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15% 감액은 사실…서울시 “내년 일부 기관 ‘등록제’ 전환 가정한 것”
교육청 등록조건 까다롭고 지원액 작으면 ‘서울형’ 잔류…결국 예산 문제로
서울지역 대안학교 교사와 학생, 대안교육 관계자들이 지나달 23일 서울시청 앞에 섰다. 이들은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가 2022년도 대안학교 지원 예산을 15% 삭감했으며, 서울형 신고제 예산을 ‘0’원으로 책정해 ‘서울형 대안교육기관’ 진입을 준비해온 나머지 대안교육기관의 ‘서울형’ 전환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시장이 바뀌면서 서울시가 해온 각종 ‘학교 밖 청소년’ 지원정책이 축소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1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시가 올해 예산 대비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예산을 15% 감액한 것은 사실이었다. 서울시 평생교육국 청소년정책과는 2022년 서울시 대안교육기관 지원예산을 121억2782만1000원으로 책정했다. 2021년도 예산(92억6829만9000원)보다 28억5952만2000원 증액한 금액이다. 이는 서울시에 등록된 14개 ‘지원형 대안교육기관’이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으로 전환될 것을 예상하고 책정한 액수다. 서울시는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지 않는 84개 비인가 대안교육기관 중 31곳을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으로 지정해 지원하고 있으며, 지원형 14곳과 신고형 13곳 등 총 58곳에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청소년정책과가 제출한 내년도 요구액은 그러나 기획조정실 예산담당관을 거치면서 78억127만8000원으로 크게 줄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인가대안교육기관지원액은 당초 110억1650만원에서 64억8000만원으로 절반 가까이 삭감됐다. 예산의 증감만으로 판단할 경우 서울지역대안교육기관협의회의 주장에 틀린 부분은 없다.
다만 여기에는 내년 1월13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제정은 지난 20여 년간 ‘학교’라는 명칭을 쓸 수 없었던 대안교육기관이 ‘학교’로 불릴 수 있는 법적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앞서 많은 대안교육기관이 ‘학교’라는 명칭을 썼다는 이유로 기소되고,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또 기존의 ‘인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그동안 비인가로 운영돼 온 대다수의 대안교육기관들이 등록만 하면 ‘등록 대안교육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등록 대안교육기관에 다니는 학생들은 ‘초·중등교육법’이 명시한 ‘취학의무’의 유예도 가능하다.(물론 학력인정을 받으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대안교육기관 등록제’
문제는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비인가 대안교육기관들이 ‘등록 대안학교’로 전환할 것이냐는 점이다. 등록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교육청이다.
수많은 대안교육기관들이 비인가상태에 머문 이유는 교육청 인가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교육청은 인가 조건을 까다롭게 만들어 대안교육이 사실상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진입장벽을 만들어왔다. 교육청 인가를 받으려면 물적조건으로 운동장과 담보가 설정되지 않은 건물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교사의 70%가 교원자격증 소지자여야 한다. 또 국어·사회 등 의무교육에서 진행하는 수업의 50% 수준을 교육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붙는다. 그래서 대안교육기관 운영취지와 현실적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인가기준이라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됐다.
등록제로 바뀌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교육계 내부의 생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계 관계자는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 제정 후속절차로 서울시교육청이 현재 조례제정 작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서울시가 요구하는 ‘서울형 대안학교’ 전환 요건보다도 훨씬 까다롭게 등록요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경우 누가 ‘서울형’을 버리고 등록제로 전환하려 하겠나”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등록 대안교육기관이 돼도 교육청으로부터 서울시가 지원하는 수준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총 44개 대안교육기관에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이중 90%인 40곳이 ‘위탁형 대안교육기관’이다. 사실상 학교로 운영되는 곳에만 재정지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교육청 지원을 받는 인가 대안교육기관은 4곳에 불과하다. 인가제보다 허가기준이 낮은 등록제 하에서 교육청이 등록 대안교육기관에 재정지원을 할 가능성은 낮다. 서울시는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에는 연간 1억8000여 만원을 지원한다. 여기에는 친환경급식지원비, 교사인건비, 외부활동비 등이 포함된다. 지원형 대안교육기관은 연간 1억1000여 만원을 받는다.
재정지원 근거 미비는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이 가진 맹점이기도 하다. 당초 법안이 발의될 당시에는 국가의 재정지원 조항이 있었지만 해당 조항은 국회 법사위를 거치면서 삭제됐다. 법률에도 없는 재정지원을 교육청이 조례에 일부러 넣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교육계의 판단이기도 하다.
■“누가 서울시 지원을 버리고 등록제로 가겠나”
서울시는 시의 재정지원을 받아온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이 등록기관으로 전환될 경우 기존 재정지원을 중단한다는 입장이다. 지방자치법 제 9조 2항 제2호의 라목은 ‘노인·아동·심신장애인·청소년 및 여성의 보호와 복지증진’을 지자체 사무로 정하고 있다. ‘서울시 학교밖 청소년 지원조례’와 ‘서울시 대안교육기관 지원조례’는 이 조항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즉 학교밖 청소년 및 대안교육기관 재학생들에 대한 지원은 해당 지원이 ‘복지’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면담에서 “기존 비인가대안교육기관이 등록제로 전환되면 교육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이다. 등록 대안교육기관은 서울시교육청이 지원하는 것이 맞다”면서 “등록 대안교육기관에 동일한 재정지원을 하게 되면 지방자치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예산 15% 삭감’은 서울 대안교육기관 중 일부가 ‘등록제’로 전환될 것을 가정한 결과라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온 대안교육기관이 재정지원이 불투명한 등록제로 넘어갈 가능성은 낮다. 등록 대안교육기관으로 전환했을 때의 실익도 크지 않다.
현재 서울형으로 지정된 31개를 제외한 나머지 27개(지원형·신고형)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지원은 2022년이면 끝나는 한시적 지원이다. 27개 대안교육기관은 내년까지 서울형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재정지원이 중단된다. 서울지역대안교육기관협의회가 우려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서울시의 예산안을 놓고 봤을 때 서울형 대안교육기관은 기존 31개에서 추가될 가능성이 없고, 기존 지원 역시 줄어드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그러나 “지원이 끊기거나 줄어들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까지 서울형으로 전환하지 않은 27개 대안교육기관에 대한 컨설팅 작업을 마무리 했고, 그 결과 2곳을 제외한 25곳은 서울형 전환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면서 “결격사유가 있는 2곳을 제외한 나머지 25개 지원형·신고형 대안교육기관은 모두 순차적으로 서울형으로 전환해 계속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58개 대안교육기관이 모두 등록제로 전환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58개를 모두 안고 갈 계획”이라고도 말했다. 현재의 삭감된 예산 역시 추경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다만 모든 것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이 정도의 확답만으로는 서울 대안교육기관의 불안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예산은 깎기는 쉬워도 늘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