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받아들일 준비, 돼 있습니까…예산은 태부족, 신분 불안·경제적 궁핍에 눈물짓는 그들

2021.08.25 16:24 입력 2021.08.25 17:41 수정

2014년 6월 대한민국으로 온 예멘인 출신 A씨(28)는 산재사고 이후 ‘출국기한유예 허가 통지서’에 기대 3개월마다 유예를 하며 살아야 했다. 한국디아코니아 측 제공

2014년 6월 대한민국으로 온 예멘인 출신 A씨(28)는 산재사고 이후 ‘출국기한유예 허가 통지서’에 기대 3개월마다 유예를 하며 살아야 했다. 한국디아코니아 측 제공

# 2014년 6월 예멘 출신 A씨(28)가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2010년 말 튀니지를 시작으로 중동 전역으로 확산된 ‘아랍의 봄’ 이후 예멘은 내전에 휩싸였고, 고교 졸업 후 한 매체에서 기자 일하던 A씨는 후티 반군을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를 썼다가 살해 협박에 시달렸다. 지속되는 살해 위협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예멘을 떠나 한국행을 택했다.

정치적 박해를 피해 선택한 한국에서의 삶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난민 심사에서 ‘불허’ 판정을 받았는데, 알아보니 심사 서류에는 그저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 온 것처럼 기재돼 있었다고 한다. 난민 심사 인터뷰에서 밝힌 자신의 이야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후 A씨는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고 6개월마다 갱신하며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 그러다 2017년 7월 경기 화성의 한 공장에서 왼손 손가락 4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사고 이후 일자리를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난민 지위로 인정받지 못한 데다 산재로 일을 하지 못하게 돼 외국인등록증도 갱신할 수 없었다. 2019년 6월 22일부터 ‘출국기한 유예 허가 통지서’라고 적힌 A4 용지 1장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그는 3개월마다 출입국 당국에서 출국 유예 조치를 받아야 했다. 지난해 5월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외국인등록증을 받아 사정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힘든 A시는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 예멘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지로 흩어진 예멘 난민들 중 500여명이 2018년 제주도로 입국했다. 그 중에는 징집을 거부하고 망명을 택한 B씨(32)도 있다. ‘총을 겨눠야 하는 일’은 B씨에게 고향을 등져야 할만큼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부인과의 생이별을 감수하고 한국행을 택한 B씨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난민 심사가 이뤄지기도 전에 일부터 시작했다.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에 어려움이 컸지만 양식장, 용접소, 방수업체 등 주어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인도적체류자’ 신분인 B씨는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해 가족을 한국으로 부를 수 없다. 올해 초 자궁암 수술을 한 부인 걱정이 가장 크다. B씨가 현재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푼이라도 아껴 고국에 보내주는 것뿐이다. 일자리를 옮길 때마다 ‘자격외 취업허가증’ 도장을 받기 위해 매번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 12만원은 큰 부담이다.

정치적·종교적 박해를 피해 대한민국을 찾은 난민들은 이중고를 겪는다. 우선 난민 지위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그래서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된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위험한 업무를 하다 다쳐서 일자리를 얻기 더욱 힘들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25일 아프가니스탄 현지인과 그 가족 380여명이 26일 한국에 입국한다고 밝혔다. 과연 우리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얼마나 돼 있을까.

‘무일푼’으로 온 그들에게는 우선 최소한의 경제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관련 예산은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난민과 관련해 편성된 예산은 24억6700만원으로, 정부의 총예산 513조5000억원의 0.0005%에 그쳤다. 최근 3년 간 난민 지원 예산은 2018년 19억9400만원에서 2019년 21억9200만원, 지난해 24억6700만원으로 조금씩 느는 추세이지만, 예산 절반 이상이 난민 심사 시 통역비나 조사관 활동비 등 ‘심사 지원’에 맞춰져 있다. 지난해 난민심사 역량강화 비용 5700만원이 새로 투입됐고, 통역비도 전년(9억5300만원)보다 17.9% 상승한 11억2400만원 편성됐다. 반면 난민들 손에 쥐어지는 생계비 지원은 현상 유지 수준이다. 2018년 8억1700만원에서 2019년 7억9200만원으로 삭감된 후 지난해 8억3900만원으로 회복된 정도다.

이상현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입국 초기 신청서를 받는 단계에서부터 집중적인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며 “현재는 처우 지원의 모든 면이 불충분한 수준으로, 난민 신청자들이 하루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쪽으로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1%에 불과하다. 100명 중 1명밖에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는 형편인데, 어렵게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도 제대로 된 정착금은 주어지지 않는다. 재정착난민제도를 통해 입국한 난민에 대해 주택 임차보증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보증금이 2년 뒤 국고로 회수된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도적체류자들의 현실은 더 열악하다. 당장 경제적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9년 발표한 <이주 인권가이드라인 모니터링 결과 보고회>의 ‘인도적체류자의 취업과 노동’ 연구에 따르면, ‘취업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32명 중 15명은 설치·정비·생산직에 종사했고, 10명은 미용·숙박·음식·청소 일을 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사업장에서 인도적체류자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짧은 체류 허가 기간으로 고용불안이 크다고 호소했다. 거짓 취업알선에 속은 경우도 있었다. 체류기간 연장을 원할 경우 내야 하는 수수료 6만원과 취업허가증 도장을 받는 데 필요한 수수료 12만원은 그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적정 노동시간이나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설치·정비·생산직과 건설·채굴직의 경우 대부분 주 6일 노동을 하고 있었다. 전체 여성 응답자 11명 중 10명은 시급이나 일급으로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난민인권센터의 한 변호사는 “인도적체류자들의 체류기간이 1년 혹은 그보다 짧다보니 지위가 불안정해 근로계약 체결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며 “불안정한 지위에서는 취업과 처우에서 부당함을 겪을 수밖에 없는 만큼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난민 지원 NGO인 한국디아코니아의 홍주민 대표는 “난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타국으로 온 이들로, 정부기관과 시민사회의 배려가 특별히 필요하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에 난민들이 왔을 때 긴급생활비를 지급하고 한국어 교육 등을 제공해 사회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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