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보조기’ 쓰고…영화 볼 권리 찾은 장애인들

2021.12.02 21:15 입력 2021.12.02 21:16 수정

법원 “관람권 보장” 명령에

국내 3대 상영관 시연회 가져

다른 관객은 못 보고 못 들어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시연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시연회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화면해설 및 자막제공 보조기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시연 시·청각장애인 영화관람 보조기술시연회가 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이 화면해설 및 자막제공 보조기기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열단 단원들이 경성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밀정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일제 경찰들이 뒤를 쫓는다. 비좁은 기차에서 벌어지는 조용한 추격 장면에 몰입감을 더하는 음악이 입혀졌다. 영화 <밀정>의 이 ‘기차신’은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러나 시각·청각 장애인들은 그동안 충분히 이 영화를 즐길 수 없었다.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관에서 이 영화가 짧게 상영되는 동안 스마트폰에선 음성을 통한 화면 해설이 흘러나왔다. 시각장애인들도 의열단원을 찾는 일제 경찰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다. 청각장애인은 안경 형태의 장치를 착용하면 ‘무섭고 긴장되는 음악’과 의열단원의 긴장된 목소리를 자막으로 볼 수 있다.

최근 서울고법 민사합의5부(재판장 설범식 부장판사)가 국내 3대 복합상영관 사업자(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에 시각·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제공하라고 한 화면 해설 및 자막 제공 보조기기가 실제 어떻게 작동되는지 이날 시연회가 열렸다. 재판부는 지난달 25일 전체 상영관 좌석 수가 300석을 넘을 경우 1개 이상의 상영관에서 전체 상영 횟수의 3%에 해당하는 범위에서 “원고들이 관람하고자 하는 영화를 제작사, 배급사, 영화진흥위원회 등으로부터 화면 해설 또는 자막을 받아 제공하라”고 주문했다.

자막이나 화면 해설을 스피커 또는 스크린을 통해 제공하는 개방형과 개별 보조기기를 통해 제공하는 폐쇄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선보인 것은 폐쇄형 보조기기다. 다른 관객에게는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다. 보조기기 사용자에게만 보이고, 들린다. 재판부는 상영관당 음성·자막 보조기기를 최소 2개 이상 구비하도록 했다. 보조기기를 개발한 유진희 한아미디어 대표는 “베터리 성능이 충분한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용해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장애인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오히려 수익적으로도 사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측 대리인단에서 활동하는 김재왕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이다. 김 변호사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려면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로 한 것만 봐야 했다”며 “이런 폐쇄형 보조기기가 도입되면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원고 측 대리인단은 모든 상영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 최소 2개의 보조기기만 구비하면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법원 판결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2016년 시작한 소송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폐쇄형 보조기기 제공을 명령한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 상고를 포기하면 더 빨리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상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다. 물론 이들이 상고하지 않더라도 업체 측이 상고하면 대법원까지 가야 결론이 난다.

김 변호사는 “올해 초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모든 뉴스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장애인들은 이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며 “결국 대화에 끼지 못해 소외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곳에서 이렇게 차별적으로 사회 참여가 제한되는 요소들은 고쳐야 한다. 장애인 복지 같은 문제가 아니다. 영화를 보는 건 하나의 권리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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