한 25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고용·교육·직업훈련 세 가지 중 하나를 정부가 보장해서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장기 니트로 빠지는 비율이 크게 줄고 청년 고용률도 크게 개선됐다. 현재 유럽 각국에서는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2020~2021년 졸업생 등을 위한 청년보장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내에선 제주도가 유럽의 청년보장 제도와 유사한 지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설립된 제주더큰내일센터는 매년 150명을 선발해 월 100만~150만원가량의 훈련수당과 고용·교육·직업훈련을 집중지원 중이다. 선발된 청년들은 6개월간 기본 취업교육을 받고 진로 모색 과정을 거쳐 인턴 및 취업을 한다. 김연경씨는 졸업 후 긴 공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제주더큰내일센터에 들어가 1년여간 교육기간을 거친 뒤 최근 제주도 내 플랫폼 업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졸업 후 막연하게 공무원과 공기업만 생각했는데 센터에서 일하면서 도내 스타트업 관련 일을 접하고 적성을 찾았다”며 “센터에서 받은 지원금 150만원과 다양한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재정상 이유로 전체 청년을 대상으로 이 같은 지원을 당장 도입하기 어렵다면 코로나19 졸업생만이라도 시급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3, 대학 4학년 등에 한정하면 인원 수가 많지 않기에 상담, 교육, 취업을 연계하는 집중지원이 가능하다”며 “이와 동시에 장기실업자들은 기존의 국민취업지원제도와 실업급여제도의 사각지대를 줄여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는 투트랙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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