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위 유일한 2000년대생 “내 의견 반영될 거란 건 착각이었다”

2021.09.01 21:03 입력 2021.09.01 21:04 수정

오연재는 왜 탄소중립위원직을 사퇴했나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 활동가는 지난 8월27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오연재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오 활동가는 지난 8월27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청소년기후행동 제공.

위원회 구성부터 불공평
산업계 충분히 확보하고
위험 직면한 노동계 등
기후위기 당사자 쏙 빠져

대통령 직속 기대와 달리
목소리 낼 기회도 귀한데
‘현재 시스템은 유지하자’
방향 정해놓고 의견 물어
미래세대 대변 불가능해

‘미래세대의 생존 보장.’ 국내 첫 기후위기대응법으로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의 첫 번째 기본원칙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은 현세대에게 더 크고, 따라서 현재 세대는 미래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법에 명시된 것이다.

오연재 기후활동가(사진)는 2002년 태어났다. 올해 20세가 된 ‘미래세대’인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청소년기후행동에서 환경운동을 해왔다. 그는 다른 미래세대들과 함께 기후위기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어디든 갔다.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를 했고, 헌법재판소에 정부의 미흡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으로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헌법소원을 넣었으며, 국회 앞 시위도 했다. 지난 5월29일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출범한 2050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 국제협력분과 민간위원으로도 참여했다. 그는 100명 가까이 되는 위원회에서 유일한 2000년대생이었다.

오 활동가는 지난달 27일 탄중위를 사퇴했다. 탄중위가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해 미래세대인 청소년의 의견도 듣겠다고 홍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사퇴 선언문에서 “기후위기 당사자들은 배제된 채, 정부와 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며 작동하는 거버넌스는 여전”했고, “그 결과 나온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처참”했다고 했다. 탄중위는 지난달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1·2·3안을 발표했는데, 이 중 3안만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인 ‘넷제로’안이다. 1·2안은 온실가스를 1870만~2540만t 배출한다.

오 활동가는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제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사퇴를 결정했다”고 했다. 합류 당시 “목소리를 낼 귀한 기회”라고 여겼던 탄중위 활동은 그에게 어떻게 실망감을 안겨준 것일까. 지난달 30·31일 이틀에 걸쳐 제주에 있는 오 활동가를 전화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오 활동가와의 일문일답.

- 탄중위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

“올해 2월 말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을 통해 추천이 들어왔다고 했고, 3월 초 국무조정실에서 민간위원으로 확정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 위원을 맡기까지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고민이 많았다. 이전까지 정부 위원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거나 목소리가 반영되는 자리로 생각되진 않았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도 귀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이기에, 더 영향력 있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2002년생인 제가 정부 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있는 것 자체가, 기존 논의의 틀을 깨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 현 탄중위 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후위기로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재난 위험에 노출되고, 식량·주거·빈곤·노동 등 사회적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 그런 영향을 더 오래, 더 많이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기후위기의 당사자다. 이런 당사자들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위원회 구성에서 이런 당사자들은 빠져 있었다. 산업계 인사들은 충분히 확보한 반면에 노동계와 농민의 참여는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논의 과정에서 많이 들었다고 했다. 현실과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현실과 타협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빨리 탄소중립을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과학자들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피부로도 느껴지고, 누군가는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현실론’ 속엔 ‘네가 잘 몰라서 그런다’ 같은 생각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등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탄중위가 발표한 시나리오 초안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

“매우 불충분하며, 재논의가 필요하다. 탄소중립이라는 단어로 구색만 맞추는 안이 1안과 2안이다. 탄중위 시나리오는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를 막대하게 배출한 사회구조는 그대로 둔 채, 불확실한 기술(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에너지 수요를 얼마나 줄일지는 담겨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자, 기후위기로 인한 최악의 영향을 받는 이들의 의견은 배제한 결과물이다. 이런 시나리오들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기후위기 대응 책임을 떠넘기고, 사회의 전환 과정 자체를 방해하는 일이다.”

- 사퇴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하나의 순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미래세대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의 주체’로 탄중위에 들어갔다. 하지만 위원직 하나를 맡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논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어느 정도 이미 정해진 방향’ 안에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는데, 그 방향은 ‘어떻게든 지금까지 탄소배출을 해온 사회 시스템은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정치 논리와 기업 이익에만 집중된 방향이었다. ‘탄소중립 포기, 기존 시스템 유지’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

- 그래도 남아서 의견을 관철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도 했을 것 같다.

“끝까지 버티지 않고 나오는 것이 혹시 나쁜 선례로 남아, 청소년이나 청년 당사자의 정책 참여 창구를 좁히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연 미래세대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인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 앞으로 기후활동은 어떻게 전개해 나갈 계획인가.

“청소년기후행동에서는 ‘기후시민의회’ 구성을 준비 중이다. 기후위기 당사자들이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부가 듣지 못한, 혹은 듣지 않는 각자의 이야기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이르면 9월 말쯤 출범시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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