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중심 에너지 정책에 묻힌 지역 주민들의 삶

2022.01.06 06:00 입력 2022.01.07 11:16 수정

당신의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남 무안군의 농지에 태양광 설비가 대규모로 설치돼 있다. 일조량이 많고 평평한 전남의 농지에는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많이 몰린다. 법 개정으로 염해 판정을 받은 농지에는 태양광설비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권도현 기자

전남 무안군의 농지에 태양광 설비가 대규모로 설치돼 있다. 일조량이 많고 평평한 전남의 농지에는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이 많이 몰린다. 법 개정으로 염해 판정을 받은 농지에는 태양광설비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권도현 기자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②]중앙 중심 에너지 정책에 묻힌 지역 주민들의 삶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를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층 아파트를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고, 부엌에서 전자레인지를 쓰고, 밤에도 환한 거리를 걷는 도시의 일상은 전기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아 아무도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도시엔 언제나 충분한 전기가 공급돼 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은 전기를 많이 쓰지만, 생산은 거의 하지 않는다. 대도시들에서 쓰는 이 많은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에너지 전환은 ‘탄소중립’의 핵심이다. 현재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그동안 에너지 전환 문제는 석탄에서 태양광, 풍력으로의 전환 등 ‘발전원의 변화’에만 국한돼 다뤄졌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원의 전환뿐 아니라 새로운 발전원이 어느 지역에 들어서는지, 그 과정은 적절한지, 생산된 전기는 누가 사용하게 되는지까지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를 넘어, 사회 체제를 재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신년기획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 2화 ‘당신의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서는 지금까지의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을 살펴본다.

■농사짓는 땅에 발전소, 농민들의 분노

에너지 전환, 발전원 변화에 국한
어디에 어떻게는 논의에서 빠져

해 잘 들고 넓고 평평한 전남으로
태양광 발전 외지 사업자들 몰려
임차료 내며 농사짓던 농민들
본인 뜻과 상관없이 생업 그만둬
탈농촌 가속·도농 격차 심화 우려

전남 무안군에 사는 이덕한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을 때 태양광 발전기와 소형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려 했다. “앞으로는 에너지 자립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했죠. 바람 불면 풍력 쓰고, 햇빛 날 때는 태양광 쓰려고요.” 결국 비용 문제로 포기하긴 했지만, 집을 지으며 그런 고민을 할 만큼 그는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 이씨가 지금은 마을의 ‘태양광·풍력 반대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왜 재생에너지 반대 활동을 하게 됐을까. 마을 주민들의 생계 수단인 농지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씨의 집에서 걸어서 5분쯤 떨어진 논을 찾았다. 추수가 끝난 논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갈대들이 무성했다. 갈대 뒤편으로 가자 대규모로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이 보였다. “2020년 2월부터 공사가 시작돼 5월에 다 들어왔어요. 원래 저 땅에서도 동네 사람들이 벼농사를 짓고 그랬죠. 자기 땅은 아니었지만요.”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땅 주인이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에게 땅을 임대해주면서 농사를 못 짓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요즘 전남 지역 곳곳에 흔하다. 정부가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전남의 농촌에는 발전 사업자들이 간이사무소를 차려놓고 발전소 부지를 보러 다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용하던 마을에 갑자기 외지인들이 들어와 땅을 보러 다니자, 농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에 농민들은 연대하기 시작했다. 전남 22개 시·군 중 17곳에 태양광 반대 대책위가 꾸려졌다.

평생 농사를 지은 이씨는 마을에서 몇 안 되는 자기 땅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바로 옆 논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며 농사를 못 짓게 된 것을 보고 ‘땅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어제까지 내가 농사지었던 땅, 오늘 내놓으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해요. 농민들한테 농지를 뺏는다는 건, 죽으라는 얘기밖에 안 돼요.”

전남 무안군에 사는 농민 이덕한씨가 자신의 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남 무안군에 사는 농민 이덕한씨가 자신의 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전남 해남군의 혈도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던 김영준·이병연씨도 3년 전 그런 상황을 겪었다. 두 사람은 2006년부터 이곳에서 벼농사를 지었는데, 재생에너지 복합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농지 임대 계약이 종료됐다. 한국남동발전은 583만3742㎡(약 176만평) 넓이의 혈도 간척지에 송전선로와 변전소 등을 포함한 약 340㎿급 용량의 태양광 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이씨는 지금 다른 마을에서 벼농사를 짓고, 김씨는 밭농사만 짓는다. 김씨는 “소득의 3분의 2가 벼농사에서 나왔는데, 지금은 밭농사만 하니까 소득이 3분의 1로 줄었다”고 했다.

농지가 태양광 발전소로 바뀌면서 농민들을 힘들게 하는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놀고 있는 ‘억 단위 농기계들’이다. “농촌은 인력이 없잖아요. 모 심으려면 모 심는 기계가 필요하고, 논 관리하려면 트랙터가 필요해요. 농사를 다 지으면 콤바인이 필요합니다. 중고로 구입해도 한 대당 1억5000만원이에요. 소농, 중농, 대농 할 것 없이 이 기계 세 대는 있어야 합니다. 그럼 기본적으로 3억원대의 빚을 갖고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임차해 농사를 짓고 있던 땅의 주인이 발전 사업자의 임대 제안을 수용하게 되면 그 농기계들은 멍청이가 돼 버리는 거예요.” 전남 영암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복산씨의 말이다. 그가 사는 마을에도 임차 농사를 짓다 한순간에 농사를 그만두게 된 이들이 있다.

발전 사업자들은 왜 전남으로 몰렸을까. 해가 잘 들고, 땅이 넓으면서도 평평한 곳이어서다. ‘농사짓기 좋은 땅’이 곧 태양광 패널을 깔기에도 좋은 땅이다. 그렇다면 농민들이 발전 사업자에게 땅을 안 빌려주면 되는 것 아닐까. 이덕한씨처럼 자기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농민들 중 절반은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지어 먹고살려면 임대료로 3.3㎡(1평)당 1000원 이상을 줘선 안 되죠. 1000원도 농산물 가격이 안정돼 있고, 일기예보가 맞을 때 얘기예요. 2021년처럼 갑자기 큰비가 온다거나, 가뭄이 들면 땅 주인은 1000원 받는데 농사짓는 사람은 500원조차 안 남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은 평당 5000~6000원을 땅 주인들에게 제시해요. 9000원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나도 외지인이라면 누가 9000원씩 준다면 그냥 임대 줘버리겠어요.”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와 관련 설비가 들어설 예정인 전남 해남군 문내면의 혈도간척지. 권도현 기자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와 관련 설비가 들어설 예정인 전남 해남군 문내면의 혈도간척지. 권도현 기자

■재생에너지 찬성하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전력 생산 는 만큼 변전소 등 필요
지역 주민들 송전탑 반대 운동도

농민들이 재생에너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탄소중립 정책에 동의하고, 원전 같은 것보다는 태양광이 더 훌륭한 에너지원이라고도 생각해요. 창고 부지, 축사 부지, 고속도로 유휴지 같은 곳에 하는 것에 천 번, 만 번 동의해요. 그런데 지역민들의 생산 수단을 싸그리 무너뜨리는 것은 반대한다는 거예요.” 해남의 이병연씨가 말했다. 무안의 이덕한씨 생각도 비슷하다. “신재생에너지 참 좋아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농지에다 하기 전에 지붕에, 건물에도 할 수 있잖아요.” 원래 태양광 시설 설치가 가능한 농지는 농업보호구역이나 농업진흥구역 외의 농지로, 농지 전용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2019년 법이 개정되면서 농업진흥구역 내의 염해 간척지에도 태양광 설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지표면으로부터 30~60㎝를 팠을 때 염도가 5.5dS/m인 곳이 90% 이상일 경우’라는 기준이 있긴 하지만, 농민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영암군에서 농사를 짓는 신양심씨는 “옥토 같은 우량 농지가 느닷없이 염해가 되어버렸다”고 했다. “염해는 무슨 염해예요. 원래 간척지라는 게 바다를 매립한 것이어서 100년이 가도 깊이 파면 염기는 있어요. 그런데 저희는 10㎝ 내외로 논갈이를 해 농사를 지어서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30~60㎝씩 파서 염기가 있다고 염해라는 거잖아요.”

전남 지역 곳곳에서는 태양광 반대운동뿐 아니라 송전탑 반대운동도 함께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발전원이 들어서 더 많은 전력이 생산되면, 그 전력을 실어나를 변전소와 송·배전망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남 보성군에서 만난 백영호씨는 마을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다. 백씨와 만난 카페 옥상에서는 보성군과 고흥군 사이의 얕고 좁은 바다인 득량만이 보였다. 한국전력은 이 만 밑으로 해저 케이블을 깔아 고흥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보성을 통해 전국으로 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서는 득량면과 회천면에 있는 오봉산과 봉화산 등 여러 산에 154kV의 고압송전선로와 송전탑, 그리고 변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송전탑 예정지는 산속이지만, 일부는 마을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들어선다. “고압송전탑 예정지가 주민들이 거주한 지 600년이 넘은 전통 마을들이에요. 송전선이 바로 머리 위에 들어오는 거잖아요. 봉화산 가장 높은 곳이 470m밖에 안 되거든요.”

보성군은 송전망 전체를 땅에 묻는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한전은 부정적이다. 일부 구간은 몰라도, 전체 구간 지중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지중화에는 많은 돈이 든다. 전체 비용의 절반은 한전이, 나머지 절반은 지중화를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한다. 한전의 부담은 의무사항도 아니다. 전국에서 지중화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이다.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이미지 크게 보기

그래픽 | 성덕환 기자 thekhan@kyunghyang.com

■누구를 위한 에너지 전환인가

에너지 정책, 중앙집중식으로 추진
문제 생겨도 지자체가 해결 어려워

지방 주민들의 분노는 복합적이다. 곡물 자급률이 21%(2019년 기준)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농사짓는 땅을 농사 외 용도로 사용하게 한다는 우려와 함께,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도시에서 온 외지인’뿐이라는 불만도 있다. 정부에서는 일부 지역의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긍정적 사례로 홍보하지만, 현실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지금의 재생에너지 정책에는 ‘지역 감수성’이 빠져 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유럽에서는 이런 갈등이 별로 없었다. 농민과 지역의 필요에 의해 에너지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에너지 가격 자체가 비싸니까, 사서 쓰는 것보다 내가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외선 태양광이나 풍력을 농민이나 지역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전국 시·도 중 탄소중립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제주 출신 김동주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문연구관도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농업이 망해가고 있는데, 결국 농사지을 땅까지도 태양광으로 덮어 버리는구나, 기어코 농업을 그냥 죽이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죠.” 이런 과정을 통해 농촌의 인구 이탈이 더 가속화되고, 도시와 농촌 간 격차는 지금보다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보성군 내에서도 보성읍, 벌교읍 정도를 빼면 인구가 계속 줄고 있어요. 읍에 아파트 한 동이 들어서면, 한 개의 ‘리’가 없어질 정도로 그쪽으로 쏠립니다. 이런 오래된 마을에 살 이유가 없어요. 사람이 없어서 마을이 기능을 못하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한두 명 살고 있는 마을에 송전선이 또 지나가는 거죠. 마을 사람들한테 다 나가라는 소리예요.” 보성의 백영호씨가 말했다.

전남 보성군 득량면의 마을 풍경. 마을 논 뒤로 보이는 산에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권도현 기자

전남 보성군 득량면의 마을 풍경. 마을 논 뒤로 보이는 산에 송전탑이 들어설 예정이다. 권도현 기자

이런 상황을 해결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주민들의 민원은 지자체로 몰리지만, 해결에는 한계가 크다. “보통 지자체에서 이 일은 한 명이 담당해요. 다른 업무를 하면서 이것도 같이합니다. 혼자서 감당하기도 어렵고, 또 인사 이동으로 조금 하다가 딴 데로 가요. 역량이 안 쌓이는 거죠.” 임 처장이 말했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 주도의 ‘중앙집중식’으로 추진돼 왔고, 이 과정에 지자체가 개입할 여지는 적었다. 예컨대 보성군은 송전망 건설 예정지역을 관광코스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던 중 갑자기 해당 지역에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있다 보니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임 처장은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계속 지원해줘야 했는데, 그동안 정책 자체가 중앙집중식이다보니 지자체의 역량도, 지원 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다”며 “그런 과정에서 현장은 다 곪았다”고 했다.

갈등은 육지보다 빠르게 재생에너지를 도입한 제주도에도 여전히 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사는 A씨는 2020년 대정 앞바다에 해상풍력단지를 조성하지 말아달라는 진정서에 497명의 서명을 받아 제주도의회에 제출했다. 100㎿급 풍력발전기 18기를 짓는 사업인데, 고압 송전선로 설치 등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가 높다. 사업 예정지는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제주도의회가 2020년 4월 ‘주민 수용성’을 이유로 일단 사업을 부결시켜 놓은 상태다. A씨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아무도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잖아요. 우리한테 설명은 해 줘야죠. 도에서 잘못하고 있어요. 정책 수정은 하나도 안 하고, 또 밀어붙이면 우리는 다시 반대할 수밖에 없죠.” 제주도는 2019년 ‘탄소 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 정책에 대한 수정·보완 보고서에서 ‘낮은 주민 수용성에 따른 사업 리스크’를 정책의 ‘위협’ 요인으로 지적했다.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 본 미래②]중앙 중심 에너지 정책에 묻힌 지역 주민들의 삶

■지방 생산·도시 소비 구조, 더는 안 돼

전력 소비, 수도권 비중 높은데
발전원 대부분은 지방에 세워져
정부도 ‘수급 불균형 심화’ 인지

“이 지역에 필요하다면 모르겠는데 여기는 전력이 남아돌아요. 서울, 경기 지역에 전력이 많이 필요하다면 그쪽에 태양광 발전소를 많이 세워야죠. 사람이 없다고 시골에 허가를 다 내놓고, 거기서 만든 전기를 끌어오기 위해 또 고압 송전선을 깔면 지역은 토지 거래도 안 되고 풍광 좋은 곳에 사람이 살려고 했다가도 집을 안 짓지 않겠습니까.” 보성의 백영호씨가 말했다.

지금 전남에 들어서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들은 전남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전남은 전력 발전량이 소비량보다 많다. 그럼 남은 전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전기는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든 송·배전망을 통해 전국으로 이동한다. 서울에 사는 누군가가 전기포트를 켤 때 이용한 전기는 무안의 이덕한씨 옆 논 태양광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충남 당진의 석탄 발전소에서 생산한 것일 수도 있다. 전기가 어느 지역에서 생산돼 어느 지역을 거쳐 최종적으로 어디에서 소비되는지를 정확히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별로 들어와 있는 발전원의 규모와 전력 사용량을 비교해 보면, 전기가 주로 생산되는 곳은 지방이고, 소비되는 곳은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는 “재생에너지 친화적인 사람들도 ‘전국에 송전망을 아주 신속하게 깔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서울의 관점”이라며 “지방의 관점은 더 이상 서울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군 혈도 간척지 인근에 밀집되어 있는 송전탑과 전신주들. 권도현 기자

전남 해남군 혈도 간척지 인근에 밀집되어 있는 송전탑과 전신주들. 권도현 기자

정부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산업부는 최근 발표한 ‘전력계통 혁신방안’에서 “태양광, 화력, 원자력 등 발전원은 수도권 외 지역에 입지한 반면 전력 소비는 수도권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대규모 전력 수요시설의 수도권 추가 입지 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또 “대폭 확대가 예상되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현재 호남에 집중되어 있어 (이 같은) 추세 지속 시 계통 연계와 지역 간 융통이 이슈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은 지금과 같은 ‘중앙집중식 전력 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방에 대규모 발전원을 집중적으로 짓고, 그렇게 생산한 전력을 대도시가 소비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근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 공급을 하기 위해 들인 송전망 등 인프라 투자 지출액은 2600억원이 넘는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공간을 일치시키는 지역별 소규모 분산 에너지 시스템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지역이나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공급하는 것이다. 올해 산업부 업무계획에도 ‘안정적 전력망과 분산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있다. 하지만 관련 법인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은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중앙집중식 에너지 공급방식에서 벗어나, 수요지 인근에서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공급체계 개편을 목표로 한다. 국가에 분산 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기본 계획을 수립·시행할 책무를 부여하고, 에너지 사용량 중 일부는 분산 에너지로 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있다. 택지·도시 개발 사업자가 의무 할당량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과징금도 부과된다. 이 법이 마련된다면 에너지 생산지와 수요지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법만으로 충분할까?

경기도 고양시의 주택 지붕에 3kW 규모의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돼 있다. 이준헌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주택 지붕에 3kW 규모의 태양광 패널들이 설치돼 있다. 이준헌 기자

■내가 쓰는 전기는 내가 만든다

‘수요지 중심 생산’ 법안 국회 계류
대형 발전소 줄여 탄소중립 하려면
시민들도 ‘에너지 자립’ 동참해야

“탄소중립으로 가는 핵심은 자기가 쓰는 전기의 일부분을 자기가 생산하는 거예요. 전기 생산하는 것을 자기 지붕에 이고 지고 사는 거죠. 공장 위에도 올리고, 아파트 위에도 올리고, 자기 베란다에도 달고요. 대형 발전소를 줄여야 되잖아요. 그 줄어드는 만큼을, 곳곳에서 수천만 개의 작은 발전소가 감당해 주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해요.”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 말했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도 노력해야 하지만, 시민들도 내가 쓰는 전기는 내가 만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박사는 ‘RE100 시민클럽’ 같은 시도를 좋은 예로 든다. ‘RE100’은 기업이 자기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겠다는 선언으로,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RE100처럼 시민들도 내가 쓸 전기는 내가 만드는 ‘에너지 자립’을 하자는 것이다.

전주에 사는 강소영씨는 가족들과 힘을 합쳐 에너지 자립을 이뤘다. 5년 전 전주시민햇빛발전소에 2㎾ 태양광을 출자했고, 그 이듬해에는 시골에 있는 집에 20㎾의 태양광 시설을 설치했다. 강씨는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인식한 뒤 에너지 자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원전이나 석탄 발전소 같은 큰 발전소들을 만들면서 발생하는 피해는 전기를 많이 쓰는 도시 사람들이 아니라 적게 쓰는 발전소 지역 사람들이 받잖아요. 개인이 자기가 쓰는 걸 자기가 만들다 보면, 전기를 조금 더 아껴 쓰게 되기도 하고, 또 ‘쓰는 사람 따로, 만드는 사람 따로’ 같은 문제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들이 에너지 자립을 하며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직접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설치하거나 그것이 힘들면 태양광발전협동조합에 출자를 하고, ‘RE100’ 기업의 제품을 살 수도 있다. 태양광발전협동조합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금을 모아 건물 옥상이나 유휴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식으로 에너지 자립을 하는 것이다. 전국에 100여개가 있다. 오수산나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사무처장은 “소비자들이 요구하지 않는 한 기업의 RE100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소비자들이 ‘RE100 해라, 우리가 그런 상품을 사겠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전기기술자 황민수씨(위)가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점검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전기기술자 황민수씨(위)가 가정용 태양광 패널을 점검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내 전기를 내가 만들어 쓰고 싶어도 아직은 한계가 많다. 경기 군포시 산본에 사는 정영미씨는 아파트 베란다에 태양광을 설치하려다 아파트관리사무소 측 반대로 하지 못했다. “절대 안 된다는 거예요. 비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못했어요.” 결국 정씨는 지역 태양광발전협동조합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아직 재생에너지가 시민들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서는 ‘대규모 발전원’ 대신 ‘작은 발전원’이 도시 이곳저곳에 들어서야 하지만, 이런 부지를 얻는 것은 정씨와 같은 개인뿐 아니라 협동조합도 쉽지 않다. 오수산나 처장은 “조합은 시 공무원들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대기업이 ‘10억원을 복지기금으로 쓰겠다’고 하면 없던 부지도 막 생기더라”며 “안 쓰는 땅을 우리에게 주면,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겠다고 제안하고 싶다”고 말했다.

제도도 더 섬세해져야 한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B씨는 5년 전부터 3㎾짜리 태양광을 옥상에 설치해 사용하고 있었지만, 잉여 전력을 현금으로 정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정보는 최근 협동조합의 상담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B씨의 상담을 도운 전기기술자인 황민수 박사는 “법으로 남는 전력은 현금 정산을 하게 되어 있는데, 정산을 받으려면 사업자 등록도 해야 하고 계량기 설치도 따로 해야 하는 등 절차가 어렵고 복잡해 알아보다 포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B씨도 “한전에도 전화해 정산 문제를 물어봤는데, ‘그런 게 없다’는 답만 받았다”고 했다. 황 박사는 “시민들이 재생에너지 사용의 효용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와 지역 간 격차와 갈등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에너지 전환을 계기로 더욱 표면화되고 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결국 ‘좋은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에너지 전환에는 누군가의 부담이나 희생이 따르고, 그걸 나누어 지고 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시민들이 인식해야 하는 거죠. 그럼 올바르고 공정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겠죠. 모든 사람이 에너지 문제에 참여할 때 책임있는 에너지 정책도 만들어지고 정책 수용성도 높아지게 됩니다.”

특별취재팀 강연주 강윤중 권도현 김한솔 박미라 박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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