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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흡연 갈등, 끝이 보이지 않는다

2022.02.06 08:13

일상서 끊임없이 충돌하는 ‘흡연권’과 ‘혐연권’

지난 1월 24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 설치된 흡연구역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고, 행인들이 그 주변을 지나고 있다.  정희완 기자

지난 1월 24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 설치된 흡연구역에서 흡연자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고, 행인들이 그 주변을 지나고 있다. 정희완 기자

서울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와 여의도공원 방향으로 걷다 보면 흡연구역이 나온다. 폭은 1~3m, 길이는 약 90m이다. 여의도역 일대를 2020년 1월 금연거리로 지정하면서 이곳에 흡연부스를 설치했다. 직장인 양모씨(50대)는 “이전에는 흡연구역 옆에 있는 지하철 출구를 이용했는데 계단에서부터 담배 냄새가 나서 다른 출구를 이용한다”며 “흡연구역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모씨(30)는 “이곳이 없어지면 담배 피울 곳이 없다. 아무 데서나 피우는 것보다 지정된 장소를 이용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길거리는 가로수를 기준으로 담배를 ‘피우는 자’와 ‘피우지 않는 자’의 공간으로 갈린다.

■“걸리면 각오해라”

‘흡연권’과 ‘혐연권’은 헌법에 근거한 시민의 기본권이다. 두 권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충돌한다. 특히 아파트 등 공동주택 내에서 ‘층간흡연’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일부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금연을 강제하는 법안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하고 나선 배경이다. 이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에 입주한 지 1년도 안 된 김모씨(41)는 “이사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입주 초부터 침실에 딸린 화장실을 통해 담배연기가 들어오고 있어서다. 두 아이가 걱정이다. 태어난 지 100일이 채 안 된 둘째 아이는 폐 기능에 문제가 있어 걱정이 더 많다. 침실은 그저 짐을 쌓아두는 용도로 쓴다. 김씨는 “담배연기가 자욱한 침실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조모씨(39)도 아파트 발코니(베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담배연기로 고통받고 있다. 조씨는 “여름이면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담배 냄새가 역하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는 “담배, 걸리면 각오해라”는 감정적인 글까지 붙었다. 박모씨(38)는 “밑에서 담배 냄새가 올라오면 화가 치밀어 창문 밖에 대고 ‘어떤 놈이냐!’ 하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글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루종일 환풍기를 돌린다”, “화장실에서는 숨을 참는다”, “살의를 느낀다” 등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18년 12월 발간한 ‘금연구역 설치 및 운영 가이드라인 개발 연구’ 보고서에 아파트 거주자를 상대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가 실렸다. 참여자 1200명 중 층간흡연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65.8%(789명)를 차지했다. 흡연자 493명 가운데 주로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응답은 20.7%(102명)였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고려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이론상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 김기윤 변호사는 “담배 냄새 때문에 신체 기능에 장애가 왔거나, 사용하는 물건들이 망가졌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며 “냄새도 측정해야 하는 등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모든 흡연자가 층간흡연의 가해자는 아니다. 세대 내 흡연을 반대하는 흡연자들도 많다. 박상륜 흡연자인권연대 대표(58)는 “공동주택 세대 내에서의 흡연은 나만 좋고 남에게는 피해를 주는 것이어서 특히 문제”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입구에 ‘금연아파트’라는 사실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희완 기자

수도권의 한 아파트 입구에 ‘금연아파트’라는 사실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정희완 기자

■‘금연아파트’라도 세대 내 흡연 가능

김씨와 조씨가 거주하는 곳은 이른바 ‘금연아파트’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세대 중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단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공동주택 내 간접흡연 피해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2016년 도입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금연아파트는 1774곳(110만8251호)이다. 전국 공동주택(1만7213개·국토교통부 통계)의 10.3%에 해당한다.

금연아파트라고 해서 단지 전체가 금연구역은 아니다.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 등 4곳에서만 흡연을 금지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입주자들도 많다. 피해자들 사이에서 “금연아파트인데 왜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금연아파트 지정이 금연구역 4곳 외에서의 흡연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금연아파트의 맹점이다. 황지은 단국대 공공·보건과학대학 교수는 2019년 7월 펴낸 논문에서 “아파트 관리 주체자들은 금연아파트 시행 후 흡연 문제가 어느 정도 개선됐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면서도 “외려 세대 내 흡연 증가로 층간흡연 문제가 불거지면서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됐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고 밝혔다. ‘아파트 금연구역 지정 제도의 운영 현황과 확산 방안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은 아파트 관리소장 등 11명을 심층 인터뷰해 분석한 결과를 담았다.

국토부는 2017년 8월 층간흡연 갈등 해소 대책이라며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입주자는 세대 내 흡연으로 다른 입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관리주체(관리사무소)가 층간흡연 가해자에게 실내 흡연 중단을 권고할 수 있고, 세대 내 확인 등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게 했다. 가해자는 관리사무소의 권고에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관리사무소가 입주자 등을 대상으로 간접흡연의 예방, 분쟁의 조정 등을 위한 교육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층간흡연 문제를 법에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다. ‘노력’, ‘권고’, ‘협조’ 등 당사자들의 자발성에 기댄 건 한계로 지적된다.

건축설비 개선 대책도 2015년 3월 도입했다. 세대마다 배기구에 역류를 방지하는 ‘댐퍼(damper·완충, 제동장치)’를 설치토록 했다. 화장실을 예로 들면 환풍기를 가동하지 않을 때는 댐퍼가 환풍구를 막아 다른 집에서 발생한 연기가 역류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환풍기가 작동하면 댐퍼가 열려 환기를 하는 방식이다. 댐퍼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세대에 전용 배기 덕트(duct·공기, 유체 등의 통로 및 구조물)를 설치토록 규정했다. 세대마다 독립적인 배기통을 설치하라는 얘기다. 이렇게 하면 각 세대에서 발생한 연기는 직접 건물 밖으로 나간다.

댐퍼가 개폐를 반복하다 보면 마모가 생겨 층간흡연을 온전히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용 배기 덕트도 외벽에 설치하는 것이어서 창문을 열어둔 세대로 연기가 흘러들어갈 수 있다. 결정적으로 이 방안 시행 전 건축 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적용 대상이 아니다.

■모든 책임은 관리사무소에

층간흡연 방지를 위한 방안들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공동주택관리법은 실내 흡연 중단을 권고하고 필요한 조사 권한을 관리사무소에 부여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사실상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입주자들이 관리업체를 고용하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을’의 처지에서 층간흡연 세대를 조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사는커녕 “내 집에서 피운다는데 무슨 간섭이냐”, “애먼 사람 잡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해라” 등의 항의를 받기도 한다. “나는 안 피웠다”고 발뺌하면 방법이 없다.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기도 한다. 흡연 세대를 특정하는 것조차 힘들다. 관리사무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안내 방송을 하거나 안내문을 단지 곳곳에 붙이는 정도밖에 없다.

실질적인 권한은 없지만 책임은 오롯이 관리사무소의 몫이다. 층간흡연 피해로 민원을 넣는 입주민들한테 좋은 소리도 못 듣는다. “왜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껴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아파트 관리 경력 15년의 박모씨(55)는 “권한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데도 모든 책임은 관리사무소로 돌아온다”며 “국가도 풀지 못하는 난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겠냐”고 하소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 제7조’의 헌법소원심판 청구 소송 판결에서 ‘흡연권’과 ‘혐연권’을 시민의 기본권이라고 인정했다. 두 권리 모두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 ‘사생활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7조에 근거한다고 봤다. 혐연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건강권과 생명권이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두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생명권과 직결되는 혐연권을 우선해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층간흡연의 피해자들은 세대 내 금연을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동주택의 특성상 이웃 간 배려하고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웃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안락하고 편안해야 할 집이 두렵고 불편한 공간이 됐다. 개인의 행복을 침해하는 행동은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김씨는 세대 내 흡연 금지 법안의 제정을 촉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층간흡연 갈등, 끝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참여입법센터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도 법안 마련을 통해 제재·처벌을 강화해달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이강숙 한국금연운동협의회 회장(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은 “세계보건기구는 2차, 3차 간접흡연의 피해까지도 경고하는데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한국의 법률은 여전히 정체 상태”라고 말했다.

황지은 교수도 금연아파트의 금연구역을 복도 등 4곳에서 화장실·발코니 등 세대 내로 확대한다면 층간흡연 해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흡연자의 사생활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이 피해·고통을 받는다면, 이 또한 보호받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헌재 결정에 비춰봤을 때 세대 내 금연법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앞서 언급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발간 보고서의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도 1200명 가운데 66.2%(794명)가 층간흡연 규제(처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규제는 지나치다는 응답은 21.6%(259명)였다.

층간흡연 금지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집 안에서의 행위까지 국가가 제재한다면 흡연 외 다른 문제에서도 국가 권력이 사적 공간에 들어오려 할지 모른다. 국가의 영역이 있고 공동체의 영역이 있다. 두가지를 너무 구분하지 않으면 자칫 모든 게 국가주의로 갈 수 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세대 내 금연을 법으로 강제하면, 이를 계기로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쉽게 개입하려는 시도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취지다.

금연 정책과 공동주택 관리 정책을 각각 담당하는 복지부·국토부도 관련 법 마련이 어렵다고 했다. 개인 공간이기 때문에 공권력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실효성도 떨어진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흡연 세대를 특정하기 어렵고 특정한다고 해도 담뱃불을 끄면 흡연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층간흡연 방지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2020년 11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층간흡연 피해자가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간접흡연의 범위와 기준도 정하도록 규정한다. 분쟁조정위는 층간소음, 리모델링, 관리비, 유지·보수 등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각종 갈등을 중재·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간접흡연 문제는 조정 대상이 아니다. 이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세대 내 흡연 피해를 예방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간접흡연 범위·기준 마련해야

층간흡연과 더불어 대표적인 난제인 층간소음은 분쟁조정위 조정 대상이다. 국토부·환경부의 공동 부령인 ‘공동주택 층간소음 규칙’에는 소음을 종류별로 구분하고 주간·야간별로 소음 기준을 정해놓았다. 측정 방법도 담았다.

국토부는 해당 법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간접흡연과 피해의 인과성을 규명하기 어렵다, 측정 방법과 피해 기준 설정이 어렵다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시억 국회 국토교통위 수석전문위원도 2021년 2월 작성한 검토보고서에서 “설정 기준 이하는 ‘안전한 흡연’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

호주는 2016년 11월부터 대부분의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의 자료를 보면, 호주의 공동주택에서 담배를 피우다 다른 세대의 항의를 받았는데도 계속 흡연하면 1차로 1100호주달러(약 93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두 번째 걸리면 2200호주달러(약 186만원)로 과태료가 높아진다. 캐나다와 미국 일부 지역에서도 공공주택을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한국 정부는 홍보와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층간흡연 금지법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흡연자의 자발적인 협조가 가장 이상적인 해결방안이라는 데 동의한다. 혐연권과 흡연권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체는 헛된 공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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