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이 멈췄다’…‘요소수 대란’ 벼랑 끝에 선 화물차 기사들

2021.11.05 21:10 입력 2021.11.05 21:11 수정

일 못 나가 매달 차량 할부금 걱정

“선거보다 민생 문제부터 해결을”

주유소는 ‘품절’ 알려도 잇단 문의

인터넷에선 허위 매물 사기 빈발

운행 기다리는 화물차들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5일 화물차들이 서 있다. 최근 중국이 경유차량에 필수로 들어가는 ‘요소수’의 원자재인 요소 수출을 제한하면서 요소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운행 기다리는 화물차들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에 5일 화물차들이 서 있다. 최근 중국이 경유차량에 필수로 들어가는 ‘요소수’의 원자재인 요소 수출을 제한하면서 요소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수빈 기자 subinhann@kyunghyang.com

“어? 시동이 걸려 있네!” “정말?”

5일 오전 기자와 함께 서울 양천구 서부트럭터미널 주차장을 걷던 터미널 시설관리팀 직원 서종현씨(65)와 화물차 기사 A씨는 초록색 준대형 볼보 트레일러 앞을 지나다 깜짝 놀라서 멈춰섰다. 운전기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이 트레일러는 그르렁 소리를 내며 몸을 덥히고 있었다. 이른바 ‘요소수 대란’이 벌어진 최근 며칠 동안 이곳에 세워져 있던 차였다. “(요소수를) 어디서 구했나?” “일 나가려나 보다.” 서씨와 A씨도 순간 들떴다. 이내 A씨는 옆에 있는 회색 대우 트럭의 요소수 탱크 눈금을 가리켰다. 눈금은 바닥에 있었다. 이 주차장에 서 있는 트럭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동이 걸려 있던 초록색 볼보 트레일러도 일을 나가지 못했다. 10여분 후 도착한 7년차 화물기사 한모씨(46)는 배터리 방전 등 이상이 생길 수 있어서 하루 10분 정도는 차량 엔진에 시동을 건다고 했다. 평소 요소수를 몇 통 쟁여두는 편이라서 시동이라도 걸긴 했지만 지금 들어간 요소수가 그에게도 마지막 남은 한 통이었다. 닷새째 운행을 못해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매달 차량 할부금까지 내야 하는 한씨는 걱정이 컸다.

“정치권이 선거에만 신경쓸 게 아니라 이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줘야죠. 공사 현장부터 물류까지 연쇄적으로 멈출 수 있어요.”

디젤차량 운행과 각종 중장비 가동에 필수적인 요소수가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물류 현장이 멈춰서고 있다. 요소수 주 수입처인 중국에서 수출을 잠정 중단하면서 대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국내에도 요소수 생산 공장이 있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디젤차량에서 나오는 배출가스를 줄여 주는 요소수는 2015년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 이후 디젤을 이용하는 차량과 중장비 등에 사용이 의무화됐다. 요소수가 없으면 차량 출력이 줄고 나중에는 시동조차 걸리지 않게 된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물류 현장 노동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전날 전북 군산시에서 올라왔다는 화물차 기사 이종복씨(64)는 “요소수 때문에 운행이 안 돼 미세먼지 저감장치를 풀어서 다니는 차들도 있는데, 그러면 위험하다. 고장이 날 수도 있고 차에 무리가 간다”며 “가장 목마른 사람은 화물차 기사들이다. 한 달 안에 물류 절반이 멈춰설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래된 차량이라 요소수가 필요치 않아 운행이 가능했다는 이씨는 평소보다 일당을 10만원 더 받긴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유소에도 요소수를 구하려는 행렬이 늘어섰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한 주유소는 ‘품절’ 두 글자를 큼지막하게 출력해 안내판에 붙였다. 주유소 직원 조모씨(49)는 “요소수 있냐는 전화가 하루에 20~30통씩 오고, 직접 와서 물어보는 사람도 그 정도 된다”고 했다. 인근에 있는 다른 주유소 사무실에는 화물차 회사가 ‘요소수가 들어오면 알려달라’며 남기고 간 명함이 붙어 있었다.

마음이 급한 이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50대 여성 B씨는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에서 요소수를 구매하려다 사기 피해를 입었다. 온라인상에 피해 사실을 올렸더니 “나도 사기를 당했다”고 B씨에게 연락해 온 사람만 6명에 이르렀다.

이번 요소수 파동은 특히 물류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 건설 자재·산업용 물품 수송 등으로 한창때는 하루에 1200대의 트럭이 오갔다는 서부트럭터미널의 물동량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불경기로 하루 500여대 선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요소수 파동 이후 그마저도 30~40%가량 더 줄어들게 됐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지난 1일 성명에서 “요소수 품귀 현상에 따른 손실은 화물노동자 개인의 빚과 생계 곤란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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