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여성 노동자,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 덜 받고 근속연수도 4.3년 짧아

2021.08.06 08:54 입력 2021.08.06 10:21 수정
특별취재팀 | 송현숙 논설위원·오경민 사회부 기자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대기업 여성 노동자,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 덜 받고 근속연수도 4.3년 짧아

남녀 임금 격차, OECD국 중앙값 2.3배
여성이 남성의 절반 미만인 곳도 155곳
‘고용평등인덱스’ 의무 공개인 프랑스 등
선진국들, 기업 내 성차별 감독·제재

지난해 국내 상장사 여성 노동자는 남성보다 1562만원 적은 연봉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향신문이 5일 지난해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 2167개(유가증권시장 768개, 코스닥시장 1399개)가 금융감독원에 신고한 2020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임금(중앙값)은 3900만원으로 남성(5462만2464원)의 71.4%였다. 남녀 직원의 임금 격차를 뜻하는 ‘페이갭’은 28.6%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앙값 12.5%(2019년 기준)의 2.3배에 이른다. 페이갭이 50% 이상인 곳, 즉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절반이 안 되는 상장사도 155곳이었다. 239개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OECD 회원국 중앙값 12.5% 이상이었다. 전체 상장사의 88.8% 수준이다. 페이갭이 12.5% 미만인 기업이 239곳, 12.5% 이상 한국 중앙값 32.5% 미만인 곳은 1068곳, 32.5% 이상인 곳은 860곳이었다. 근속연수는 남녀 직원 각각 6.50년과 5.17년으로 남성 직원이 1.33년 길었다.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짧게 근무하고, 임금도 낮은 셈이다. 상장기업 전체 직원 중 여성 직원 비율은 23.9%로 4명 중 1명꼴이었다.

■여성 연봉 높은 곳, 1위 삼성전자·2위 네이버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대기업 여성 노동자,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 덜 받고 근속연수도 4.3년 짧아

대기업의 페이갭은 더욱 벌어졌다. 상장사 조사와는 별개로 경향신문이 따로 분석한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한국경영자총협회 선정, 사업보고서 제출 대상 91개사 분석)의 남성과 여성 임금 차는 35.7%였다. 여성은 5700만원을 받아 남성(8860만원)의 64.3%에 그쳤다. 여성이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을 덜 받은 것이다. 근속연수는 남성이 13.0년, 여성은 4.3년 짧은 8.7년이었다.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곳은 아시아나항공(58.0%)이었다. 100대 기업 중 페이갭이 OECD 회원국 중앙값인 12.5%보다 낮은 곳은 KT(12.2%) 한 곳뿐이었다. 페이갭이 50%대인 회사는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LG상사, 여천NCC, SK인천석유화학, 현대오일뱅크, SK종합화학 등 6곳이었다. 상장사 전체에서는 여성 임금이 남성 임금보다 높은 곳도 있었지만, 대기업은 예외 없이 남성의 임금이 높았다. 여성 직원 비율은 14.9%로 상장사(23.9%)보다 낮았다.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대기업의 남녀 격차가 큰 것이다.

여성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전자로 9800만원이었다. 그 뒤를 이은 네이버, SK텔레콤, 삼성SDS, KT 등 ‘연봉 톱5’ 중 삼성전자를 제외한 4곳이 모두 정보통신업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연봉 최하위는 아시아나항공(2900만원)으로 삼성전자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여성 비율과 근속연수 차이 등이 페이갭의 절대적인 요소라고 볼 수도 없었다. 여성이 더 많고 근속연수가 긴 기업에서도 여성에게 적은 임금을 지급하는 경향은 뚜렷했다. 롯데쇼핑, 아모레퍼시픽, 이마트, CJ ENM, LG생활건강, 아시아나항공, GS리테일 등 7개사는 여성 노동자가 절반이 넘지만, 이 중 아시아나항공과 GS리테일은 페이갭이 각각 58.0%, 45.3%나 됐다. 근속연수가 여성이 더 긴 6곳 중 3곳(LG상사·GS글로벌·포스코인터내셔널)에서도 페이갭이 40~50%대였다.

■성별 임금 감사·공시 체계 마련은 세계적 흐름

[유리천장 박살 프로젝트]대기업 여성 노동자, 남성보다 연봉 3160만원 덜 받고 근속연수도 4.3년 짧아

세계 각국은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려 다각도의 노력을 쏟고 있다. 기존 성별 임금 차별 금지 규정의 효과가 미흡하다는 판단으로, 좀 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법 개정과 제도 정비, 개선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2019년 평등법을 개정해 상시 250인 이상 사업장은 매년 정부가 운영하는 젠더 임금격차 서비스 홈페이지에 성별 임금격차와 임금 4분위별 남녀 비중 등 7개 항목을 게시하도록 의무화했다. 프랑스는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업 홈페이지를 통해 고용평등 인덱스를 공개하도록 했다. 고용평등 인덱스는 노동부가 성별 임금격차, 임금 상승 격차, 승진 차이, 출산휴가 복귀 후 임금이 상승된 노동자의 비율 등을 점수화한 것인데, 인덱스를 공표하지 않거나 시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총임금에 비례하는 벌칙을 부과한다. 스위스는 사업장의 남녀차별 방지를 목적으로 1995년 제정된 ‘남녀평등법’이 남녀 임금격차를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2018년 임금분포공시제의 운영방식을 새롭게 규정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다. 상시 100인 이상 노동자를 고용한 공공·민간 부문 사용자는 연방젠더평등처 프로그램을 통해 4년마다 동일임금분석을 실시하고, 감사를 거쳐 결과를 노동자에게 서면 통지해야 한다. 상장사들은 연차결산보고서에 동일임금분석 결과를 공표해야 한다. 독일은 500인 이상, 오스트리아는 151인 이상, 벨기에는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성별 임금격차를 상세히 분석한 임금분석 보고서를 작성해 노조나 직장평의회 등에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다.

공신력 있는 데이터 구축과 투명한 공개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데, 한국은 개별 기업이나 기관의 정보 공개에 인색하다. 1999년 금융감독원 출범 전부터 상장사 등을 대상으로 사업보고서 제출 때 기업별 성별 임금과 근속연수 등을 공시항목에 넣어 기재하도록 했지만, 성별 구분 없이 내거나 관련 정보를 누락해도 제재는 없다.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항이 아니라는 게 이유다. 실제로 경향신문이 상장사 페이갭을 분석한 결과 금액 단위를 지키지 않거나 근속연수, 임금통계 일부 등을 누락한 부실 공개가 많았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글로벌 투자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성별 정보는 매우 중요한데, 주요 공시사항이 아니라고 한다면 시대 흐름을 못 읽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블룸버그가 매년 성평등 증진에 기여한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성평등지수(Gender Equality Index)가 큰 관심을 모을 만큼 성평등은 기업 운영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고 있고, 돈의 흐름도 그 방향”이라며 “정부도 성별 공시에 좀 더 적극 개입해야 하고 허술한 공시 시스템을 방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진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평가팀장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같은 비재무 관련 정보들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며 “해외에선 비재무정보 공개 표준화 작업까지 추진 중인 만큼 우리도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반발이 심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미리 관련 공시 가이드를 구체적으로 지원하고 제대로 감독하는 것이 더 큰 미래비용을 치르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 명단 보는 법 - 상장회사 여성임원 0명은 흰색, 1명에서 50% 미만은 회색, 50% 이상은 검은색으로 표시했다. 기업 명 옆에는 페이갭 수준을 3가지 (양호☆, 보통○, 심각△)로 나눠 표시했다. 페이갭이 OECD 평균(12.5%)보다 작은 기업은 ☆, 12.5% 이상, 한국평균(32.5%) 미만인 곳은 ○, 32.5% 이상인 곳은 △이다.  ▶ 페이갭(Pay Gap) 산출 방법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2020년 사업보고서를 공개한 2326개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남녀 임금격차 실태를 조사했다. 임금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추정되거나 일부 자료를 누락한 기업, 직원이 전부 남성 또는 여성만 있는 기업 등 159개 기업은 제외했다. 사업분야별 직원을 성별로 합산하고 인원수로 나눠 구했다. 기간제 직원을 포함했고, OECD 방식대로 임금 중앙값(중위임금)을 기준으로 산출했다. 페이갭 = 남성임금-여성임금 / 남성임금 * 100 이미지 크게 보기

▶ 명단 보는 법 - 상장회사 여성임원 0명은 흰색, 1명에서 50% 미만은 회색, 50% 이상은 검은색으로 표시했다. 기업 명 옆에는 페이갭 수준을 3가지 (양호☆, 보통○, 심각△)로 나눠 표시했다. 페이갭이 OECD 평균(12.5%)보다 작은 기업은 ☆, 12.5% 이상, 한국평균(32.5%) 미만인 곳은 ○, 32.5% 이상인 곳은 △이다. ▶ 페이갭(Pay Gap) 산출 방법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2020년 사업보고서를 공개한 2326개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남녀 임금격차 실태를 조사했다. 임금이 잘못 기재된 것으로 추정되거나 일부 자료를 누락한 기업, 직원이 전부 남성 또는 여성만 있는 기업 등 159개 기업은 제외했다. 사업분야별 직원을 성별로 합산하고 인원수로 나눠 구했다. 기간제 직원을 포함했고, OECD 방식대로 임금 중앙값(중위임금)을 기준으로 산출했다. 페이갭 = 남성임금-여성임금 / 남성임금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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