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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그래도 인권위”…인권이 기댈 제도적 언덕

2021.11.18 06:00 입력 2021.11.18 09:32 수정

2001년 1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다. 진정 접수 첫날인 26일부터 인권위에는 진정을 제기하려는 시민들이 밀려들었다. ‘제1호’ 사건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보건소장 임명에서 배제된 이희원씨에 대한 차별 진정이었다. 제자인 이씨를 대신해 진정서를 제출한 김용익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는 당일 오전 6시30분에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가 설립 첫해 36일 만에 803건의 진정이 접수됐다.

인권을 향한 시민의 열망은 뜨거웠지만 인권위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인권위원 11명과 인권위설립준비기획단 직원 27명으로 꾸려진 소규모 인력으로 업무가 시작됐다. 당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는 ‘작은 정부’를 내걸며 인권위의 인력지원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 산하 특수법인 형태로 ‘국민인권위원회’를 설치하려고 했다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권위가 문을 열었지만 인권 침해를 조사할 권한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2001년 11월26일 인권위 진정 접수 첫날 상담을 하러 온 민원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권위 제공

2001년 11월26일 인권위 진정 접수 첫날 상담을 하러 온 민원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권위 제공

■“인권위에서 나왔다”…경찰 방패에 찍힌 직원

2001년부터 2020년까지 접수된 경찰 관련 진정사건은 2만2406건으로 총 접수 건수(11만4628건)의 19.5%에 달한다. 인권위 출범 초기 경찰 관련 사건은 주로 ‘물리적 폭력’에 따른 인권 침해였다.

2002년 7월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두 중학생 신효순·심미선양의 49재 집회가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새내기 인권 조사관이었던 신홍주씨(55)도 집회 현장에 있었다. 집회는 격렬했다. 저지선을 뚫으려는 참가자들과 방어하는 경찰이 충돌했다. 경찰은 방패로 집회 참가자들을 폭행했다. 이를 말리던 신씨도 경찰 방패에 머리를 찍혔다. 신씨는 거듭 ‘인권위에서 나왔다’고 신분을 밝혔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맞고 나니까 정신 없더군요. 저를 때린 경찰은 순식간에 뒤로 빠졌어요.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3년 뒤인 2005년 11월, 쌀 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강경 진압으로 맞섰고, 농민 2명이 숨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조사 끝에 두 농민의 사망 원인이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경찰청장은 사퇴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수사 과정에서도 폭력은 빈번히 발생했다. 2010년 6월 경찰관이 범행을 자백하라며 피의자 입에 재갈을 물리고 스카치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후 폭행했다는 진정이 접수됐다.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었다. 인권위는 경찰관 5명을 검찰에 고발 및 수사의뢰하고 경찰청장에게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검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2년 10월26일 서울지검에서 수사받던 피의자가 고문과 가혹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권위는 직권조사를 벌여 피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그 여파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고, 서울지검 강력부 조사실은 폐쇄됐다. 인권위는 검찰 수사관 10명을 검찰에 고발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그때까지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긴급체포 제도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매년 인권위에 접수되는 검찰 관련 진정사건은 평균 200여건이다. 인권위 창립 이후 작년까지 접수된 검찰 관련 진정사건은 3286건으로 전체 접수 사건의 2.9%에 달한다. ‘불리한 진술 강요, 심야·장시간 조사, 편파·부당수사’(1069건, 32.7%)와 ‘폭언·욕설 등 인격권 침해’(629건, 19.1%)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인권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개선되면서 경찰과 검찰의 물리적 폭력은 전보다 감소했다. 특히 경찰의 경우 인권 침해 진정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물리적 폭력 사건 비중이 지난해에는 18%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수사 절차 위반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다. 수사기관의 인권 침해 사건을 담당해온 인권위 관계자는 “고문이나 감금, 폭행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인권 침해는 줄었지만 수사 과정에서의 내밀한 인권 침해가 계속되고 있다”며 “공권력의 폭력은 잡초와 같다. 뿌리를 뽑은 듯 보여도 없어진 것은 아니다. 늘 감시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05년 12월19일 인권위가 농민시위 사망 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인권위 제공

2005년 12월19일 인권위가 농민시위 사망 사건에 대한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다. 인권위 제공

■“이라크 전쟁 반대”…인권위가 밝힌 소신

인권위가 국가기관의 인권 침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려면 독립적인 지위에 있어야 한다. 정부 정책은 언제든지 평화·인권·반전을 고수하는 인권위의 대원칙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종속된 인권위는 온전히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2003년 3월26일 인권위는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우리는 이라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라크의 정치·사회적 문제가 군사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반대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국가원수 자격으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터였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인권위를 비난했다. 한국군 파병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황에서 인권위가 부적절한 의견 표명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청와대 인사들도 “어떻게 사전에 언질조차 주지 않을 수 있느냐”며 인권위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인권위에 힘을 실어줬다. 인권위 입장 표명 다음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인권위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든 곳”이라며 “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인권위 고유 업무”라고 했다. 그해 12월 열린 세계인권선언 제55주년 기념식에서는 “인권위의 주장과 정부의 주장이 부닥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현상”이라며 거듭 인권위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인권위는 여러 사안에서 정부와 다른 의견을 냈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도입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인정,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개최와 관련해서도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인권위의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사형제 폐지 권고도 이 시기에 나왔다. 2006년 전국 법학교수 119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가장 잘한 일로 ‘사형제 폐지 권고(17.4%)’를 꼽았다. 인권위는 2003년 인권현안 10대 과제 중 하나로 사형제 폐지를 선정한 후 2005년 사형제 폐지 의견 표명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일관되게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2005년 7월28일 인권위의 화성 외국인보호소 현장 조사. 인권위 제공

2005년 7월28일 인권위의 화성 외국인보호소 현장 조사. 인권위 제공

■보복성 조직개편…목소리 사라진 인권위

정권이 바뀐 뒤 인권위의 독립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이듬해인 2008년 인권위에 ‘장애로 인한 차별’ 진정이 2배 이상 늘었다. 업무량은 늘었지만 행정안전부는 ‘인권위가 다른 기관에 비해서 조직과 인력을 과다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인력 감축을 요구했다.

인권위에 대한 정부의 ‘보복성 조직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인권위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보고 책임자 징계를 권고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국정운영에 큰 타격을 준 집회에 인권위가 힘을 실어준 것으로 받아들였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주년을 맞아 ‘모든 공공건물에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발효되기 11일 전인 2009년 3월30일, 인권위 조직 축소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인권위 직원들 중 정규직 공무원이 아닌 별정·계약직 39명이 해고됐다.

2011년 인권위는 출범 10주년을 씁쓸하게 맞았다.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10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위원장) 사퇴하라”라는 구호가 들려왔다. 이후 굵직한 인권 이슈가 발생해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몰락의 단초가 된 ‘세월호 참사’도 예외는 아니였다. 진도 팽목항에서의 유가족 인권 침해 논란, 경찰의 유족 사찰 논란, 참사 피해자 가족의 단식농성과 세월호참사특별법 이슈에 대해 인권위는 직권조사나 정책권고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렇다 할 의견 표명도 없었다.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 후 참여연대는 “(경찰이) 추모하는 시민들과 유족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리고 물대포를 직사하고 무작위 연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사라지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았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국가인권위바로세우기긴급행동 소속 회원들이 2012년 7월23일 서울 중구 무교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국가인권위바로세우기긴급행동 소속 회원들이 2012년 7월23일 서울 중구 무교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인권위 부활과 ‘미투 운동’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인권위는 다시 전환점을 맞았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인권위 위상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인권위원장의 청와대 특별보고를 정례적으로 실시하도록 했다. 또 각 정부부처의 인권위 권고 수용 상황을 점검하고 수용률을 제고하도록 했다.

2017년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미투(#MeToo)’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차별 관련 진정이 눈에 띄게 늘었다. 성희롱 진정사건은 2010년 초반만 해도 200건을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지만 2017년 299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인권위 축소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투가 확산하는 상황인데도 젠더 이슈는 차별조사과에서 군 인권 문제 등 다른 이슈들과 뭉뚱그려져 처리됐다.

2018년 7월이 돼서야 성차별시정팀이 신설됐다. 젠더 이슈가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된 것이다. 최혜령 성차별시정팀장은 “인권위 권한 강화와 미투 이후 진정 건수가 30~40% 가량 늘어났는데 조사할 수 있는 인원은 그대로여서 접수된 진정이 적체돼 있었다”며 “소규모로 시작한 성차별시정팀이 정상화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고 말했다.

인권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 출범은 인권위에 기회이자 위기였다. 2017년 6월 전국공무원노조 국가인권위원회지부 주최로 열린 ‘국가인권위원회,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정권교체로 국가가 ‘정상화’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인권위에 유리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불리하다. 다른 국가기구가 정상화할수록 인권위가 매을 ‘틈새’가 작아지고 그 틈새를 정교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인권위는 무용한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반짝했던 인권위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며 다시 주춤하는 모양새다. 2017년 크게 늘었던 진정 건수는 다시 이전과 비슷한, 혹은 낮은 수준으로 돌아갔다. 인권위 관계자는 “청와대가 인력과 예산을 보강하고 권한도 줬으면 좋았을 텐데, 내부적으로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기대치만 높아지면서 인권위가 그 기대치를 감당할 역량이 안 됐다”고 말했다.

2019년 11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2019년 11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 회원들이 ‘동성혼, 파트너십 권리를 위한 성소수자 집단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감염병과 개인정보…새 인권 담론의 등장

민주주의 발전으로 시민들의 인권의식도 성숙해졌다. 시민들은 환경·정보기술(IT)·개인정보 등 새로운 분야도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시민들은 방역만큼이나 개인정보의 가치를 중시했다. 확진 환자의 상세한 동선이 공개되자 정부의 방역 지침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방역과 인권이 충돌하자 인권위는 정부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지난해 3월 인권위원장은 “코로나19 확진 환자 개인별로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환자들의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 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올해 10월에는 코로나19 확진 뒤 이태원 클럽 방문 사실이 공개된 남성에 대해 “인격권과 명예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됐다”며 방역을 이유로 행해진 인권 침해에 대해 재차 우려의 뜻을 밝혔다.

지난 20년 간 인권위는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인권위의 지난 20년은 여러 우여곡절과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권위가 있어 한국의 인권 담론이 이 정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인권이 기댈 수 있는 중요한 제도적 언덕이 생긴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평가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성수 교수는 “2021년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거의 전통적인 인권 의제들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 동시에 새로운 의제들이 많이 생겨났다”면서 “인권위가 예전과 비교해 안정화됐지만, (국가보안법이나 이라크 파병 등에 반대하던) 예전만큼의 패기가 과연 있는가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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