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계는 무허가”···합법적으로 사지 내몰리는 노점상들

2021.10.26 14:34 입력 2021.10.26 14:53 수정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의 무허가 노점들이 철거된 자리에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 이두리 기자

2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의 무허가 노점들이 철거된 자리에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 이두리 기자

서울 중랑구 면목동 홈플러스 앞에는 허름한 분식 포장마차가 있다. 입소문을 타고 멀리에서도 손님들이 찾아오곤 한다. 이 자리는 곧 생활정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수년간 이곳에서 떡볶이를 팔아 온 사장 A씨는 “이건 내 목숨 끊는 일이나 마찬가지”라면서도 “몇십 년 동안 불법으로 장사했는데, 빼 달라고 하면 빼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도시의 ‘비공식적’ 존재인 무허가 노점들은 지자체나 기업의 철거 권고에 대항할 논리가 없다.

서울시가 2019년부터 ‘거리가게 허가제’를 통해 일부 노점들에 도로점용을 허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노점들은 무허가 상태로 남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서울시의 전체 노점 5873개 중 허가받은 노점은 1913개이다. 약 67%에 달하는 무허가 노점은 도로점용료를 내는 대신 가게 면적에 따라 주기적으로 도로법 위반 과태료를 지불한다. 과태료 납부 주기와 그 금액은 매번 다르다. 서울시 관계자는 “허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가게들도 많고, 거리가게를 제도권 안으로 들일 때 여러 갈등이 발생할 수 있어 정책적으로 무허가 거리가게를 유지하는 자치구도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 재건축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거리 미관을 해치는 무허가 노점을 철거해 달라는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 광진구 강변역 인근에는 20여년 전부터 떡볶이와 닭꼬치 등을 파는 노점 거리가 형성돼 있지만, 동서울터미널 재건축이 확정되면서 노점상들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광진구 민원 게시판은 물론 공식 유튜브 채널 댓글에도 노점 철거 민원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 곳에서 분식 노점을 운영 중인 B씨(46)는 “음식 위생은 구청에서 규정하는 대로 다 지키고 있는 데도 무조건 불법이라는 얘기만 한다”며 “한 자리에서 몇십 년을 장사했는데 동서울터미널 공사 얘기가 있고 나서 천막이 지저분하다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 닭강정 노점을 운영하는 C씨(60대)는 “이 나이에 다른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생존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서도 “우린 불법으로 하고 있어서 단속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광진구 관계자는 “무허가라 해도 관행적으로 영업하고 있는 노점들이라 철거하기보다는 최대한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잡화점과 포장마차로 북적였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일대는 이제 하얀 가림막으로 채워졌다. 동대문구는 지난 8월 행정대집행 사전계고를 실시해 해당 지역 노점 운영자들의 자진 철거 및 정비를 유도했고, 현재 대부분의 무허가 노점들이 철거된 상태다. 이곳에는 롯데캐슬이 들어서기 위해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청량리역 앞에서 2003년부터 동안 포장마차를 운영해 온 방모씨도 얼마 전 가게를 철거했다. 방씨는 “과태료 물면서 장사했던지라 자진 철거했지만, 20년 동안 이곳에서 노점을 했는데 앞으로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점 운영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도로점용허가가 취소된다. 자식이나 부모가 노점을 승계할 수 없도록 돼 있는 것이다. 또한 운영자의 소득과 자산이 일정액 이하인 경우에만 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조항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이 가이드라인이 “노점은 반드시 가난해야 하고, 최소한의 생계만을 유지해야 한다는 통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거리가게 허가제가 노점의 양성화를 빌미로 노점 영업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품목 제한, 업종 변경 불가 등 현재 노점상들의 실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규정들이 많아 허가 신청 자체를 하지 않는 노점상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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